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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력 - 예능에서 발견한 오늘을 즐기는 마음의 힘
하지현 지음 / 민음사 / 2013년 3월
평점 :
하지현 씨는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된 사람이다. 사실 책 한권 읽었다고 그 사람을 어떻게 알겠냐만은 그냥 이런 사람을 전에는 이름도 몰랐다는 얘기다. 나중에 알고 보니 꽤 유명한 양반이고 트위터를 팔로우해 보니 책에서처럼 재치도 있고 똑똑한 양반인 것 같다. 아직 저자의 이전 책들을 찾아 읽지는 못했지만 좀 더 알고 싶어지는 사람이다.
예능력이란 말은 '당연히' 사전에 나와있는 말은 아니고 저자가 만들어낸 신조어다. 책에 보면 별 특별한 것이 없어도 "하루를 살아가게 하는 힘"이다. 처음 들어보는 단어라 낯설긴 하지만 읽다보면 저자의 작명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저자는 우리가 왜 예능프로를 보는지, 좀 더 정확하게 그것에서 뭘 바라는지를 정신과의사답게 분석적으로 접근한다. 주로 11시에 하는 텔레비젼 프로그램들을 예로 들어 설명해 준다. 설명만 하는데 그치지 않고 쓸만한 적용점들을 제시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리액션에 대한 이야기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리액션은 지금껏 상대적으로 두드러지지 않았던 소통의 중요한 요소다. 말을 맛깔나게 잘하는 것보다 리액션을 잘하는 것이 관계를 매끈하게 - 중략 - 유도를 배울 때 낙법부터 배우듯이, 소통에서 제일 먼저 배워야 할 것은 아이와 눈을 마주치고 고개를 끄덕여 줬던 엄마의 행동같은 리액션이다. 관계는 여기서 시작된다." 좋은 글을 쓴다는 것은 누구도 생각 못한 전혀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것일 수도 있지만, 이렇게 보통 사람들이 한번 쯤 생각해 본 일을 논리에 맞게 적절한 단어를 써서 독자들의 무릎을 치게 만드는 재주가 아닐까 한다.
정확하게 알고 있으면 어렵지 않고 쉽게 말할 수 있다는 진리를 저자는 잘 보여준다. 어려운 개념을 들어 설명할 만한 이야기들을 '만만한' 예능프로를 들어 이건 이거고 저건 저거라고 말해준다. 사실 읽은 지가 좀 지나서 세세한 나의 감동을 그래도 전하기는 어려운 면이 있으나 좋은 책이기에 권하는 마음에 이 글을 써본다. 이 책은 적어도 올해가 가기전에 읽어야 할 책이다. 이 책에서 언급한 '놀러와'나 '강심장'은 이미 끝났고 아마 다른 프로그램도 곧 그 뒤를 밟을 수 있다. 좋은 책이긴 하지만 안타깝게도 감명을 받고 많이 공감할 수 있는 시한이 정해져 있다.
<수첩에 옮겨 쓴 글>
만화가 허영만은 현재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한국 만화의 일인자다 - 중략- 그는 말한다. 자기가 1등을 끌어내린 것이 아니라, 그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떨어져 나가게 되자 자기 길을 묵묵히 가고 있던 자신이 그 자리에 서게 되었다는 것이다. 질투나 시기심에 그들을 경쟁상대로 여기고 그림을 그렸다면 그렇게 오래 인기를 얻기 어려웠을지 모른다.
- 어디선가 "샴푸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비누의 자리를 빼앗아서가 아니다."란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경쟁하라고 주위에서 부추기고 앞서가라고 강요하지만(솔직히 나도 그럴 때가 있다.) 자기 페이스대로 묵묵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 Slow and Steady Wins the Race!
아무런 제약 조건 없이 이루어지는 잉여의 사고는 틀에서 벗어난 발상을 하게 한다. 한가로이 전혀 다른 시간을 보낼 때 새로운 창조와 혁신의 아이디어가 떠오르기 때문이다.
- 피씨 게임 '문명'에서도 위인이 나오게 하려면 정원을 만들어 줘야한다. Schola란 말의 어원도 할일 없는 사람 이었다더라...
퇴행과 휴식을 낭비로 여기거나 퇴행한 현재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그것까지도 나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타인에게 보여 줄 수 있는 사람이 성숙한 성인이다. 그렇게 자아 에너지를 채우고 하루를 꾸려가야 우린 삶의 원동력을 유지할 수 있다.
- 예능프로그램은 즐겁게 하는 것이 그 목적이니 즐거워 하면 그만이다. 내가 적당히 창피해서 모두 즐거울 수 있다면 너그럽게 그럴 수 있어야 한다. 그게 어른이니까.
과거는 과거에 대한 현재의 태도로부터 재구성된다. 과거에 대한 나의 현재 시각이 기억을 다시 재구성한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지금이 중요하다.
- 성공한 연예인이 무명시절의 설움을 이야기 하는 것, 내가 백수 시절을 학생들 앞에서 얘기할 수 있는 이유는 지금 나에 대한 시각이 긍정적이기 때문이다. 현재에 대해 만족하지 못한 사람이 과거를 즐겁게 회상한다면 그것은 씁쓸한 '왕년에' 씨리즈 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