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자기 앞의 생 (특별판)
에밀 아자르 지음, 용경식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5월
평점 :
품절
("그시절")에 처음으로 그녀를 보았다.
그시절은 짐작컨데 확실히.초등학교 5학년.6학년 아니면 중학교 1학년.2학년 사이들중 숨어있다.
그시절.내 또래의 못된녀석들이 모두 그러하듯.
나또한 심한("자위중독" )중증 환자였고.
아직은 담배를 피우는 못된짓은 준비단계에 있었으므로.
나는 감히 그시절이 저쯤일것이라고라마 확실히 말할수있다.
("그녀를 처음 본 순간")난 ("넋")이 나갔다.
난 지금 넋을 뺴았겼다고 말하지 않았다.단지 난 넋이 나갔다.
("다이달로스의 미로")가 내 혀끝에서 시작되서.내 온몸에 거침없는 홈들을 파새기고.
그 영겁의 미로의 한가운데로 티끌만한 ("내 영혼")이 팅~소리를 내며 초라하게 던져졌다.
어쩌면 난 아무리 추구해도 다 채워지지 않을 ("숭고한 대상")을 난생처음 목도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난 너무심한 자위행위에 기가 쇠해 순간적으로 탈진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난 내 부지런한 수덕으로도 빠져나가지 못한 불쌍한 정액들에게 뇌를 지배당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이유가 무엇이든 뭐가 그리 중요하랴?
내인생에 단한번 왔다간 이 ("우주쇼")가 유성우이든 개기월식이든 초신성의 폭발이든.....
그것은 ("내 생")앞에 일어났고.그로인해 난 넋이 나간것이다.
그후로 적어도 한달이상은 난 자위를 하지 않았거나.하지 못했다.
그뿐이다.
에밀 아자르의 "자기앞의 생"을 의미있게 읽기위해.
권총으로 생을 마감한 이작가의 드라마틱하고 진귀한 이력을 애써 들추어보거나.
이 작품의 문학적 텍스트에 대해 그럴듯한 꼬리표를 달아주거나 하는일은.
내게 완전히 의미 없어보인다.
이책은 온전히 마음으로 씌여진책이다.마음으로 쓰여진 책은 힘이세다.
우리는 이책의 힘쎈 주인공 모모의 마음의 결을 따라 마지막 장까지 따라가면 된다.
그뿐이다.
구구절절한 줄거리는 집어치우자.
모모의 태생은 더할나위없이 비극적이고 그 앞에 펼쳐진 시간은 슬픔으로 가득차있다.
이건 단지 타자에 의해 강요된 모모의 삶이다.
모모.즉 자기 앞에 있는 생을 설명하는데.비극.아픔.슬픔따위의 단어는 도구가 되지못한다.
누구에게도 학습을 강요받지 않은 모모앞에서.생은 언어이전에 날것 그대로 알몸을 드러내고 있다.
프란다스에서 한소년이 할아버지와의 생을 위해 수레를 끄는동안.
모모는 길거리에서 도둑질을 한다.
그소년이 개와 함꼐 루벤스의 그림밑에서 식어가는 동안.
모모는 자신의 개를 팔고 받은돈을 하수구에 쳐넣는다.
그에게 슬픔이란 아직 모양이 없고.비극이란 단지 창녀들의 엉덩이일뿐이다.
모모는 비의로 가득찬 생의 산을 가벼운 발걸음으로 뛰어다닌다.
그는 힘이 들면 언덕에 앉아 땀을 닦을 것이며.배가 고프면 나무에서 열매를 딸것이다.
그러다 어느날 지평선으로 무너져 내리는 붉은색 죽음에 눈물짓기도 할것이다.
그리고 그의 앞에서 생은 서서히 알몸을 감출것이며.그의 발걸음은 무거워질것이며.
모모의 자신만의 언어는 타자의 언어들과 몸을 바꿀것이다. 어른이 될것이다.
그뿐이다.
이책의 마지막은 "사랑해야 된다"로 끝을 맺는다.
우리의 생이 몸을 감추고 우리가 그 아름다움을 기억하지 못한다해도.
그 온기만은 기억해야 하지 않을까하는 모모의 자신감없는 권유처럼 들린다.
나는 에밀 아자르의 권유를 전혀 신뢰할 자신이 없다.그도 그러할것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장을 덮고 가만히 눈을 감는다.
그리고 저기 내가 가로치고 따옴표로 따온 것들을 가만히 되뇌어본다.
"그시절" "자위중독" "그녀를 처음본 순간" "넋" "다이달로스의 미로" "내 영혼" "숭고한 대상"
"우주쇼" 그리고,....."내 생"
하밀 할아버지가 모모에게 말한다.
"완전히 희거나 검은 것은 없단다.흰색은 흔히 그안에 검은색을 숨기고 있고.검은색은 흰색을 포함하고 있는거지"
맞는 말이다.
내가 죽을때까지 저 단어들을 되뇌인다 해도 그 어느것 하나.참뜻을 꺠닫고 가지는 못할것이고.
그 시절 다이달로스의 미로에 떨어진 내 영혼은 아직도 그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한채 어디선가 헤매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미로의 벽은 세상의 모든 단어들의 악의적인 낙서들로 더럽혀져 있을것이다.
하지만 그게 무엇이든 뭐가 중요하랴?
적어도 지금. 길읽은 영혼의 속도는 팅~팅~ 소리를 내며
좀더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음으로 쓰여진책은 이렇게 마음을 움직인다.
그의 선언을 신뢰할수 없다해도.....
그뿐이다.
*p.s - 얼마전에 실로 이십여년만에 그녀를 다시 만났다.
그녀는 내 친구의 열살쯤 손위의 친누나였고.얼마간의?(내 우주쇼의 주기보단 훨씬 짧은 시간이다) 결혼생활을 끝내고.집으로 돌아와 있었다.
고대하고 기대하던 우주쇼는 다시 일어나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그녀가 50대를 목전에 둔 실패하고 힘없는 한낱 가련한 여인으로 보이지도 않았다.
초신성의 폭발은 없었지만.
그녀는 폭발이 끝난후의 별들이 그러하듯 고요하게 빛나고 있었다.
생을 사랑해야한다.
그별이 내게 말하고 있다.
그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