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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 세계사의 미궁
키류 미사오 지음, 양억관 옮김 / 열림원 / 2000년 11월
평점 :
품절
일단 제목은 무섭다. 여기서 이 '무섭다'라는 말의 개념을 한 번 짚고 넘어가자면 이 '무섭다'라는 것에는 크게 2가지가 있다고 간략하게 설명을 할 수 있겠다. 첫째는 시각적인 측면으로 흔히 우리가 공포영화를 볼때 연장이라든지 벌건 물엿 등을 봄으로써 또한 금속을 긁는 듯한 효과의 음향이나 비명이 합쳐져서 느껴지는 '말초신경'자극으로 인한 것이 있겠고, 두 번째는 전자의 것들이 아닌 뒤늦게 알게 되는데서 오는 심리적인 섬뜩함으로 인해 모골이 송연해서 느껴지는 '중추신경'을 살살 잡아당기는 것이 있겠다.
이 책에는 귀신이나 초자연적인 존재, 또는 현상들은 등장하지 않으므로 첫번째의 경우에 의한 무서움은 없다. 사실은 오히려 재미와 흥미로운 내용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본 책에서 펼쳐지는 내용은 모두 역사적인 사실이다. 주로 유럽 역사 속의 인물들과 역사의 베일에 가려진 에피소드를 나열한 일종의 '유러피안 나이트'라고나 할까.
우리가 지금까지 배우거나 알고 있는 세계사는 어디까지나 소위 '교과서적'인 역사이다. 따라서 달리 말하면 '표면적인' 것이다. 그것도 학교다니면서 해당 수업시간에 '수박 겉을 쒸~웁' 핥듯이 책장을 넘기며 지나갔을 뿐이다. 굳이 교훈까지는 바라지 않더라도 일견 깨끗하면서 정리가 잘 되어 있다. 하지만, 이미 우리는 '인간'이라는 존재가 어떠한 것인지 자~알 알고 있다.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욕망의 덩어리' 정도... 이러한 역사의 이면과 인간의 어두운 부분을 알고 있는 우리는 이제 세계사 교과서를 집어 던질 폼을 잡아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나온게 이 책이다라고 말할 수 있겠다. 학교에서는 가르치지도 않고 배울 수도 없는 '어둠'의 역사를 기술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둡다고 해서 오로지 사악하다고만은 할 수 없다. 보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이면'의 역사라고 해야할 것 같다. 이런 저런 사건들에 휘말려 본인의 의지로든 아니든 이리 저리 밀려다니다 결국 역사의 저 너머로 책장 넘어가듯이 가버린 사람들. 그리고 미스테리와 수많은 논란만 남기고 공중에 떠버린 사건들... 이런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결국 종착점은 '인간의 탐욕이나 지나친 욕망 또는 야심'이라는 심연에 다다르게 된다. 책의 원제 또한 'Episodes from the Abyss'이다. '무서운 세계사...'라고 지은 것은 아마 독자들의 흥미를 유발하기 위해서라고 생각된다. 나도 제목 보고 샀다. 이런~
여러가지 사건들을 읽어나가다 보면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와 그 마음의 밑바탕에 도사리고 있는 무서운 심리가 느껴지면서 위에서 서술한 두 번째의 공포를 느낄 수 있다. 다양한 사건이 소개되는데, 그 중에서도 개인적으로 가장 끌렸던 내용은 주로 '역사상 세계 제일의 위조 지폐범'이나 '엄청난 유산을 상속받은 사기꾼' 등에 관한 것인데, 역시 '돈'의 위력은 무시못하겠군. ^^
그 외에 황금의 전설에 자신의 인생을 포함. 모든 것을 한 방에 '올인'한 사람들의 리얼한 생고생과 2차 세계대전 동안 전 세계를 오고 간 수많은 보물들(짜식들, 전투는 안하고). 거기에 얽힌 많은 사람들의 제로섬 게임. 중세 시대부터 이른바 '보물섬'을 찾아 나선 사람들의 모험담 등이 나온다. 어릴 때 '보물섬'이라는 만화 재미있게 봤던 기억이... 이 부분에서는 우리가 언젠가 한 번씩은 들어봤음직한 지명들이 등장하는데 예컨데, 예전에 유명했던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도 캐리비안 어딘가에 침몰해서 바다 속에 보물이 묻혀 있지 않을까 하는 추측에 대한 전설을 바탕으로 만들어졌지 않나 싶다. 비단 이 영화뿐만이 아니라 상당수의 보물에 관련된 모험을 쓴 작품들이 이러한 전설을 소재로 삼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에서도 예수님과 막달라 마리아 그리고 성배와 성당기사단의 이야기가 등장하는데, 일견 '다빈치 코드'와 조금 다른 해석을 제시하고 있는 점도 흥미로운데다가 '푸코의 추'에서 읽었던 '비밀 집단'에 대한 이야기도 살짝 얹혀져서 나온다. 그걸로 인해 개인적으로 푸코의 추에서 약간 의아했던 내용과 인물에 대한 궁금증이 풀어지는 보너스를 얻었다.
사람인 이상 어느 정도 욕심을 부리게 되고 적당하다면 그것을 성취할 수 있는데, 문제는 더욱 큰 것을 끊임없이 요구하는 그 욕망을 제어하지 못하는 것이 인간의 가장 큰 병폐이고, 그것이 곧 모든 '화근'을 불러와서 결국에는 본전도 못 뽑는 일들이 비일비재한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보이지 않는 주제는 '1절만 하자'가 아닐까. 또한, 몇몇 사건들은 그 결말이 미해결인채로 남아 오늘날까지 많은 궁금증과 논란만 남기고 있는 사건들도 있는데, 차라리 오히려 밝혀지지 않는 편이 더 나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하지만, 흥미로운 것은 오늘날에도 그 사건들에 관심을 가지고 자기의 인생을 걸고 모험에 도전하는 불굴의 정신을 가진 '인디아나 존스'들이 많다는 것을 보니 역시 대단한 인간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흘러간 과거의 역사를 새롭게 조명하여 그 이면에 나오는 수많은 인물들과 미궁에 빠진 사건들을 다시 생각해보는 것은 재미있다. 그 과정에서 새로운 사실이나 미스테리도 발견이 되면서 이 세계에는 불가사의함이 존재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