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겐슈타인 논고 해제 - 비트겐슈타인 세계로의 초대
조중걸 지음 / 북핀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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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하단 말 밖에. 비트겐슈타인이 뭐 한 사람인지 이제 좀 알겠다.
그도 우리와 같은 사람이다. 외계인 아니다. 비트겐슈타인을 알아들을 수 없는 외계인으로
만들었던 철학 교수들 반성 좀 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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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 온톨로지 - 사랑에 관한 차가운 탐구
조중걸 지음 / 세종(세종서적)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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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대한 환상에 대한 벽에 금이 갈 때 마다 책을 덮었다 다시 읽곤 한다. `사랑을 위해서 사랑을 포기`하고 가능성을 제시해준 저자가 고맙다. 가능성에 여전히 물음을 품은 자신을 돌아본다. 이처럼 차가우면서 뜨거운 탐구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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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키치,달콤한 독약'은  키치'우리들의 행복한 시대'(2007)의 개정판이지만 전혀 새로운 내용을 담고 있다.


제목을 보면 키치는 달콤하게느껴지는 요소와 부정적 요소를 가진, 우리들의 (병든)행복한 시대를


말하고 있다. 사실 저자의 서문에 과거에도 지금도 키치의 정의가 부정적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지만 대다수는 일부


 키치를 좋은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듯하다. 키치라는 용어의 애매함때문인지 삶의 양식에 깊게 스며있다. 예술도 물론 그러하고.


키치에서  치명적 부분은 이중적 눈물이다. 정의, 봉사, 사랑,겸허 등 추상명사를 언어로 표현하고 거기에 신념


을 부여할 때 자기가 자신이 되지 못한다. 정의, 봉사, 사랑 등을 실행하는 대견한 사람으로 스스로가 타인에게 보이


길 인식하는 순간 키치가 된다. 오만과 기만이 시작.


키치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서 보이는 것이고 이러한 지적은 매섭다. 키치를 벗어나는 길을 적절한 표현이 아니다.


키치를 벗어나는 도약의 순간만 있을 뿐.


'키치'우리들의 행복한 시대'와 '죽음과 새로운 길(신앙과 키치에 관한 책), '키치, 달콤한 독약'에 이르기 까지


저자는 키치의 정의와 왜 그러한지 예증을 들어 왔다. 대다수통속예술과 키치를 혼동해 하는 경우가 많다.


이해되기 어려울 것 같다. 나도 물론 그러하고. 나는 왜 저자의 키치의 정의에 동의하고 다르다고 느끼는지


곰곰히 생각봐야 할 이유가 느껴진다.


생각하는 셈치고 깊게 잠이 들었고 일어난 뒤에도 떠오르지 않았다.



'당신이 나를 사랑해야 한다면

오로지 사랑만을 위헤서 사랑해주세요.- 에밀 브라우닝'


이 책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느낄 수 있었던 책앞의시 한구절이 물음의 해소가 된다.


키치라고 부르는 대다수는 통속예술이고 고급예술과는 질적인 차이가 없다 . 양적 차이만 있을 뿐. 드라마 '오로라 공주'와 나보코프의 '로리타'는 문학적 표현의 차이일 뿐이다.


사랑만을 할 때는 사랑만을, 돈을 벌때는 돈을 벌기 위해 집중해 주었으면(물론 법의 테투리 안에서), 일을 할 때는 일속에,  한마리의 강아지를 입양해 올때는 그 강아지 전체의 삶을 돌볼 수 있는 사랑을 ,

음악을 감상할 때는 그 음악만을 감상하길.



달콤한에 계속 빠져 있을 수만 있다면 나 또한 키치에 빠지고 싶다. 영원히. 허나 키치로 물든 삶은 파국으로 향한다.


"혼돈과 대적하는 길은 혼돈 그 자체가 되는 것, 아니 더 나아가 더 깊은 혼돈을 창조하는 것이다."



자기인식적 키치는 키치를 벗어난다. 힐링을 스스로 하는 것이고 성취는 해체를 요구한다. 조직이 개인을 보호해주지않는다. 어떤 것에서도 연역되는 것은 없다.


스스로 우주앞에서 겸허하고 늦잠자는 버릇을 고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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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맨즈 독 One Man's Dog
조지수 지음 / 지혜정원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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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송 즉시 머리를 쳐박고는 하루만에 읽었다.

그러나 이것은 이 책이 하루만의 독서로 끝날 책이어서가 아니다.

이 책을 두고 두고 읽어야지. 외울 때 까지.

이렇게도 풍부하고 깊이있는 내용이 이렇게도 짦고 군더더기 없는 글에 담길 수 있다니!

조지수씨의 글은 숨막히게 한다. 그의 글은 비수같이 날카롭고 번개같이 재빠르다.

그는 두 번 말하지도, 구구하게 설명하지도 않는다.

독자에게 이해와 공감을 구걸하지도 않는다. 그는 너무도 의연하고 초연해서 때때로는

오만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나는 개인으로서 그 작가를 모른다. 그의 글에서 그렇게 느낀다.

 

나스타샤와 부딪힌 것은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사건 중 하나이다. 그 소설은 기쁨과 절망을  동시에 줬다. 언어가 이렇게 까지 커다란 충격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의 발견은 큰 기쁨이었다.

나스타샤는 마치 쓸쓸하지만 아름답고 운치있는 가을날같은 소설이었다.

그의 담담한 글은 춤추듯이 전개되었고 거기에서 내 마음 역시도 같이 춤추었다.

느리고 슬픈 춤.

절망은 이러한 글을 내가 쓸수는 없겠다는 좌절감에서 왔다. 이런 글은 엄청난 지성적 노력과 예민하고 날카로운 감성이 수반되면서도 자기포기적인 인품이 동반되어야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 글을 누가 쓸 수 있을까?

내가 어떤 노력을 해야 이런 글을 쓸 수 있을까?

 

원맨스 덕 역시도 기대이상이었다. 서문을 읽는 순간 나는 책을 내려 놓았다. 그 글은 머리로 들어오지 않았다. 가슴으로 스몄다. 어떻게 이렇게 우아하고 서정적으로 자기 고백을 하면서도 담담할 수 있을까? 어떻게 이렇게도 우아한 글이 가능할까?

정말이지 아름답고 슬픈 글이다. 이런 비천한 세계에 이러한 고상함이 어떻게 가능할까?

일어가며 크게 한숨지었다.

가슴을 치는 그 아픔과 공감과 연민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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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맨즈 독 One Man's Dog
조지수 지음 / 지혜정원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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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지망생에게 문체가 아름다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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