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의 안쪽 - 속 깊은 자연과 불후의 예술, 그리고 다정한 삶을 만나는
노중훈 지음 / 상상출판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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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삼성에서 보름 남짓, 여행신문에서 2년 반 정도'의 직장생활을 경험한 이후 줄곧 여행작가로 살고 있다는 노종훈님이 쓴 책이다. 2014년 11월부터 MBC라디오의 주말 프로그램인 <노중훈의 여행의 맛>을 진행하고 있으며, 올해 2월부터 KBS춘천방송총국에서 제작하는 <이스트라이프 시즌2>의 진행도 맡고 있다고.

제목과 딱 들어맞는 표지는 아마 본문 초반부에 소개된 '독일 블랙포레스트'가 아닌가 싶다. 이렇듯, 저자는 총 319쪽의 내용에서 끊임없이 독자로 하여금 상상하며 읽게 만든다. 여행도서들의 특성상 시각적 요소인 사진과 그 여행지에서 느낀 작가의 감흥을 간접적으로 느끼기 마련인데, 이 책은 사진과 함께 지어낸 문장들에 순수 우리말로 당시의 생생한 감성을 전하고 있다. 눈으로 아름다운 문장을 만나고 입으로 발음해보면서 새로운 어휘를 찾아보는 재미가 있다. 또한 총 4부의 '~풍경'이라는 주제로 전 세계 대륙을 오가며 풍경과 예술, 사람을 이야기하고 있어서 단순한 여행일지를 한 단계 뛰어넘었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함께 뒤표지에 자주 협업한 '노중훈은 여행 그 자체다'라는 박찬일 음식평론가의 추천사가 인상적이다.


'1부-압도의 풍경'편에서는, 주로 압도적인 규모를 자랑하는 경관을 소개하고 있다. 우리가 익히 들어 알고 있는 '이구아수 폭포'는 포르투갈어로 쓰는 브라질과 스페인어를 쓰는 아르헨티나 및 파라과이의 접경지대에 자리한다. 그중 백미인 '악마의 목구멍'도 소개하는데, 그 명칭 때문일까. 폭포의 물줄기가 장엄하다 못해 섬뜩하게 느껴진다.

또한 각종 영화의 배경으로 등장한 미국 유타주 남동쪽 끄트머리의 모뉴먼트 밸리는 "황량하고 장엄했다"는 저자의 말에 전적으로 공감할 수밖에 없다.

2008년 대지진의 아픔을 극복하고, 이백과 두보를 떠올리게 하는 두보초당과 유비와 제갈공명을 만나는 사당을 비롯하여, 세계 최대의 석불인 러산대불 등 천혜의 자연 경관을 자랑하는 쓰촨은 매운 맛 요리가 발달했다고 한다.

이 부의 마지막은 타이타닉의 비극을 간직한 도시로, 희생자 121명이 영면하고 있는 페어뷰 공동묘지가 있는 핼리팩스와 몸길이가 30~60ft인 혹등고래의 출연이 잦은 펀디Fundy만의 아나폴리스Annapolis 유역 서쪽의 딕비를 소개하고 있다. 고래의 꼬리만 보아도 녀석의 거대한 체구를 짐작할 수 있을 정도다.

'2부-느림의 풍경'편은, '명상'의 나라 인도의 케랄라Kerala주의 여러 도시를 소개한다. 동ㆍ서양이 갈마들었다는 코치Kochi를 비롯하여, 케랄라 남쪽 끄트머리의 휴양지 코발람Kovalam까지. 기원전 600년 경부터 내려오는 힌두교의 전통 치료법인 아유르베다를 체험했을 때는 몸 전체의 세포들이 하나씩 깨어나는 느낌이었다고 전한다. 다음은 지중해의 섬나라 몰타에서의 9일간의 여정을 소개한다. 몰타Malta섬의 해안가 도시 슬리에마Sliema를 시작으로 현 수도인 발레타Valletta를 조목조목 둘러 보고, 어촌 마사슬록Marsaxlokk을 거쳐 서북쪽의 뽀빠이 빌리지Popeye Village 등을 두루 둘러보았다고. 또한 두 번째로 큰 섬인 고조Gozo와 가장 작은 섬인 코미노Comino의 "세밀한 표정과 장쾌한 풍경"을 사진과 함께 소개한다. '에메랄드 빛'이라는 상투적 표현 대신 저자는 "몰타 섬에서는 고조섬으로 이동하는 동안 배 위에서 바라본 지중해는 더할 나위 없이 푸르러서 눈이 다 아플 지경이었다."(본문 p.114)라고 표현했다. 이어서 동유럽 국가 중 슬로베니아의 여정 중 '블레드 섬'이 특히 인상적인데, 저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성모마리아승천성당'을 위한 무대"라고. 세계 각지의 행복하게 게으른 여행자들이 모여든다는 '피란'의 낚싯대를 드리운 강태공의 뒷모습도 여유로워 보였다. 내륙국 코소보와 아드리아해를 서쪽에 두른 알바니아는 민족과 언어가 같지만 자연환경에서 대차게 갈린다고 소개하며, 산전수전 다 겪은 도시로서의 변모를 갖춘 발칸 반도에서 두 번째로 큰 로마시대 원형극장을 언급한다. 발칸 반도의 총성이 다시는 울리지 말았으면 하는 소망이다. 이 부의 마지막을 장식한 셰이셀은 115개의 섬으로 이뤄졌다고 한다. 세이셸은 1498년부터 프랑스인이 정착해 살았고, 오랜 기간 영국의 지배를 받았던 탓에 프랑스어와 영어도 통용된다고 한다. 그러나 세이셸 전반에 걸친 '혼성 문화'를 상징하는 단어인 '크레올Creole'어가 주로 쓰인다. 크레올은 사실 서인도제도에 정착한 유럽인의 후속 혹은 유럽인과 흑인의 혼혈을 뜻한다. 유네스코 지정 세계자연문화유산이자 국립공원인 발레 드 메이에는 오직 세이셸에서만 서식하는 코코 드 메르'Coco de Mer(바다의 코코넛)' 나무가 6,000여 그루 군락을 이루고 있다고 소개한다. 수나무 열매는 남자 생식기관을, 암나무 열매는 여자 엉덩이를 닮았다. 열매의 무게가 무려 25kg에 육박한다고. 실제 사진으로 보면 정말 실감난다.

'3부-예술의 풍경'편은 역시, 예술하면 유럽인가 보다. 스페인, 네덜란드, 이탈리아, 프랑스의 각 예술도시를 소개한다. 먼저, 2,000년의 역사가 숨 쉬는 발렌시아는 '예술과 과학의 도시'가 세상의 빛을 보면서 관광객 유입이 늘어 서비스산업이 활기를 띠고 있다고. 다음은 네덜란드 버금의 도시이자 유럽 최대의 무역항인 로테르담을 소개한다. '다시 만들어진 도시, 환골탈태의 도시, 상전벽해의 도시'로 요약할 수 있는데, 이는 1940년, 6일간 이어진 독일 나치의 공습으로 도시의 80%가 폐허로 변한 로테르담의 전후 복구는 복원이 아니라 창조에 가까웠다고. 이어서 우리에게는 퍽 생소한 이탈리아 중북부 동해안의 마르케Marche를 소개한다. 그중 중요도시 우르비노Urbino는 성모화의 대가 '라파엘로Raffaello'의 고향이라고 한다. 르네상스 시대에 활짝 꽃을 피운 도시라고.

프랑스는 역시 여행에서 예술과 와인을 빼놓고는 설명하기 힘든 것 같다. 먼저 프랑스 남부의 프로방스에서는 근대회화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폴 세잔Paul Cezanne'이 일생을 보낸 도시, 엑상프로방스다. <이방인>의 작가 '알베르 카뮈'와 관련 있는 '프랑스의 가장 아름다운 마을'중 하나로 선정된 '루르마랭'을 소개한다. 또 고흐가 한 해동안 지내며 최후의 예술혼을 불태웠다는 생레미드프로방스의 생폴드모졸Saint Paul-de-Mausole을 소개한다. 이어서 와인의 메카, 아키텐을 소개한다.

'4부-사람의 풍경'편에서는, 중년에 접어든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버마로 더 익숙한 미얀마에서 삼가는 마음으로 불교의 나라를 순례했다는 저자는 "미얀마 사람들의 가공되지 않은 삶의 풍경이었다."(본문 p.241)고 세계 최고 불교 국가인 미얀마의 여정을 풀어내고 있다. 미얀마의 수도를 역임했던 양곤과 그로부터 약 80km거리에 있는 바고의 관광지를 돌아보았다. 다음은 9,500년 전부터 사람이 거주했다는 레벤트 협곡 일대와 래프팅과 트레킹 명소로 알려진 다렌데Darende의 토흐마Tohma협곡을 소개하고 있다. 또한 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의 공통 조상인 아브라함의 전설이 서린 샨리우르파 도처를 둘러 본 동선을 소개했다. 이어서 '내전', '인종청소'같은 무시무시한 단어가 맨처음으로 떠오르는 코소보의 수도 프리슈티나Pistina에는 국민들의 약 90%이상 절대다수가 이슬람교를 믿는 상황에서 도시 한복판에 10년의 공기를 들여 도시 한복판에 '마더테레사성당'이 굳건하게 서 있다고 한다. 또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그라차니차Grancanica 수도원을 소개한다. 이 국가를 표현한 가장 인상적인 내용은 "코소보에는 '적도 재워준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내 집 찾아온 사람을 기꺼이 맞이하는 환대의 정서가 강하다. 심지어 이런 표현도 있다. '내 집의 소유주는 첫째가 선이고, 둘째가 손님이며, 셋째가 나 자신이다'라고. 이 외에 예로부터 뛰어난 예술가들을 많이 배출했지만 경제적으로는 가장 낙후된 곳으로 꼽히는 자코바도 코소보에서 빼놓을 수 없는 지역이다. 다음으로 느긋한 분위기 속에서 카페와 시장과 디자인을 질료삼아 이어지는 여유로운 일정을 소개한다. 건물 하단부에서 최고층에 이르기까지 90도로 뒤틀려 있어 꽈배기를 연상시키는 '칼라트라바'의 사진이 인상적이다. 이 부의 마지막 꼭지인 그리스의 3대 관광지 산토리니, 낙소스, 아테네를 소개하는 여정이다. '사람의 땅'이라는 소주제로 '신들의 나라'를 소개하는 반어적 기법이 백미다. "가보니 제우스를 비롯한 신화 속 제후들이 그리스 관광자산의 거의 모든 것임을 명확히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정작 마음 밭에 밟혀드는 것은 초인간적인 신들이 아니라 지표면에 두 발 붙이고 사는 평범한 사람들과 그들이 영위하는 지루한 일상이었다. 그리스도 결국 사람의 땅이었다."(본문 p.303)라고 표현한 것이다.


많은 여행작가들이 단순히 풍경만을 열거하는 소개하는 경우는 없다. 당연히 자신의 철학과 사상을 장엄하고 다채로운 경관에 녹여내어 표현한다. 각각의 결이 다른 그들의 발자취를 보며 에세이스트로서 한 분야를 확실히 구축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번 작품에서 만난 노중훈 작가는 '풍경의 안쪽'이라는 제목에서 말하고 있듯, 겉보기에서 보여지는 외관만이 아닌 풍경 속에 담겨진 역사, 문화 생활상을 풀어냈다. 여느 여행도서보다 좀 더 감성을 자극하는 문학적 언어를 사용하여 어휘사전을 들춰보며 의미를 되새겨보는 즐거움까지 선사하고 있다.

최근 각종 이색적인 독서법의 유행과 더불어 '필사'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필사 모임들도 활발하게 조직되어 활동하고 있는데, 이번 <풍경의 안쪽>의 여러 문장들도 필사의 욕구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예를 들면, 북유럽 오로라를 마주한 심경을 "하들하들한 밤안개와 총총한 별들이 힘을 합쳐 내뿜는 광채 때문에 쉼 없이 옷깃을 파고드는 높바람 속에서도 커피 한 잔을 다 마실 때까지 3층 테라스를 벗어날 수 없었다."(본문 p.30)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 밖에도 여기저기 주옥같은 문장들을 소금처럼 흩뿌려 놓았다. 그러고보면 상상출판사의 작가 섭외력도 대단한 것 같다. 나의 어줍잖은 수준이긴 하지만, 글쓰기에 관심있는 문장 수집가라면 꼭 한 번 책 속 아름다운 문장들을 만나보길 바란다. 필사하며, '나도 언젠가는 저자보다 더 아름답고 가슴에 남는 문장을 만들거야.'라는 결기도 다져보자. 그리고 자세히 보아야 아름답다던 유명 시인의 말처럼, 좀 더 자세히 관찰하고 깊게 생각하는 습관을 들여보자. 독자들의 시선이 더 오래 머물 수 있고, 가슴떨림을 느낄 수 있도록.

본 서평은 상상출판으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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