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행복을 촬영하는 방사선사입니다
류귀복 지음 / 지성사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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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스토리에서 '천재작가'라는 필명으로 활동중인 류귀복 작가님의 첫 출간작인 이 책은, 자상한 남편이자 멋진 아빠로서 살아가는 작가님의 훈훈한 일상을 담고 있다.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치과에서 방사선사로 근무하고 있는 류 작가님은 결혼 직후 강직성 척추염이라는 중증 난치질환을 진단받고 방사선사인 직원과 환자를 겸임중이라고.

내가 쓴 부끄러운 공저 시집을 받으신 후 처음으로 내게 이 귀중한 첫 책을 보내주셨다. 직접 내가 사는 지역에 딸과 함께 방문하여 책에 친필 사인본을 건네주시겠다고 하는 걸 거절한 직후였다. 직접 방문하시기엔 내가 사는 동네가 어쩐지 부끄러웠고, 대면 만남을 가지기엔 내 몰골이 너무 누추해서 작가님께 차마 공개할 순 없었다. 게다가 순수하고 예쁜 공주님인 딸이 구경하고 가기엔 재미있는 동네도 아니어서 사양할 수밖에 없었다. 대신 작가님 아내분의 지인이 운영하시다는 경기도 포천의 '카페 비그린'은 한번 가보고 싶다. 작가님이 딸과 노는 법을 배웠다는 불멍이 가능한 카페. 상상만으로는 그 감성을 느끼기엔 부족하니 직접 다녀와야겠다. 다만 거리가 멀어서 걱정이다. 작가님도 차로 두 시간 걸렸다는데, 우리 동네에서는 두 시간도 훨씬 더 걸리지 않을까.


작가님은 중학교 입학한 이후 안경을 쓰기 시작했음에도 시력 교정이 되지 않아 스무 살 성인이 되어 안과에 가니 '원추각막' 진단을 받았다. 또 결혼 직후엔 '강직성 척추염' 진단을 받았다. 하필 이 두 질환은 유전질환이라, 여섯 살이 된 딸이 시력이 나빠 안경을 쓰게 되니 마음 아파하는 작가님. 훗날 본인처럼 아플 아이 생각에 결혼한 지 5년이 지나 어느 정도 강직성 척추염이 관리가 된 시점에서야 임신 준비를 했다고. 유전이긴 하지만 남성보다 여성에게서 발병률이 낮다는 통계를 믿으며 딸이 태어나길 간절히 소망했고, 마침내 딸이 태어나니 여느 아버지 못지 않게 딸바보가 되었다.

나는 대한민국에서 여성으로 살아가기가 힘든 세상이니 아들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아들이 태어났다. 사실 아이를 별로 안 좋아해서 하나만 남으려는데, 남아선호사상이 아직도 은연 중에 깔린 우리나라에서 이왕이면 외동 아들이면 면이 서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작가님은 내게 '산타클로스'라는 꼭지가 개인적으로는 맘에 든다고 하셨지만, 나는 '마니토'가 좀 더 마음에 들었다. 책을 좋아하는 남편에게 아내가 『파친코』1,2권을 선물한 것에 대해 진심으로 고마워하는 작가님의 반응을 보면서, 책보다는 현금을 좋아하는 자린고비 우리 남편이 떠올랐다. 그런 남편이 읽고 싶다는 책을 말했을 때 냉큼 사 주었는데도 작가님처럼 눈물나게 고마워하지는 않았던 기억을 소환하며 씁쓸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의 첫 번째 공저 시집 <마음에 때를 벗기고>에 이어, 두 번째 공저 시집 <겨울의 편린>이 나왔을 때도 반응이 신통찮았다. '주 여사'란 호칭 대신 '주 작가님'이란 별칭으로 불렸을 뿐.

자기계발서는 아니지만 열심히 살아 온 작가님의 삶 속에서 터득한 신조인 '시간은 '기브 앤 테이크'를 잘한다'라는 꼭지에서, 열심히 사는 우리지만 때때로 지쳐가는 현대인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특별히 시선이 오래 머물게 했다.

열심히 살아온 사람에게는 그 어떤 아름다운 과거도 현재만 못하다. 과거가 더 아름다운 사람은 그보다 충분히 더 아름다울 수 있는 현재를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포기하고 싶지 않은 현재를 만드는 건 결국 개인의 선택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환상 속에만 존재하는 타임머신의 티켓을 구하기 위해 아등바등하는 사람들이 있을 텐데, 그들 중 하나가 되는 것을 과감히 포기하고, 소소하고 아기자기한 행복으로 가득 채워진 오늘을 아름답게 가꿔 나가기 위해 기꺼이 시간을 사용했으면 한다. 물론 아픔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라면 그 아픔까지도 포기하고 싶지 않은 소중한 추억이자 삶의 원동력이 될 수 있다.

본문 pp. 138-139

이렇듯, 류 작가님은 '강직성 척추염'과 싸우면서 하루하루 소중한 순간들을 기록하고 책 모든 페이지에 가족들에 대한 사랑을 심어두었다.

출간일이 2월 26일이라 다가올 봄을 생각하며 정한 것인지 표지디자인이 진분홍색이어서 조금 아쉽긴 하지만, '마치는 글' 편에서 감사한 사람들에 대해서도 진심을 담아 써내려간 이름이나 사연이 언급된 당사자들에게는 선물을 받은 듯 기쁘고 뿌듯할 것이다. 나도 추후 책 출간시 진심을 담아 고마움을 가감없이 글로나마 전해야겠다.

일상이 지루하고 수시로 지치시는 분, 그저 '힘들지? 괜찮아, 잘 될거야'라는 위로 멘트에 영혼 없다고 느끼시는 분이라면 중증 난치성 질환인 강직성 척추염을 앓으면서도 자신의 병마와 잘 공생하는 류 작가님의 따뜻한 일상 이야기를 읽으며 용기내보자. 살면서 누구나 질병 하나쯤 달고 살기 마련이지만 그 질병조차 동행해야 할 친구처럼 자연스레 받아들이는 것. 그래야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생을 잘 버티며 살 수 있지 않을까.

힘내 보자. 지치지 말고 오늘을 살아내보자.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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