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관부재판과 할머니들 - 일본의 관부재판 소송 지원 모임과 한국의 피해자 할머니들이 함께한 28년의 기록과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
하나후사 도시오.하나후사 에미코 지음, 고향옥 옮김 / 책숲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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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일본인 시민운동가 출신 부부인 '하나후사 도시오'와 '하나후사 에미코'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법 성립을 목표로 활동하며 기록한 저작물이다.

대부분의 도서들은 저자 소개를 책날개부분에 싣고 있는데, 이 책은 맨 뒷부분에도 번역자 소개까지 함께 재차 실어줌으로써 번역자에 대한 배려도 잊지 않았다.

저자들은 일본인임에도 불구하고 1992년 12월 25일, '부산 종군 위안부·여자근로정신대 공식 사죄 등 청구소송'의 재판을 '관부재판關釜裁判'이라 부르기로 결정한 이후, 28여 년간 꾸준히 피해 할머니들의 소송을 돕고 있다. '시작하는 글'에서 저자 부부는 "이러한 악순환에서 벗어나는 길은 한일 양국의 지속적인 대화와 피해자들에 대한 분명한 해결책일 것입니다."(p.7)라며, 국가적 차원의 신뢰 관계 회복과 피해자에 대한 직접적 사과 등 가해국 일본의 '위안부'문제에 대한 입법 활동을 촉구하기도 했다고.

총4부로 구성된 목차를 소개하기 전, 관부재판에 참여한 피해자 원고 할머니 열 분의 명단을 공개한다. '위안부' 피해자이신 하순녀, 박두리, 이순덕 할머니 세 분과 근로정신대 피해자이신 유찬이, 박so, 박su, 정su, 강yo, 이yo, 양금덕 할머니 일곱 분을.

1부, 영화 《허스토리》와 관부재판에 대해서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관부재판'에 대한 명칭의 유래를 설명한다.

"'관부재판關釜裁判'은 오래전, 원고들('위안부' 피해자 3명, 여자근로정신대 피해자 7명, 총 10명)이 고향을 떠나와서 깊은 상처를 받았고, 그분들에 한 맺힌 해협이 재판을 위해 오가는 동안 희망의 해협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명명한 것"(본문 p.25)이라고 하여, 지명을 한 글자씩 따서 '관부재판'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이 소송의 정식 명칭은 '부산 종군 위안부·여자근로정신대 공식 사죄 등 청구 소송'이다.

한편, 영화 《허스토리》가 이 관부재판을 기반으로 한 내용임에도 오류가 상당하여 항의서한을 제출했다고 한다. 저자들은 주요 문제점 세 가지를 언급한다.

① "정신대=일본군 '위안부'"라는 한국 사회의 오해를 다시 확산시킬 만한 우려를 안겨 준 점.

② 당시의 일본 사회를 혐한 감정이 만연해 있는 듯이 그린 점.

③ 스스로 전후 책임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진심으로 일본 사회를 바꾸려 했던 변호인과 지원모임의 활동이 누락된 점.

이라고.

아울러 '한국에서는 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정신대 피해자와 동일시하는 것일까?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며, 역사적으로는 일본이 태평양전쟁을 일으키기 전, 조선에서는 정보가 통제되었던 탓에 여자근로정신대 원고들은 사전에 일본의 어느 지역, 어떤 공장에 가는지 전달받지 못했고, 당시 일본의 탄광의 조선 음식점들에는 조선에서 끌려온 여성들이 매춘을 강요당하던 상황이었기에 여자근로정신대를 '위안부'로 혼동했을 것이라고 한다. 그러한 혼동은 1990년대 초반,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한일 외교 문제로 부상되면서 더욱 심화됐는데, 과거 한국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응하는 단체의 명칭이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였던 것에서 알 수 있듯, 한국 사회에서 정신대는 곧 일본군 '위안부'라는 인식이 미야자와 총리 방한 당시 매스컴의 자극적인 보도로 가중되었다는 지적을 한다.

2부, 관부재판의 과정과 후지코시 소송

이번 편에서는 야마구치 지방재판소 시모노세키 지부에 소송을 제기한 것을 시작으로, 소송을 시작한 지 5년 4개월, 스무 번의 구두 변론을 거쳐 1998년 4월 27일 판결의 날에 저자들의 표현에 의하면 '획기적인 승소 판결'이 내려졌다고 한다.

우선 위안부 원고들의 진술과 공술의 신빙성을 인정했다는 1993년 8월 4일, 당시 관방장관이었던 고노 요헤이씨가 발표한 일명, '고노 담화'를 인용하며, 그 담화로부터 3년이 경과한 1996년 8월말의 시점에서는 위 입법을 추진해야 하는 합리적 기간 경과로 입법 부작위에 의한 정신적 손해 배상 청구권을 인정했고, 손해배상액은 인당 각 30만엔으로 산정한다는 취지라는 것.(본문 pp.92-97 판결문 참조)

이후, 2001년 3월 29일, 히로시마 고등재판소 판결 패소, 2003년 3월 25일, 최고재판소 기각 결정 통지문을 받았다고.

한편 2000년 7월 11일, 최고재판소에서 제1차 후지코시 소송의 화해가 이루어졌다고, 제2차 후지코시 소송을 2007년 9월 19일, 패소 판결을 시작으로, 그 후 나고야 고등재판소 가나자와 지부 재판, 최고재판소 재판(2011년 10월 24일)에서 연이어 패소 판결이 났다고.

그리고, 2012년 5월 11일, 한국 대법원은 미쓰비시 강제징용 피해자 소송에서 원고 패소의 1심, 2심 판결을 파기하고, 고등법원으로 환송해 획기적으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고, 2013년 2월 14일, 후지코시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던 원고들도 서울 지방법원에 제소하여 2014년 10월 30일에 마침내 승소하였다고 한다. 이는 일본 제소 후 무려 22년이 지난 거라고. 그리고 2019년 1월 18일, 서울 고등법원에서 승소하여 3월 26일에 한국 내 후지코시 자산을 압류하고, 5월 1일에는 한국 내 자산 매각 명령을 신청했다. 안타깝게도 원고 6명 중 박so 할머니, 성s 할머니, 유찬이 할머니, 박su 할머니는 한을 풀지 못하고 이미 돌아가신 후였다고.

3부, 새로운 싸움

이번 편은 일본이 해방 이후부터 지속적으로 행하고 있는 '역사교과서 왜곡'과 관련하여 전개한 여러 의미있는 활동을 열거한다. 1992년 한국을 방문한 미야자와 총리는 당시 노태우 대통령에게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관한 진상 규명을 요청받고, 1993년 8월 4일 고노 관방장관의 담화 발표 이후, '여성을 위한 아시아평화국민기금'(이하 '국민기금')이란 명칭으로 1995년 7월, 재단 법인으로 발족되어 1년 동안 국민을 대상으로 모금 운동을 펼쳤다고. 이와 더불어 1994년 8월 19일자 《아사히신문》1면에 "전 위안부에게 '위로금(미마이킨)', 민간 모금으로 기금 구상, 정부는 사무비용만, 직접 보상을 피한다."라는 기사가 실렸고, 이 소식을 접한 이순덕 할머니는 일본어로 고성을 질렀단다.

"나는 거지가 아냐! 여기저기서 모금한 돈을 내가 왜 받아! 그런 거지 같은 돈은 안 받아! 일본 정부가 확실하게 사죄하고, 내 앞에 와서 돈을 받아달라고 하면, 그땐 기꺼이 받지"(본문 p.146)라고.

이후 1997년 당시 일본의 총리였던 아베 신조를 비롯한 역사수정주의자, 보수파 정치인과 연구자들을 고노 담화를 비판하며 '위안부' 문제를 왜곡하기 시작했다. '자유주의사관 연구회' 학자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을 결성하여 중고등학교 역사 교과서에서 '강제 연행', '종군위안부', '난징 대학살'과 같은 기술을 삭제할 것을 일본 정부에 요구하고 지방의회에서 의견서가 채택되도록 활동하는 동시에 새로운 교과서 만들기에 뛰어들었다.

이에 저자 부부와 의식있는 각지의 시민들이 모여 '전쟁 가해에 대한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입법 운동'을 벌였으나, 아베가 이끄는 다수 의석의 자민당 내각하에서는 번번이 실패했다고. 심지어 2019년 한국 대법원에서 내린 '강제징용 피해자 판결'에 반발하여 반도체를 비롯하여 한국 기업에 대한 부품 수출 규제를 강화함으로써 문재인 정권과 대립각을 세우면서 일본의 내셔널리즘을 끊임없이 부추겼다고 그간의 경과를 전한다.

한편, '조선인 강제동원 노동자의 유골 조사 진행'이라는 꼭지에서는, 일본 지역 곳곳에 흩어져 있는 매장 또는 화장된 유골을 찾아 국내로 송환하는 절차까지 밟은 사례들도 전한다.

2011년은 '수요집회'가 1,000회를 맞는 해였음에도 이 책을 읽으며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다.

4부, 관부재판의 피해자 할머니들과 함께한 28년

이 부분은 아마도 아내인 하나후사 에미코씨가 전담하여 기술한 내용인 것 같다. '전후 책임을 묻는다-관부재판을 지원하는 모임'의 사무국 살림을 맡아 나눴던 원고 할머니들과의 교감과 추억을 회상하는 내용과 지원모임 회원들의 활동 소감을 소개하고 있다.

먼저, 돌아가신 할머니들은 '나눔의 집'에서 생활하셨던 박두리 할머니(일본군 '위안부' 원고, 피해지 대만), 부산에 사셨던 하순녀 할머니(일본군 '위안부' 원고, 피해지 상하이), 서울에 있는 '평화의 우리집'(정의연이 운영하던 피해자 쉼터)에 거주하셨던 이순덕 할머니(일본군 '위안부' 원고, 피해지 상하이), 박so 할머니(후지코시 원고, 서울 거주), 박sun 할머니(후지코시 원고, 부산 거주), 유찬이 할머니(후지코시 원고, 부산 거주). 이렇게 여섯 분이시다.

에미코씨는 원고 할머니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진 못했지만 우리가 그동안 해왔던 활동에 녹화는 없다며, "유일한 후회라면 한글을 배우지 못한 것"(본문 p.280)이라고 소회한다.

지원모임 회원들 중 MJ씨는, 표면적으로는 일본과 한국의 역사를 알기 위해서, 한일 교류의 연장선이자 모임의 활동이 페미니즘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 외에도 원고 할머니들에게서 고독과 불안, 분노의 감정을 발견하고 개인적 공감대가 생겨서였다고.

또 다른 회원 이노우에 유미씨는 10대 때부터 이웃나라 한국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고등학교 때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났었다고 회상한다. 한국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면서 재일한국인·재일조선인에 대한 차별을 알게 됐고, 의분을 느끼며 '이런 차별은 없애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이를 계기로 훗날 관부재판 지원 운동에도 참가하게 된 것 같다고.

하나후사 도시오씨는 책의 말미에 "원고들이 진정으로 바랐던 것은, 자신들이 입은 피해와 상처에 대해 일본 정부와 기업이 진지하고 마주하고, 제대로 대응하고, 진심으로 사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배상으로 그 증거를 보여 달라는 것이었습니다."(본문 p.303)라고 기술하여 관부재판의 원고 할머니들께서 '진정한 사과'를 받고 싶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그렇게 바라던 재판 승소를 이뤄내지 못한 채 한 분 한 분 떠나보낸 원고 할머니들에 대한 미안함도 고백한다.

'마치는 글'에서, 이 책 집필의 궁극적 목적인 '냉정한 역사 인식'에 대한 당부를 잊지 않았다.

"지금 우리는 배외주의와 자국 제일주의의 감정적인 언설이 난부하는 매우 위태로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더욱 전쟁과 식민 지배의 피해와 가해를 이야기할 때, 감정에 사로잡히지 않고 필요 이상으로 상대를 자극하지 않아야 합니다. 더불어 어떻게 하면 증거에 입각한 냉정한 역사 인식을 형성할 것인가를 고민히고, 그 결과를 공유하여 다음 세대에 전해야 합니다. 이러한 잣로 향후 활동에 임할 것을 다짐하면서 피해자 개개인의 존엄이 회복되기를 진심으로 염원합니다."(본문 p.311)라고.

방송에서 짤막하게 보도되는 내용만으로 한 때는 '정신대'란 이름으로 통칭되던 '위안부' 할머니들과 '근로정신대 할머니들의 고통을 그저 '많이 힘드셨겠구나' 정도로만 짐작했다.

그러던 중 소녀상이 세워지기 시작했고, 수요집회도 꾸준히 개최하고 하면서 '위안부'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었으나 논문은 부담스러워 엄두를 못내고 있었는데 이번 도서를 통해 '위안부'와 '근로정신대'는 엄연히 다른 개념임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또, 최초 관부재판이 1992년 12월 25일 처음 제소되었다니······. 역사적 사실임에도 일반인인 나는 거의 모르고 있었다는 게 부끄러웠다. 그리고 2018년 10월 30일 일제강점기 당시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이론 기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 대해 1인당 1억원 씩 배상하라는 대법원의 최종 확정 판결로, 근로정신대 원고 할머니들은 배상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으나 올 봄 한국 정부는 대법원 판결이 국제법 위반이라는 일본 입장에 수긍하는 태도를 보였고, 제3자 변제만을 강행했다.

이 책은 일본인이 한·일 관계의 바람직한 관계 개선을 바라며 그 선결 과제인 일본 '위안부' 및 '근로정신대' 할머니들의 관부재판 소송 지원을 하게 된 경위와 진행 절차를 기록한 일종의 역사서이다. 저자 부부처럼 일본 정부도 전향적 입장에서 일제 강점기에 강제로 끌려가 온갖 능욕을 당한 피해자들에게 진심으로 사죄하고 역사적 과오를 인정하고 반성한다면 일제 강점기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무려 백 여년 넘는 두 민족간의 이념 갈등과 대립을 해소하고 긍정적 상호 협력 관계로 진전될 수 있을 텐데 안타깝다. 그때나 지금이나 일본 앞에만 서면 조선과 한국은 왜 작아지는지.

'위안부'와 '정신대'가 아직도 동일 개념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꼭 이 책을 보시고 이번 기회에 확실히 개념 정립하시길...

본 서평은 도토리숲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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