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하는 이들을 위한 민주주의
최태현 지음 / 창비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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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서울대학교 법학(학사)과 행정학(석사)을 공부하고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학교에서 정책게획확(공공관리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최태현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교수님이다.

표지에서 책 속 화두들을 나열해 놓고, 본 제목은 코팅 및 음각 처리한 굵은 검은 활자로 디자인 돼 있어서 독자들에게 본문 내용을 유추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한다.

게다가 속지에서 '시각장애인을 위한 표지 설명'까지 기재해두어 저자의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가 각별함을 느낄 수 있다.

전체 413쪽 분량에 본문은 8장으로 구분하여 절망, 역설, 민주주의, 희망 등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를 정의하기 위한 개념을 설명한다. 다수의 인문ㆍ사회과학 서적들의 대부분이 '평어체'로 기술된 것과는 달리 이 책에서는 저자가 '경어체'로 서술하고 있다. 문장들을 읽어 내려가는 동안 마치 강의실에서 저자 최태현 교수님의 강의를 듣고 있는 청강생이 된 듯하다.

제1장-우리가 살아가는 세계 : 절망과 역설

이 책 전체에서 논의되는 개념인 '사회적 약자'와는 다른 '작은 자'와 '처방적 권력자'에 해당하는 '철인왕'에 대한 저자 고유의 정의를 소개한다.

"작은 자의 본질은 마치 비가 내리는 날 작은 우산을 들고 사람과 차들을 피해 천천히 길을 걷는 사람처럼 이 세상에서 많은 권력을 추구하지 않고 겸손하게 살아가는 존재, 이 땅의 작은 부분만을 차지하면서 많은 것을 소비하지 않으며 살아가는 존재라고 하겠습니다."(본문 p.23)이라고 한다.

"'작은 자'와 달리 처방적 지식과 권력을 가지고 자신의 묘책을 이 세계에 구현하고자 하는 강렬한 의지를 지닌 이들을 '처방적 권력자'라고 불러봅시다. 우리에게는 이들을 지칭할 그럴듯한 개념이 하나 있습니다. 철인왕입니다."(본문 p.26)이라고 하며, "우리가 일반적으로 인식하는 국가 혹은 정부가 바로 철인왕의 이미지를 입고 있습니다."(본문 p.28)라고 부연한다.

한편, 저자는 책의 전체적 구성을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이 책은 일필휘지하기보다는 소제목을 활용해 본문을 다소 잘게 나누었습니다. 각 소제목 아래의 본문만 읽어도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해보았습니다. 그리고 본문의 논의가 기존의 제 논문에서 뻗어나온 경우 해당 논문 정보를 후주에 담았으니(딱딱한 글이긴 하지만) 추가로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아울러 여러분은 본문을 처음부터 읽어도 되고, 소제목을 먼저 탐색하여 이슈 중심으로 읽어도 되고, 소제목을 먼저 탐색하여 이슈 중심으로 읽어도 좋을 것입니다. 많은 분량의 이야기에서 우리의 생각이 모두 같을 수 는 없을 테니, 그 가운데 마음이 맞는 부분이 몇군데는 있기를 바랍니다."(본문 pp.48-49)라고.

제2장-들리지 않는 목소리

이번 장에서는, 우선 주권자인 국민이 선거로 선출한 대표자들의 집단을 통해 국가의 작동에 필요한 통치권을 국민의 이름으로 행사하는 제도인 대의민주주의에서 '대표'에 대해 알아본다.

반대로 참여민주주의는 공적 의사결정 과정에 다양한 속성과 다양한 규모의 시민단(보통 'mini-public'이라고 하는)이 관여한다.

또한 정부관료제의 대표 문제와 이러한 대표를 둘러싼 제도적 이슈와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의 마음에 대해 논의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과 민주주의를 위해 과연 무엇이 어떻게 대표되게 할 것인지, 대표를 중심으로 하는 민주주의가 작동하기 위한 마음은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제3장-국가는 어디에 있는가

이 장에서는 현재 우리 사회의 합리적 도구로 이해되고 있는 국가관료제와 그 활동인 정책에 눈길을 돌려, 이들의 역설과 실패에 대해 이야기한다.

또한 1990년대부터 공적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하는 주체의 다양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면서 등장한 행정과 정책의 주체와 과정이 정부로붙 시장 혹은 시민사회로 확장되는 현상을 가리키는 '거버넌스'개념을 중심으로 서술하고 있다.

"오늘늘의 정교한 거버넌스는 문제의 복잡성에 대응하는과정에서 공공부문이 적응하면서 조직화된 결과입니다. 그러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 대안을 작동시키는 제도의 복잡성은 그 자체가 문제가 되는 거 역설을 발생시킵니다."(본문 p123)라고.

제4장-최후의 인간들이 머무는 곳

이번 장에서는 정부라는 조직의 작동원리를 둘러싼 민주주의적 쟁점들을 짚어본다. "특히 우리가 주목할 것은 조직 구성원으로 공무원들, 나아가 우리의 마음"이라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조직 헌신을 강요받는 공무원의 특성상 자신의 전문지식과 신념을 뒤로한 채 정권의 요구에 맞는 정책을 억지로 꾸역꾸역 만들어낼 때 그 마음에 갈등이 없을 수 없다. 그래서 정치적 중립으로서 '영혼 없는 공무원'인 것이고, 또다른 '영혼 없음'의 형태는 직업공무원제를 도입하여 공무원의 신분을 보장하고 있는 현행 인사제도의 불가피한 결과 가운데 하나로서 발생하는 '복지부동'이나 '무사안일'이라고 지적한다.

그러므로 저자는 "우리에게는 관료제에 대한 기능적 기대를 충족시키면서도 그 안의 관료-바로 우리 자신-를 비인간화하지 않는 길을 모색할 방안이 필요합니다."(본문 p.171)라고 강조한다.

제5장-우리의 왕이 되어달라

이번 장에서는 민주주의 제도하에서의 바람직한 리더의 자질과 역할에 대해 이야기한다.

오늘날의 민주주의는 입헌주의나 법치주의라는 제도에 의해 통치되는 체제이지만, 그 제도를 올바르게 작동시키는 데 필요한 바람직한 리더의 역할은 무엇인가에 대한 저자의 고민이 담겨있다. 그리하여 왜 우리의 리더들은 때로 루리를 절망시키는가에 초점을 두고, 나아가 우리가 기대하는 리더와 우리의 태도, 그리고 민주주의 간 복잡한 역설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리더의 정치적 책무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목표의 언어화'와 '의사 결정'이라고.

-목표의 언어화 : 리더가 한 집단의 목표를 '명확하게', '윤리적 언어로' 표현해야 한다는 것. 그러므로 모질고 어리석은 말들을 쏟아내는 리더들에게 절망감을 느끼는 것은 그 말들 자체가 그들이 자신들의 일을 제대로 하고 있지 않다는 신호이기 때문

-의사결정 : 리더는 수많은 개별적 사례들로 이루어진 우리의 삶의 제도와 상황 속에서 어떤 상황의 본질이 무엇인지, 어떤 제도가 적용되어야 하는지 등을 해석하고 결정하는 조직의 최종적 의사결정 주체라는 것.

문제는 이 결정을 내리지 않는 리더들이 존재한다는 것. 자신이 내려할 결정을 팔로워follower에게 미루는 유형과 정말 아무 결정도 내리지 않는 유형이 있다.

'능력주의'와 관련한 민주주의의 여러 폐해를 지적하며, 저자는, "일방적인 관계는 결국 정당성을 상실하고 자유를 앗아 갑니다. 그리고 그런 권력에 순응할 때 우리의 마음은 타락합니다. 능란한 정부가 아니라 평범한 국민에게 잘할 기회를 주는 것이 민주주의의 가치입니다."(본문 p.227)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복잡한 문제는 거대한 한 명의 철인왕, 즉 국가가 아니라 작은 수많은 시민들이 풀어가야 하는 거라고 저자는 새삼 강조한다.

제6장-민주주의의 마음

앞 선 네 장에서 이야기했듯 민주주의는 많은 역설과 한계를 가지고 있기에, 이 장에서는 테리 템페스트 윌리엄스의 "인간의 마음은 민주주의의 첫번째 집이다."라고 한 말을 중심으로 민주주의의 마음을 돌아본다.

첫째, 공정과 너그러움

-기회의 평등 : 시민들이 어느 정도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유사한 수준의 기회를 누릴 수 있음을 의미

-과정의 공정 : 특정한 인물의 자의성이 아니라 누구나 예측가능하고 표준적이며 투명한 기준과 절차에 따라 공적의사결정이 진행됨을 의미

-결과의 정의로움 : 이러한 기회와 과정의 결과를 사람들이 마음에 수용할 수 있는, 누군가가 부당하게 더 가지거나 덜 가졌다고 생각되지 않는 상태를 의미

-너그러움 : 일방적인 시혜나 마음의 '집행유예'가 아니라 타자를 인정하고 이해하고자 노력하며 그의 처지에서 나온 행동을 끝까지 존중하는 것을 의미. 우리가 알고 있다고 믿는 부분적 것이 아니라, 미움에 이르지 않고 각박함에 이르지 않는 것을 의미.

둘째, 마음의 부패

-권력과 마음의 부패 : 권력은 남용되기 쉽고, 남용되기 시작한 시점부터는 누구라도 그 권력의 부당함을 인식하지 않을 수 없는데, 그 상황을 빠져나올 길이 없다면 우리의 마음은 부패하기 시작.

-경제적 보상과 마음의 부패 : 외재적 보상을 통해 우리의 마음에 영향을 미치려 할 때, 그 금전적 보상은 일종의 마음의 '뇌물'bribe이며, 그것은 우리의 마음을 부패시킨다는 마이크 샌델의 주장을 소개.

셋째, 두려움과 사랑

-두려움과 혐오 : 권력을 쥐자 비로소 보이기 시작한, 자기보다 더 강한 권력에 대한 두려움과 그 권력을 잃음으로써 지금의 통제력을 잃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존재한다고. 혐오는 내 외부의 무언가가 나를 오염시킬 것이라는 두려움에 기반하여 그 오염원을 멀리하고 거부하는 태도라고 설명.

-사랑 그리고 슬픔 : 민주주의에서 사랑이란 사람과 사람 간의 거리를 없애는 에로스적인 합일의 욕구라기보다 이해, 대화, 상상, 용서, 포용, 돌봄, 상호 신뢰의 기반이 되는 감정.

오늘날의 대한민국에서 발현되는 가장 극적인 형태의 감정은 아마도 슬픔, 정확히는 고통을 공유하는 중에 나오는 슬픔일 것이라고 저자는 설명. 이미 정부의 개입전에 우리 마음속에 오랜 시간 상처를 남겨놓았기 때문에 슬픔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고 부연.

넷째, 위로

비통해하는 동료 시민들을 조금씩 응원하고, 그들이 지쳤을 때 위로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일은 우리도 할 수 잇는, 해야만 하는 일이라고 강조.

제7장-공공성과 '작은 공'

저자가 이번 장에서는 감춰진 세계와 작은 자들을 포괄하는 공적 공간의 구성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공공성에 대한 다양한 견해와 이론적 관점을 담아 저자는 "공공성이란 "동료 시민을 인정함으로써 나오는 행동의 속성이자 그 행동이 빚어낸 물리적·사회적·관념적 결과물의 속성"입니다. 공공성에서 공公은 나와 다른 존재들과 어울림을 의미합니다. 공公적인 것은 국가나 정부와 같은 우리와 동떨어진 제도에 정부에 무엇을 맡겼는가에 달린 것입니다. 국가나 정부도 우리가 함께 구성하는 것이고, 우리가 함께(세금이나 노역을 통해) 지원하는 것이고, 그 결과를 우리가 함께 책임집니다. 따라서 공共할 때 공公한 것이고, 공公한 것이 공共한 것입니다."(본문 pp.300-301)라고 정의한다.

또한 '작은 공共'에 대해서도 저자는 "'작은 공'은 "국가 단위가 아닌 상대적으로 좁은 범위의 사람들이 '함께 하지만 그 이름으로 인해 억압되지 않는' 삶의 단위"로 정의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정의는 어떤 공共의 특성을 지칭할 뿐, 사람들이 연합하게 되는 매게, 즉 혈연이나 지연, 학연, 국적 등을 특정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마을 단위의 자조집단도 작은 공일 수 있고, 도시의 임의집단도, 직장의 소그룹도, 조합도, 환유회도, 작은 공일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의 구체적ㆍ일상적 삶에 착근되어 구성된 관계의 집합이라는 것입니다."(본문 pp.304-305)라고 정의한다.

이러한 말하지 못하는 '작은 공'의 사람들과의 개방적인 대화를 통해서 민주주의 처제에 부합하는 진정한 합의를 도출할 것을 주문한다.

제8장-역설, 선택, 그리고 희망

본론의 마지막 장이기도 한 이 장은, 앞 장에서 다루었던 내용들을 되새기며, "좀더 솔직하고 인간적인, 개인과 집단과 사회의 절망을 성찰할 수 있는 논의가 있어야 합니다. 불안한 희망이 유통되는 이 시대에 사회문제의 해결을 본령으로 삼는다는 학문이 절망을 성찰하는 것이 터무니없어 보일 수 있지만, 우리가 이 세상에 테마파크를 지으려는 것이 아니라면, 차라리 절망에 대한 성찰이 희망의 시작이 되어야 합니다. 답이 없다고 생각된다면 답이 없는 것 같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시민들이 자신의 삶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본문 pp.340-341)라고 강조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나'다운 내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덴마크의 쇠렌 '키르케고르'라는 철학자의 '단독자'이론을 소개하며.

'희망'을 절망의 다른 이름이라 칭하는 저자의 마지막 메시지로 이 책의 단단하면서도 유연한 어조로 밝히는 소신을 들어보자.

"우리는 절망과 구분되는 희망을 품는다기보다는 절망하기에 희망할 수 있습니다. 희망은 절망이 틔우는 싹이자 꽃일 것입니다. 하찮은 절망이 아닌 운명적 절망은 우리가 순진한 낙관에 빠지지 않게 하는 희망의 방부제 같은 것입니다. 그리고 희망은 생명의 방부제입니다. 이런 희망이란 절망이라는 어둠을 환히 비추는 밝은 빛 같은 '절망의 반대말'이기보다는 '절망의 다른 이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인간으로서 이 세계를 살아가면서 품을 수 있는 역설적 희망은 그런 것이라 생각합니다. 우리에겐 절망과 희망이 모두 필요합니다."(본문 p.370)라고.

'절망'으로 시작해서 '절망'을 언급하며 끝나는 이 책은 실은 절망의 이면인 '희망'을 더욱 간절하게 전하고 있다.

사회과학분야 도서에서는 보기 드문 '경어체' 사용으로 다소 지루할 수 있는 주제의 '정치적 담론'을 이야기하듯 편하게 풀어놓았다.

'민주주의'라는 허울좋은 체제를 내세우면서도 실질적으로는 독단적 의사 결정과 사회적 약자에게 '약자다움'을 당연하게 요구하는 풍토를 지적하며 '작은 자'의 목소리까지 담아낼 수 있는 '우리'라는 사회적 연대가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저자가 제1장에서도 권하듯, 무려 23쪽에 달하는 '후주'부분도 챙겨 읽으면 좋겠다. 또한 평소 문학류만 주로 읽는 독자라면 소제목을 찾아보며 관심있는 주제를 찾아 발췌독을 해도 좋을 것이다.

대한민국의 현실을 개탄스러워 할 독자들이여, 모쪼록 이 책을 읽으며 '조용한 울림'을 느껴 보시라.

본 서평은 창비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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