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조용히 무너져 있었다 - 의사 엄마가 기록한 정신질환자의 가족으로 살아가는 법
김현아 지음 / 창비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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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부터 의미심장한 이 책은,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졸업후 동 대학교 병원 내과에서 전문의·전임의를 수료하고 현재 한림대학교성심병원 류마티스내과 교수로 재직중인 김현아 박사님이 자신의 두 딸의 이야기를 써내려간 수기쯤 된다.


실제 정신질환으로 진단을 받은 건 둘째 딸로, 진단명은 '양극성 스펙트럼 장애'라고.

7년간의 딸의 정신질환의 증상과 치료를 담당하게 기술하고 있다. 책의 도입부에서 '세상이 무너지다'라고 쓴 것과는 달리. 그러면서 이 책의 집필의도에 대해 "'나와 남편 모두 의사로 일하는 우리도 이렇게 힘든데, 우리처럼 전문 지식을 가지지 않은 사람들은 이런 상황을 어떻게 견뎌낼까?'하는 마음으로, 외관상 아무 어려움없이 사는 것처럼 보이는 자신의 가족들의 이야기를 듣고 조금은 위안과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서문 p.8)이라고 밝히고 있다.

목차도 칠년 간의 둘째 딸의 양극성 장애의 본격적 치료과정인 '첫째 해부터 여섯째까지'와 '우리는 모두 정신질환자이다'라는 총 일곱 주제로 이루어져 있다.

또한 각 장마다 예술인이나 정치가 등 당대의 유명인들 중 정신질환에 시달린 이들을 소개한다.

  • 첫째 해-부인과 낙관

빈센트 반 고흐의 사례를 들어, 자신의 둘째 딸 안나의 '양극성 장애'진단에 대해 처음에는 의사 부모를 둔 비교적 넉넉한 형편의 가정의 자녀인 딸이 정신질환 확진을 받고도 오진일거라 부인했다. 이후 딸의 공황증세까지 직접 목격하고 나자 반신반의했다. 급기야 정신병원에서 처방받은 약을 다량 먹고 자해 시도를 한 후에야 정신병원 보호병동에 입원시켰고, 무려 7년여 간의 장기적인 치료가 시작되었다.

  • 둘째 해-먹구름

본 장의 주제만 들어도 우울한 기분이 들지 않은가. 앞 장의 고흐 못지 않게 에드바르 뭉크도 불안장애를 비롯하여 양극성 장애도 겪었다고 소개한다. 대작가 헤밍웨이도 평생을 종잡을 수 없는 기분의 변화, 강박증, 자살 성향에 시달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공부를 잘하던 아이였던 저자의 둘째 딸이 원하는 대학에 재수를 하고도 불합격해서일까? 저자는 딸의 양극성 장애의 원인을 분석하면서 유전적 요인과의 연관성을 언급한다.

"조현병과 양극성 장애는 일란성 쌍둥이 일치도가 가장 높은 질환들로 조현병의 일란성 쌍둥이 일치도는 33퍼센트,양극성 장애의 일치도는 43퍼센트에 이른다."(본문 p.70)라고.

그러나 이란성 쌍둥이에서 일치도는 10퍼센트 미만으로 낮아진다고 한다.

딸 '안나'의 첫 해 입원 후 조금은 안정된 모습을 보였고, 가족들은 일상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학교생활, 본가로의 복귀를 힘들어해서 결국 생활비는 알바를 해서 벌겠다는 고집을 꺾을 수 없어 다시 자취생활을 시작한 딸. 그러나 가을이 되자 아이가 조금 이상해 보이기 시작했다. 반려묘를 한 마리 들였기에 애완동물을 질색하는 남편 때문에 본가에서 살기는 힘들었다. 그런 딸과 겨울에 해외로 여행을 다녀왔다고.

"안나가 사회적으로 낙인찍히는 병에 걸렸어도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의연하게 대처해나갈 수 있기를 나는 마음 속으로 빌고 또 빌었다."(본문 p.78)라고 고백하며.

  • 셋째 해-삶의 증발

결국 가족의 깊은 병은 오롯이 남은 가족에게 근심과 부담이 된다.

이번 장에서는 비비안 리, 안젤리나 졸리, 드루 배리모어 같은 당대 유명한 여배우들의 정신질환의 사례를 소개한다.

뇌 구조와 신경세포에 대한 과학적 설명을 곁들여 정신질환에 대한 객관적 이해를 돕는다. 또한 충동을 억제하는 기능을 담당하는 전두엽이 손상되면 행동 조절에 애로를 느끼고 이에 따라 사회 생활이 어려워지기도 한다고.

그러나 "뇌의 기능은 대부분 연결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양극성 장애를 입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전두엽 한 영역만의 문제라고 당정하면 안 된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다시 안나는 커터 칼로 팔을 그은 자해로 보호병동에 입원했다. 그리고 입퇴원을 반복하는 생활이 이어졌다.

  • 넷째 해-폭풍 치는 밤바다

이번 장에서는 음악 천재인 '지미 핸드릭스'로 활동했던 '조니 앨런 핸드릭스'와 '커트 코베인'의 양극성 장애와 약물이나 마약 중독 등의 사례를 소개한다.

한편, 햇수로 4년째에 접어든 딸 '안나'의 상태는 점점 심해졌다. 그러다보니 저자도 흠칫 놀랄만큼 나쁜 생각을 하기도 했다고. 바로 '정신요양시설'에 입소시켜볼까 하는 생각. 사회복귀를 도모한다지만 시설 장기 입소자의 50.2퍼센트는 10년이상 머물고 있는 실정이기에, 시설 입소는 가족이 환자를 포기하느냐의 여부다.

입퇴원을 반복하는 아이를 보며 할 수 있는 거라곤 전화로 필요한 물품이나 먹고 싶은 것을 병동으로 들이밀어주는 것밖에 없었다는 저자는 일반 독자들에게는 불편할 수도 있는 '자살'에 대해 여러 저명 인사들의 연구와 분석 사례를 인용하여 상세히 설명한다.

  • 다섯째 해-있는 힘껏 병을 끌어안아보기

'모든 감정의 극단은 광기와 동지다'라는 버지니아 울프의 「올랜도」의 작품 속 구절을 인용하며, 버지니아 울프의 지속적언 정신질환의 악화와 정신병동 입원, 회복, 그리고 이따금의 자살 시도로 점철된 일생을 소개한다. 연배는 다르지만 버지니아 울프에게 영향을 받은 실비아 플라스는 우울증의 주증상인 양극성 장애와 자기애성 인격장애와 경계성 인격 장애의 특징도 보였다고.

국내의 사도세자 사례도 언급하며, 정신질환자를 돌보는 가족들의 어려움에 대해 1999년 4월 20일, 미국 콜로라도주 콜럼바인고등학교에서 12학년인 에릭 해리스와 딜런 클리볼드의 교내 총기 난사 사건 사례를 소개한다. 딜런 클리볼드의 교내 총기 난사 사건 사례를 소개한다. 딜런 클리볼드의 어머니, 수 클리볼드가 쓴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도 읽어볼 것을 권하며. 또 약물치료와 심리 상담을 병행해야 하는 정신건강의학과 진료의 특성상 환자와 잘 맞는 의사의 선택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한다. 이 와중에 저자는 큰딸에게도 문제가 있었다고 고백한다. 정도가 심하지 않아서 부모가 모르고 지나쳤다며.

입퇴원을 반복하는 둘째딸 안나가 본가로 돌아온 후 저자와 많이 부딪쳤다고 한다. 대신 내과의사인 저자는 아이가 처방받은 약 중 일부를 뺐더니 아이가 좀 나아졌다고.

또한 안나의 진단명 중 양극성 스펙트럼 장애와 함께 경계성 인격장애라는 언급이 있었다며, 엄연한 정신질환이지만 '인격장애'라는 이름 때문에 병이 아닌 성격 결함, 더 나아가 반사회성 인격장애처럼 인간으로서의 결격 사유쯤 으로 간주되는 쉽다고 지적한다.

양극성 장애의 증상이 조증과 우울증 뿐만 아니라 무수히 많은 다른 정신적·신체적 증상이 동반됨을 주지시킨다.

공황장애, 불안장애, 섭식장애, 수면장애 등은 물론, 극심한 피로, 면역 이상과 전신 염증 반응, 활성 산소 생성과 신진대사의 변화까지 유발한다고.

소화기 계통 문제인 복통, 구토, 설사, 변비 증상, 뇌와 연관이 있는 두통, 건망증, 졸림도 기본이라고. 또한 신체적 증상인 '섬유근통'까지.

  • 여섯째 해-다시 삶으로

가족 중에 정신질환자가 있다는 것은 어떤 미사여구로도 좋은 일이라고 할 수 없다."(본문 p.222)라고 첫문장을 시작한 이번 장에서는 아이의 정신질환 진단으로 삶의 변화가 생겼다는 저자는 사회적 약자, 소외된 자, 소수자들의 삶에 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그래서 저자처럼 의사 부모를 두지 못한 운이 좋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 '부모 서바이벌 가이드'를 제안한다.

① 과도한 연민 대신 이해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② 나의 마음을 먼저 다스린다.

③ 돈 계산을 확실히 하자

④ 가족을 지켜라

⑤ 선을 긋기

⑥ 소중한 건 바로 지금, 여기

  • 우리는 모두 정신질환자이다-신경 다양성으로 바라보는 세상

이렇게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을지 모를 다양한 정신질환의 양상들이 발현됨을 설명한다.

"비언어성 학습 장애와 사회적 의사소통 장애는, 통념상 심각한 장애로 생각되면서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과는 상관없다고 여기는 자폐스펙트럼 장애가 실제로는 얼마나 다양한 양상으로 발현되는지를 알 수 있게 한다. 또한 가지 유념할 것은 자폐스펙트럼 장애, 양극성 장애,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 우울증 등 신경·정신질환의 많은 특징들이 중복되고 증상의 정도가 매우 다양하다는 점이다.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오진이 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본문 p.274)라고 하며.

그래서 약을 처방받는 경우도 많다고. 또한 그동안 한국사회는 정신질환의 문제를 전적으로 가족의 문제로 개인화하며 책임을 전가함으로써 환자와 그 가족에게 다중의 낙인을 찍고 굴레를 씌워왔다. 하지만 정신적 고통의 급증을 가져오는 사회의 문제를 고찰하지 않는다면 상황은 점점 나빠질 것이다."(본문 p.279)라고 부연하며, 한국사회가 정신질환에 대한 사회적 인식 개선이나 환자와 가족들을 제도적 보호 등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맺음말' 부분에서 저자는 "정신질환의 낙인이 시퍼렇게 살아 있는 세상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우리 가족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두려웠기 때문"에 책 출간을 실행에 옮기는 것이 쉽지 않았음을 고백한다.

이 책의 저자는 의사인 배우자와 딸 둘을 둔 내과의사이다. 제목에서 언급한 '딸'은 둘째인 안나 뿐만 아니라 큰딸도 약간의 사회부적응이 있었다고 한다. 또한 부모가 맞벌이 의사이고 가정 형편과 정보력이 따라줘서 둘째 딸이 입퇴원을 반복되면서 치료를 계속할 수 있는 운이 좋은 상황이라고 말한다. 저자의 말처럼 아무리 최신 의학기술이 도입됐다해도 돈이 없으면 자신이나 자녀, 다른 가족에게 맞는 의사를 무슨 수로 쉽게 찾는단 말인가.

이 저자의 큰딸처럼 우리 아이도 사회성이 좀 떨어지는 것 같다. 사내 아이라 더 그런가. 유아기때는 검사도 하고 상담도 받고, 놀이치료·언어치료도 수개월간 받았다. 처음엔 외동이라 더 그런가 싶었는데, 저자의 두 딸 사례를 보니 형제, 자매가 있다고 해서, 또 책속 유전적 요인과 관련한 내용을 봐도 외동이어서 그런 건 아닌 것 같다. 나도 사실 우리 아이가 평범했으면 이런 류의 책들은 평생 손이 안 갔을수도 있다.

저자뿐 아니라 많은 뇌의 기능 이상으로 나타나는 정신질환을 주제로 하는 도서들은 공통적으로 그 질환에 대해 "공부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혹시 자신이나 가족이 책 속 인물들과 유사 증상이 있거나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면 꼭 한 번 읽어보시라.

온전한 정신으로 살아가기 힘든 이 땅의 현실속에서.

본 서평은 창비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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