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또 내일 또 내일
개브리얼 제빈 지음, 엄일녀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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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총 분량이 643페이지에 달하는 소위 '벽돌책'이라 불러도 좋을 장편소설이다. 표지는 이 책 속 첫 게임 개발 히트작 <이치고>의 메인 테마다.



이 책의 저자는 1977년 한국계 어머니와 유대계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고, 하버드대학교에서 영문학을 공부한 개브리얼 제빈이다.

깊은 통찰력, 재치 있는 구성, 유머러스한 문체로 독자의 평단의 사랑을 고루 받으며 작품이 4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인 그녀는, 전작 『섬에 있는 서점』(2014), 『비바, 제인』(2017)에 이어 이번 작품 『내일 또 내일 또 내일』(2022)도 '아마존 올해의 책 1위', '40주 이상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등의 타이틀에 힘입어 100만부 이상 판매되었다고.


게임개발자인 두 친구, 샘과 세이디. 둘은 캘리포니아에 살던 어린 시절, 심각한 교통사고로 발목 다중 복합 골절로 수차례 수술을 받고 장기입원했던 샘과 언니 앨리스의 결핵으로 입원했던 병원에 다니러 간 세이디가 '게임'이라는 공통 관심사로 친해지게 된다.

그러나 그 친분이 세이디의 봉사활동점수 획득 수단임을 알게 되어 배신감을 느낀 샘의 분노로 연락이 끊겼고, 하버드에 입학한 샘과 MIT에 입학한 세이디는 우연히 지하철역에서 다시 만난다.

부유한 집안 출신 세이디와 달리 샘은 뉴욕에서 혼외자로 어머니와 단둘이 살다가 생활고로 캘리포니아에서 피자 가게를 운영하시는 외조부모댁으로 이사할 정도로 형편이 어려웠다.

경제적 신분 차이 만큼이나 늘 자신만만하고 자존심이 센 세이디와는 달리 샘은 치열하고 완벽주의자 성향이다. 그러나 세이디가 자신의 인생에서 유일한 사랑인 샘은 세이디를 사랑하지만 어린시절 교통사고로 심각한 다리 부상 이후 절뚝이는 완벽하지 못한 모습으로 그녀의 연인이 되는 것은 그녀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해서인지 끝내 고백도 못하면서 자신의 감정을 숨긴다.

한편, 세이디의 지도교수이자 게임업계에선 '천재'로 통하는 도브 교수는 자신의 위력을 이용하여 세이디와 연인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자신의 원가정을 깨지 않는 이기적 존재다. 게다가 변태 성욕자라서 세이디는 신체적·정신적 학대를 당한다. 그게 사랑이라 믿으며.

그리고 샘의 룸메이트이자 배우를 꿈꾸지만 끝내 그 꿈을 이루는 대신 샘과 세이디의 게임 개발 아이디어를 높이 사 후원자를 자처하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 마크스. 베프(best friend) 샘의 세이디에 대한 진심을 알기에 참아왔던 마크스는 세이디와 게임 홍보를 위에 떠났던 출장길에서 사랑을 나누며 연인으로 발전한다. 설마 하면서도 샘은 무척 괴로웠다. 그러던 어느 날 세이디와 사무실에 침입한 무장괴한의 총격에 끝내 사망한다.

이미 그때 세이디의 뱃속엔 마크스의 아이가 자라고 있었다.

'결혼'이라는 제도로 묶이기 싫었던 세이디지만 마크스와의 소중한 기억에 마크스의 죽음으로 괴로워하며 새로운 게임 구상과 디자인에서 손을 떼고 한동안 마크스와 보금자리를 꾸렸던 그 집에서 나오지 않는다. 산부인과 정기검진하러 가는 일을 제외하고는.

이런 세이디가 염려되어 일을 핑계로 세이디의 곁을 맴도는 샘. 결국 그녀를 다시 세상 밖으로 나오게 할 게임을 만든다. 게임명 <개척자>.

결국 둘은 이 게임을 계기로 다시 만나지만, 자신의 연인도 아니면서 '일'을 핑계로 자기 주변을 맴도는 샘이 지긋지긋한 세이디는 또 연락을 끊는다.


그러다 샘의 할아버지 동현의 암투병으로 병 간호에 몰두하려 게임회사를 잠깐 떠난 샘, 도브의 주선으로 MIT에서 게임고급과정 강의를 맡게 된 세이디. 그 둘은 동현의 장례식장에서 다시 만났다.

그리고 이런 저런 소소한 얘기를 나눈 후 세이디는 보스턴 행 비행기, 샘은 로스엔젤레스행 비행기를 타고 가야 할 운명. 지금 떠나면 또 몇년 후가 될지 모를 재회를 앞두고 샘은 세이디의 뺨 키스를 받자, "사랑해, 세이디"라고 말했다. "나도 알아, 샘. 나도 사랑해."라고 화답하는 세이디.

둘의 운명적 사랑이야기는 이렇게 끝이 난다.


이 이야기를 읽으며, 얼마 전 종영한 한 종편 채널의 드라마가 떠올랐다. <사랑의 이해>. 제목부터 서정적이면서도 철학적인 이 드라마에서도 남녀 주인공이 끝내 사랑은 못 이루고 그냥 그렇게 연인도 아닌 친구도 아닌 어색한 직장 동료 관계인 채로 이야기가 끝난다.

또 이 책에 어울리는 노래도 있다. "머리를 쓸어 올리는 너의 모습 / 시간은 조금씩 우리를 갈라놓는데..."로 시작되는 <사랑과 우정사이>!

왜 샘은 도대체 첫사랑이자 마지막 사랑인 세이디를 붙잡을 여러 기회를 놓쳤을까. 그녀의 손금까지 눈 감고 그릴 수 있을 만큼 세이디의 표정, 몸짓 하나까지 완벽하게 읽을 수 있는 간절한 사랑을.

또한 이 두 친구의 사이의 내밀한 감정선을 알기에 세이디에게 첫눈에 반했으면서도 선을 넘지 않으려고 노력했던 마크스도 불운한 죽음을 당했지만 개인적으로 책 속 묘사된 훈훈한 외모만큼이나 매력적인 인물이라 생각한다.

하버드대 영문학 전공자인 저자가 이공계열, 그중에서도 IT관련 컴퓨터공학도들이나 섭렵할만한 게임 개발을 소재로 작품을 기획하고 집필을 하다니, 그녀의 게임 사랑이 대단하고 풍부한 상상력의 소유자임을 알 수 있다.

게임 속의 게임. 액자식 구성을 보여주는 <개척자>게임이야기 서술 부분.

게다가 셰익스피어의 비극 <맥베스>에서, 마녀의 예언을 믿고 왕이 되기 위해 여러 사람을 죽이고 왕위에 오르지만 스스로 파멸의 길로 들어선 맥베스가 아내의 죽음 앞에서 독백하는 대사인 5막 5장의 '내일 또 내일 또 내일'이 마크스의 입을 통해 샘과 세이디 앞에서 재생되는 대목.


작가는 게임 속 세상과 닮아 있는 우리네 인생을 표현하기에 이 대목이 가장 적합하다는 생각이 들었나 보다. 그래서 이 대사의 일부를 제목으로 뽑은 것이다.

인생의 유한함을 강조한 걸까. 이런 짧은 인생에 어떻게든 자신을 드러내려 안달하다 생을 마감하게 되는 어리석은 서툰 배우일지도 모르겠다. 지금의 내가 가고 있는 이 길이 바른 길인지는 모르겠으나 '인생'이라는 무대의 한 장면이 되도록 노력하는 충분한 연습의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게임을 사랑하는 독자분들! '사랑'과 '우정'에게도 이 소설 함께 읽고 나눠보시라.


그리고, 자신만이 단독 주인공이고 싶은 권력자와 그 권력자와 나란히 서서 주목받고 싶어하는 세력들이이여,

"부디 맥베스의 전철을 밟지 말기를!"

본 서평은 문학동네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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