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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도 계약이다 - 안전하고 자유로운 사랑을 위하여
박수빈 지음 / 창비 / 2019년 3월
평점 :
부제만으로도 본 도서의 내용을 짐작해볼 수 있는 센스있는 작명이다. 저자는 대학에서는 미학을 전공, 학부 시절 내내 연극동아리 활동에 심취했던 로스쿨 출신의 박수빈 변호사이다. 책 날개 저자 소개글에서 "우리 사회가 지금보다 사람에게 덜 잔인한 사회가 되고, 사람들이 좀더 행복하게 살 수 있게 하는 일에 조금이나마 기여하며 살고 싶다는 생각으로 글을 쓴다"는 입장을 밝힌 '그'-성별에 상관없이 제3자의 호칭을 통칭하고 싶기에- 늘 소신대로 현재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 모임 사법위원회 위원과 여성가족부 정책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최신 경향에 맞춘 구성으로, 프롤로그와 본문, 에필로그 형식을 취하고 있는 본 도서는, 프롤로그에서부터 저자의 입장이 드러나 있다.
"먼저 이 책과 관련해 밝혀둘 것이 있다. 내 글에서 사랑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여성도 있고 남성도 있다. 가끔 필요에 의해서 '그/그녀' 라고 부르게 되는 일을 제외한 나머지는 남녀 모두를 '그'로 통칭했다. 또한 나의 한정된 경험때문에 이성애자 중심으로 연애 이야기를 풀었다. 하지만 나는 '연애'란 사람과 사람이 '사랑' 중에서도 성애적 감정을 기반으로 하는 관계를 맺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성애자이건 동성애자이건 사랑하는 관계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겪는 설렘, 기쁨, 고통, 배신, 신뢰와 같은 문제들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믿는다."
개인적으로 이해는 가지만, 전적인 공감은 힘들다. 다만, 편견없는 저자의 시선은 본받고 싶다.
차례는 현직 변호사답게 '1부-연애를 시작하기 전에, 2부-연애의 개시와 소멸, 3부-연애와 관련된 범죄' 로 명료하게 구성돼 있다. 또한 각 주제별 사안도 법률적 지식을 기반으로 한 '민법상 계약'에 빗대어 흥미로운 설명을 하고 있다. 예를 들어 소위 '썸 탄다'는 개념의 연애 시작 단계를 '계약 교섭 단계'에 빗대어 설명하는 형식이다.
언뜻 달콤한 사랑행위인 연애를 법률행위로 규정하는 것이 일반인에게는 다소 낯설게 느껴질 수 있겠으나, 이번 기회에 일상생활에서 수없이 많이 행해지는 것이 '계약행위' 이므로, 본 도서를 통해 친근하게 접근하면 좋을 듯하다.
본론에 해당하는 '2부-연애의 개시와 소멸'편에서는, 본격적으로 다양한 민법상 계약과 관련된 법률용어들이 등장한다. 아울러, '연애가 계약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 와 관련한 저자의 입장이 잘 드러나 있다.
p. 80~81 "연애가 계약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는 계약법을 배우면서였다. 공부를 하면서 법리를 쉽게 이해하려고 연애에 빗대어 생각하곤 했는데, 문득 '내 것'과 '네 것'이 되는 연애관계와 계약에 빗대어지는 연애관계가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내 것'과 '네 것'이 되는 관계에서는 예비 신랑들이 미래의 장인어른에게 "따님을 저에게 주십시오."라고 말한다. 어떤 물건이 내 것이 되려면 물건의 소유자와 계약을 해야 하는 것처럼, 딸을 부모 특히 가장인 아버지의 소유물이라 여기는 문화 탓이다. 이 경우 예비 신랑의 계약 상대방은 예비 신부가 아니라 장인이 된다. 이런 관계에서의 연애는 결코 두 사람 사이의 계약일 수 없다. 연애를 하는 둘 중 한 사람은 계약의 당사자가 아니게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계약은 갑과 을이 특정한 책임과 의무를 이행하기로 합의하고 약속하는 것이다(반드시 종이에 써야만 계약인 것은 아니다. 계약서는 서로 그런 계약을 했다는 사실에 대한 증표 역할을 할 뿐이다). 나는 연인과 사귀기로 약속하는 것이지 연인을 소유한 누군가와 약속을 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연애의 소멸 부분과 관련하여, 가끔은 헤어지고 나서 연애하면서 준 물건이나 돈을 돌려달라고 소송을 하는 일도 있단다. 대개 명품 가방 등과 같은 고가의 선물인 경우, 또한 큰 돈을 빌려주거나 주었을 때와 같은 경우이다. 계약이 해제되면 그와 관련된 것들을 계약을 체결하기 이전 상태로 돌려놓는 것이 원칙이다.(p.193 참조)
참 서글프지만 그렇게라도 이별에 대한 원망이나 분노감 때문에 벌어지는 일일 것이다. '아름다운 이별'을 하기 위해서는 '서로 억울하지 않을 만큼만 주고 받으면 되지 않을까?' 하는 단순한 생각이 들기도 하는 순간이었다.
'3부-이것은 연애가 아니다' 편에서는 연애 중에 발생하는 여러 범죄행위 가능성에 대해 우려와 경고를 동시에 하고 있다. 요즘 사회적 핫이슈인 '데이트 폭력, 몰래카메라 범죄, 디지털 성범죄' 등과 관련된 발생 가능 장소 및 불법 동영상 유포 행위 등을 예시하고 있으며, 이를 적발시에 형사처벌 및 민사상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데, 반드시 증거 영상·물품, 녹취와 같은 증거 확보가 관건이며, 변호사의 조력을 얻기 위해서는 명확한 증거 수집이나 증언을 해야함을 각오할 것도 강조하고 있다.
요즘 연일 언론 매체에서 강남 유명 클럽 운영과 관련된 여러 범죄와 범죄용의자들의 범죄 혐의와 수사 진행 상황 등이 보도되는 현실을 마주할 수 있는데, 이 책에서처럼 연애가간에도 충분히 발생가능한 범죄들이기에 연인의 성품과 행태의 의미를 명확히 규정지을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지극히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고 나서 맨 처음 든 생각은 '왜 이런 책이 이제서야 나왔을까?' 였다. 시대의 화제작,「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이라는 책 제목처럼, 좀 더 일찍 알았더라면 제대로 된 연애를 해 볼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다. 이 책의 저자, 박 변호사님처럼 나의 이상형도 그러했거늘...
"나는 자세가 바른 사람을 좋아하지만 운동으로 다져진 몸매에서 나오는 반듯한 등보다는 공부를 하거나 책을 읽느라 살짝 굽은 등과 약간의 거북목을 좋아했고, 천진난만하고 서글서글하게 붙임성 좋은 사람보다는 다소 예민하고 눈을 내리까는 습관을 가진 사색적이고 진지한 사람들을 좋아했다. 나름대로 자신의 세계가 잘 구축되어 있는 사람이 좋았고, 그 사람의 관심사를 함께 들여다보고 탐색하는 것이 좋았다."
그러나 현실은...
본 서평은 도서출판 창비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