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스 코드: 더 비기닝
빌 게이츠 지음, 안진환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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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스 코드: 더 비기닝」(빌 게이츠 회고록)을 읽고


- 글쓰기 강사 민경호


  대학교 2학년 때 읽었던 책이 생각난다. 1986년에 발간된 McDonald’s: Behind the Arches를 읽으면서 비즈니스 세계에 대한 동경심 같은 것이 생겼다. 맥도날드 회사가 창업 초기로부터 성장해가는 과정을 다룬 책이라서 흥미롭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당시에 경제 개념이 전무하던 내게는 이 책이 매우 신선하게 다가왔다. 아버지는 영문과 박사 대학 교수였지만 순수 학문을 추구하는 선비 그 자체였다. 그것은 내가 돈에 대한 개념을 정립하기 어려운 환경에서 자랐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 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스토리를 접하고 나서 사업에 대한 막연한 동경심이 생겼다. ‘사업’이라는 것이 그토록 매력적으로 다가온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이번에 읽은 빌 게이츠의「소스 코드: 더 비기닝」은 사전 정보 없이 펼쳐 든 책이기에, 이 책을 통해 마이크로소프트 회사에 대해 많은 정보를 접할 수 있을 거라는 애초의 기대에서는 약간 빗나갔다. 빌 게이츠의 개인사를 중심으로 다루는 자서전이기 때문에 그의 인간적인 면을 잘 다루고 있다. 책의 말미에 나온 ‘감사의 말’을 읽어보니 그의 계획을 알 수 있었다. 다음에 쓸 두 번째 회고록에서는 마이크로소프트를 운영하던 시절에 관한 이야기를, 세 번째 회고록에서는 현재 자신의 삶과 게이츠 재단의 활동을 조명하는 내용을 쓸 계획이라고 한다.


  이 책은 그가 열세 살 무렵, 친구들과 하이킹을 다니던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 보이스카우트에서 주관하는 하이킹과 캠핑을 마음껏 즐기며, 보다 더 많은 자유와 더 큰 모험을 추구한다.


  그의 어린 시절에 영향을 미친 사람들 중에 외할머니(‘가미’라고 불림)는 카드 게임의 고수다. 그는 가미와의 게임에서 항상 졌기 때문에 승부욕에 불타올랐고, 머리를 써서 이기는 전략을 짜게 되었다. 그로 인해 논리적으로 생각하는 습관을 가지게 된 듯하다.


  어린 시절, 늘 방실방실 웃는 모습을 보여 <해피 보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러나 혼자 노래 부르고 상상 여행을 좋아하는 그가 유치원에서는 네 살짜리 반항아였다. 아버지는 변호사고, 어머니는 ‘유나이티드 웨이’의 이사로 활동할 만큼 그 당시 여성들에게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던 많은 사회활동에 참여했다. 가정에서는 어머니가 규칙을 만들고 집행하는 사람이었으므로, 그는 어머니의 통제 욕구에서 비롯된 것으로 생각되는 모든 것에 반항했다.


  빌 게이츠는 어려서부터 책을 많이 읽는 아이였다. 초등학교 시절, 학교 도서관 사서를 맡고 있던 카피에르 선생님은 그 반항적인 아이를 도서관의 사서 보조로 일하게 했다. 책과 숫자를 좋아하던 아이에게 그것은 꿈의 직업이었다. 학교에서 내준 과제를 할 때면, 도서관에서 찾을 수 있는 관련 정보를 모두 수집해서 보고서 수준의 결과물을 만들기도 했다. 여기서 그의 지적 호기심과 성취에 대한 집요함을 엿볼 수 있다.


  그는 책을 많이 읽고, 자신만의 생각의 동굴에서 편안함을 느낄 때가 많았다. 그 시절에 성적은 좋지 않았고 가정에서의 반항은 점점 더 심해졌다. 부모님은 상담 클리닉을 운영하는 찰스 크레시 박사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상담을 통해 빌 게이츠는 마음의 안정을 찾고, 부모님과 싸우느라 에너지를 낭비하기 보다는 세상에 나가면 필요하게 될 기술을 습득하는 데 에너지를 집중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시애틀의 부유층 남학생들이 다니는 레이크사이드 스쿨에 입학했다. 8학년이 시작될 무렵 ‘켄트 에번스’라는 친구에게 주목했다. 함께 수학 수업을 들으면서 급속히 친해졌다. 그는 정치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고 매사에 열정적인 아이였는데, 후에 등산하다가 낙상사하는 바람에 빌 게이츠에게도 크나큰 정신적 충격을 안겨주었다. 8학년 당시 ‘스토클린’이라는 수학 선생님이 교내에 있던 ‘텔레타이프(컴퓨터 단말기)’라는 기계를 소개해주었다. 여기에 프로그램을 입력하고 PRINT 명령을 하면 컴퓨터가 계산한 값이 프린트되는 것을 보면서 빌 게이츠는 짜릿한 전율을 느꼈다. 텔레타이프가 있는 프로그램실에서 ‘폴 앨런’과 운명적으로 만나게 되고 이들은 훗날 ‘마이크로소프트’의 공동 대표가 된다.

  

  컴퓨터실에서 만난 4인조 그룹(빌 게이츠, 폴 앨런, 릭, 켄트)은 컴퓨터라는 공동 관심사를 중심으로 똘똘 뭉쳤다. 당시에는 각각의 단말기들이 메인 컴퓨터에 통신으로 접속해서 사용 시간에 따라 요금을 내는 시스템이었다. 미니 컴퓨터 제조업체인 DEC(C-큐브드)는 프로그램 버그를 잡아줄 사람들이 필요했는데 4인조 그룹이 그 일에 투입되었다. 그 댓가로 C-큐브드의 컴퓨터에 무료로 접속할 수 있었다. 열세 살인 빌 게이츠와 켄트, 열다섯 살인 폴과 릭에게 그 무료 사용 기간은 매우 중요했다. 그들은 그렇게 밤새도록 코딩을 하면서 세계 최고의 프로그래머들로 성장해갔다.


  그가 다니는 레이크사이드 스쿨은 여학교인 세인트 니컬러스 스쿨과 합병 계약을 체결했다. 수학 교사였던 밥 헤이그는 이 두 학교의 수업 일정을 통합하는 작업을 맡았는데, 이것을 수행할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켄트에게 <컴퓨터 과학> 입문 수업을 맡아달라고 요청했다. 그리고 릭에게는 <컴퓨터의 기능과 역할>, 빌 게이츠에게는 <어셈블리어>, 폴 앨런에게는 <메모리 이론> 수업을 맡겼다. 4인조 그룹이 졸지에 무급 선생님이 된 것이다. 그만큼 이 아이들의 컴퓨터 프로그램 코딩 실력은 뛰어났다.


  밥 헤이그 선생님이 비행기 사고로 돌아가신 후, 학교에서는 이들에게 수업 일정 프로그램 짜는 일을 맡겼다. 이들은 3주 동안 하루 20시간씩 일하며 마감일을 간신히 맞춰 성공시켰다. 그 이후 교통량 집계 프로그램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고등학교 마지막 학년(12학년)일 때, 컬럼비아강의 거대한 그랜드쿨리댐을 감독 관리하는 BPA로부터 일을 제안받고 빌과 폴은 함께 BPA사무실에 갔다. 폴은 대학생이었기 때문에 학교에 휴학신청서를 냈다. 매일 아침 일찍 출근해서 밤 늦게까지 미친 듯이 코드를 빠르게 작성할 수 있는 것에 자부심을 느꼈다. 그리고는 의심할 여지 없이 성공시키고 말았다.


  빌은 하버드대학교에 합격했다. 1969년 어느 일요일 새벽, DEC 메인프레임 컴퓨터의 부품들이 하버드의 에이킨 컴퓨팅 연구소로 옮겨졌다. 이것은 정부로부터 기증받은 것인데 ‘PDP-10(컴퓨터 이름)’을 ‘하브-텐’이라고 불렀다.


  빌은 대학에서 이수한 과목이 많았는데, 특히 수학적 재능이 뛰어난 그는 메이더 교수의 순수 수학을 신청했다. 스물여덟 살에 정교수 자리에 오를만큼 뛰어난 수학자 메이더 교수는 풀기 어려운 문제를 과제로 내줘 학생들을 당혹케하곤 했다.


  빌은 입학 후, DEC 회사로부터 입사 합격 소식을 받았지만 받아들이지 않았다. 또, 제너럴일렉트릭(GE)의 가전제품 공장 프로그래머로 일하라는 제안과 다른 몇몇 제안까지 모두 거절했다. 자신의 실력을 인정받았다는 것으로만 만족했다.


  빌과 폴은 컴퓨터 하드웨어를 제조하는 일도 고려해봤으나, 결국 소프트웨어를 개발해 판매하는 쪽이 더 낫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 무렵, 모형 로켓 전자 제품과 계산기를 만드는 회사였던 ‘MITS’ 에서 8800칩을 장착한 ‘알테어 8800’이라는 컴퓨터를 내놓았다. 빌과 폴은 이 회사에 연락해서 자신들이 개발한 알테어 컴퓨터용 BASIC버전 소프트웨어를 구매해 줄 것을 요청했다. 그 제안을 받은 MITS의 에드 로버츠 사장은, 다른 개발자들로부터도 여러 통의 전화를 받았으니 완벽한 프로그램을 가져오는 개발자와 계약하겠다고 했다.


  빌과 폴 역시 완벽한 프로그램을 짜기 위해서는 시간이 더 필요했다. π(파이) 같은 부동 소숫점 수학 코드 섹션을 더 보강해야 했다. 마침 하버드 신입생 ‘몬테’가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며 팀에 합류했고, 그들은 하버드대 에이킨 연구소의 컴퓨터 PDP-10을 사용했다. 6주간 미친 듯이 코딩 작업에 매달린 덕분에 프로그램을 완성했다. 마침내 그들은 MITS에 찾아가 프로그램 작동을 시연해 보였다.


  PRINT 2+2

  4

  OK

  

  이로써 최초의 개인용 컴퓨터를 위한 최초의 소프트웨어가 작동했다. MITS 사장이 외쳤다. “세상에, 4가 출력됐어.”


  폴은 MITS에서 소프트웨어 개발 책임자가 되었고, 빌은 학교로 돌아갔다. 일이 잘 풀리는 듯 했으나 문제가 생겼다. 학교 연구소 컴퓨터 PDP-10을 사용한 시간이 너무 많아 의심을 받았을 뿐 아니라 행정 위원회에 회부되었다. 사적 용도로 컴퓨터를 사용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퇴학 당할 수도 있었지만 훈계를 하는 것으로 매듭지어졌다.


  알테어 컴퓨터는 잘 팔렸다. 인기에 힘 입어 리키스 하얏트 하우스 호텔에서 시연회를 열었는데, 그 당시만 해도 프로그램은 4K BASIC의 종이 테이프에 기록한 것이었다. 시연하는 동안 누군가 골판지 상자에 손을 뻗어 종이 테이프를 훔쳐갔다. 이윽고 불법 복제된 테이프가 마구 떠돌아다녔다.


  한 편, 휴렛팩커드의 엔지니어 스티브 워즈니악은 컴퓨터 프로토타입을 제작하고, 그의 친구 스티브 잡스는 첫 번째 컴퓨터 ‘애플Ⅰ’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MITS 건물의 한 쪽 구석에 임시로 마련된 일부 공간에서 마이크로소프트는 시작했다. 폴은 MITS의 소프트웨어 책임자 업무를 계속 하면서, 빌과 함께 BASIC을 개발했다. 마침내 MITS와 계약을 체결했다. 8080칩용의 모든 BASIC 버전에 대한 전 세계 독점 공급 권리를 MITS에 부여해 달라는 에드의 요청을 받아들인 계약이었다. 


  MITS 컴퓨터는 계속 잘 팔렸지만, BASIC에 대한 대금을 지불하는 고객은 극히 일부에 불과했다. 빌은 이 사태를 바로잡기 위해 컴퓨터 애호가들에게 보내는 공개 서한을 작성해서 여러 잡지사 편집자에게 전달해 잡지에 게재했다. 소프트웨어를 무료로 사용하려는 것은 개발자의 시간과 노력을 훔치려는 것과 같은 행위라고 주장했다. 일부 사용자들은 동의했고, MITS의 에드 로버츠 사장은 분노했다. 이 일을 계기로, 빌은 앨버커키의 한 공항 호텔에서 열린 <세계 알테어 컨벤션>이라는 행사 무대에 연사로 올라갔다. 그는 소프트웨어가 컴퓨터에서 왜 가장 중요한지를 설명했다. 


  빌은 학교로 돌아가 학업을 이어가면서 마이크로소프트의 일을 병행해왔지만 학기가 진행되면서 갈수록 회사와 관련해 극심한 갈등을 느끼기 시작했다. 폴은 MITS와 결별하고 마이크로소프트에만 전념하기로 했다.

  빌과 폴은 개인용 컴퓨터 시장이 점점 커지는 상황에서 그 엄청난 기회를 잡아야 한다는 데 동의했다. 그것을 위해 일주일에 80시간씩 일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탠디(Tandy)라는 회사에서 TRS-80 이라는 가정용 컴퓨터를 판매하기 시작했는데, 컴퓨터에 탑재된 무료 타이니 BASIC 프로그램이 형편 없었다. 그들이 성난 고객들의 불만에 시달리고 있을 때, 빌은 마이크로소프트의 BASIC을 구매하는 것이 자체적으로 개발하는 것보다 저렴하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계약을 따냈다. 


  1977년말, 코모도어 PET와 애플Ⅱ, 라디오섁 TRS-80 이 학교와 사무실, 가정에 보급되기 시작하면서 컴퓨터를 처음 접하는 수십만 명의 사람들에게 전달되었다. 이로써 개인용 컴퓨터 시장이 활짝 열리는 르네상스가 시작되었다.



 「소스 코드: 더 비기닝」이 마이크로소프트의 화려한 비상을 보여주는 책은 아니다. 빌 게이츠의 개인사에 초점을 맞춰 쓴 자서전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독자인 나는 세상을 바꾼 천재의 발자취를 고스란히 따라갈 수 있었다. 한 마디로 부럽다. 나도 천재로 태어났더라면…. 나도 그와 같은 열정을 가진 사람이라면…. 나도 세상을 바꿀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나도 군대를 제대한 후 복학하기 까지 남은 기간 동안에 프로그래밍을 배웠다. GW BASIC, COBOL, FORTRAN, 어셈블리까지 배웠지만 배우면 배울수록 어려워지는 것을 체감했다. 빌 게이츠의 자서전을 읽다 보니 그 시절이 많이 생각 났고, 다시금 코딩을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어떤 측면에서는 ‘코딩 작업’과 ‘글쓰기’는 닮았다. ‘코딩’이 논리의 순서에 맞게 명령어를 조합해서 나열하는 작업이라면, ‘글쓰기’는 단어의 조합으로 논리를 이어가는 작업이라서 매우 유사하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현재 글쓰기 강사를 하고 있는 것은 ‘코딩 작업’의 연장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코딩으로 논리를 배웠고, 이제는 인문학에 그 논리를 적용하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회사를 시작했던 당시를 떠올려보았다. 열정과 패기 하나만 믿고 겁 없이 뛰어들었던 그때가 그립다. 25년이 지난 지금은 나태함과 매너리즘에 젖어 있는 건 아닌가. 초심은 어디로 자취를 감췄단 말인가.


  이런 종류의 책을 읽는 이유는 책의 주인공으로부터 영감을 받기 위함이 아닐까. 빌 게이츠는 충분히 우리의 롤 모델이 될 수 있고 멘토로서의 자격을 갖추고 있다. 다만, 우리가 그로부터 받은 영감을 우리 안에 내면화시켜 발전적 에너지로 폭발시킬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인 것 같다. 세상에 멘토는 많다. 위대한 사람도 많다.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결단이다. 그들처럼 위대한 역사를 쓰고자 하는 결단이다.


https://blog.naver.com/mmbn/223906707995  에도 전체 글이 실려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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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조선의 처녀다 - 눈물로 쓴 정신대 위안부 이야기
다니엘 최 지음 / 행복우물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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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읽었습니다. 그 시대를 살아보진 않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이 접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같은 조선 사람으로서 분노를 느끼고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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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계교 - 무신론의 과학적 위장
데이비드 벌린스키 지음, 현승희 옮김 / 행복우물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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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론자들이 주장하는 과학의 사실들이 종교를 헤칠 수 없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책인 것 같습니다.
과학적 사실들은 인간들이 발견한 것일뿐
진리가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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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이 밀려올 때
컬크 니일리 지음, 지인성.다니엘 최 옮김 / 행복우물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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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을 다루는 법을 배웠습니다.
얼마 전 저의 가족의 장례를 치렀는데 이 책을
진작 읽었더라면 슬픔을 더 잘 극복할 수 있었을 겁니다.
슬픔을 당한 사람에게 큰 위로를 주는 책이라고 생각됩니다.
용기를 주는 책이 진정으로 좋은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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