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원의 식사시간은
고요하지만
분주하다.

각자 주어진 시간 안에
식사를 마치기 위해
부지런히 손과 입을 움직인다.

"안녕하세요.
식사배달 왔습니다."

"어서 와요."

"오늘 식구 서비스
신청하셨죠?"

경제적인 여유가
충분하지 않은
독거노인은

식사 시간 동안
함께 있어 주는
로봇까지
소유할 수 없기에
이런 밥 배달 서비스로
잠시나마 나의 시간을
살 수 있다.

비록 같이 밥을
먹을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오늘은 2인분을
주문하셨는데,
손님이 오시나요?"

"이상하게 들릴 지
모르겠지만.
매번 나 혼자만 먹기
미안해서...
네 것까지 주문했단다."

마치 인간 손님처럼
반가워들 해주신다.

"감사합니다."

이번에
방문하는 회원은

"안녕하세요.
식사 배달 왔습니다."

항상 짧은 시간만
신청하는데
‘인간은 이렇게
찰나와 같은 시간에도
식사를 마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마주할 때마다
신기하다.

"왜 뭐가 묻었나?"

"아닙니다. 단지...
항상 너무
서둘러 식사하시는 것
같아서요."

"오래된 습관이야.
평생 밥 먹는 시간도
아껴가며 사느라 급하게
먹는 게 몸에 벤 거지.
이런 서비스 따위
생돈 나가는 것 같아서
이용하고 싶진 않았지만,
아무도 없는 집에서
매일 혼자 허기를
달래는 것도
곤욕이더군..."

"...."

"어라
주저리주저리
떠들다 벌써
시간이..."

"어르신,
방금 타이머는
꺼뒀습니다.
그러니,
서두르지 마시고,
천천히 드세요.

다 드실 때까지..

옆에 있을 테니."
- P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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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란 게
하나의 색으로만 이뤄진 것이
아니란 걸 알면서도
다른 색은 보려 하지 않는다.
한 사람 마음 속으로
얼마나
깊이 들어가야
우리는 그 사람만이 가진
고유색을 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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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自我에 대한 인식은 타아他我와의 
대립에서 탄생하고 또 분명해진다.
조선에 대한 인식은 ‘왜‘와의 대립에서 
탄생하고 또 분명해진 것이다.
한국인의 민족적 자아는 그러니
그 대립의 자리에 있던 ‘왜‘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자아와 대립하는 타아가 ‘왜‘가 아니라 
중국이나 미국, 프랑스 등이었다면 ‘조선‘이라는 자아는 다르게 
인식되었을 것이다.
일제강점기 그때 한국인의 자아는 
왜에 의해 뒤죽박죽 엉켜버렸다.
- P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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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언어로 모든 것을 표현하는
산문보다 행간에서 다양하게 
상상력을 발휘하는 
시나 하이쿠와 닮았다.
영화를 즐기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는 
시력이나 청력이라기보다 오히려 
예민한 주의력과 풍부한 상상력이다.
깊은 맛이 있는 뛰어난 영화일수록
주의력과 상상력을 능란하게 사용하면 
볼 만한 장면이 덩굴에 고구마가 
딸려 나오듯 줄줄이 늘어난다.
제작자에게는 그들의 지각을 최대한 
자극할 만한, 하나의 작품으로서 
독립된 매력을 발휘하는 
가이던스를 만들 책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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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끝만 보지말고
가고싶은 곳을 보면서
저으면 그곳에 다가갈 수 있어.
59.p

저기 세스코
굉장하지 않아? 그러니까..
우주에 대한 상상을
할 수 있는 건
이 숲 속에서도 인간뿐이야.
상상력이 없다면
인간다움이 없는 게 아닐까.
66.p

똑바로 나갈 것인지
작게 회전하며
빠져나갈 것인지
상황에 맞는 것을
선택하는 편이 좋지 않을까.

회사는 커다란 바다가 아니다.
바다보다 좁고 작은 곳이다.
게다가 바위도 있고 굴곡도 있다.
똑바로 나아갈 수 없는 곳을 직진용의 긴 배로 가려고 하면 언젠가 고장 날지도 모른다.
작게 회전하면서
빠져 나갈까.
9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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