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나는 슬픔도 배불렀다
아래층에서 물 틀면
단수가 되는
좁은 계단을 올라야 하는
전세방에서
만학을 하는
나의 등록금을 위해
사글셋방으로
이사를 떠나는 형님네
달그락거리던 밥그릇들
베니어판으로 된 농짝을
리어카로 나르고
집안 형편을 적나라하게
까보이던 이삿짐
가슴이 한참 덜컹거리고
이사가 끝났다.
형은 시장에서 자장면을 시켜주고
쉽게 정리될 살림살이를
정리하러 갔다.
나는 전날 친구들과
깡소주를 마신 대가로
냉수 한 대접으로 조갈증을 풀면서
자장면을 앞에 놓고
이상한 중국집 젊은 부부를 보았다.
바쁜 점심시간 맞춰
잠자주는 아기를 고마워하며
젊은 부부는 밀가루,
그 연약한 반죽으로
튼튼한 미래를 꿈꾸듯
명랑하게 전화를 받고
서둘러 배달을 나아갔다.
나는 그 모습이
눈물처럼 아름다워
물배가 부른데도
자장면을 남기기 미안하여
마지막 면발까지 다 먹고 나니
더부룩하게 배가 불렀다,
살아간다는게
그날 나는 분명 슬픔도
배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