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곡한 말 늘어놓는 이 만나거나
빼곡한 글자가 적힌 책을 보면
쉬 피곤하거나 질리는 이치와 같을 터

바람이 지나갈 자리는

사람들과 함께 있든
혼자 있든
항상
필요한 자리이다.

생을 삶으로 바꾸려는 노력들에게서
채우고 가지려는 앞서려는 수고들에게서
조금은 멀어지기 위한
바람자리로 자리매김하고픈 토요일.

늘 지키고자 하는 태도가 있다. 친할수록 더욱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 한국에서는 여자들끼리 친해지면 유달리 ‘언니, 동생‘하며 길을 갈 때도 팔짱을 끼고 딱 붙어 걷는 등 허물없이 지내는 경우가 많은데, 처음에는 그런 문화가 독특하게 느껴졌다. 정을 중시하는 한국에서는 당연할 수도 있지만, 나는 마음은 내주어도 호칭부터 만남까지 적당한 선을 지키는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선을 넘어서면 인간관계가 무너지는 것도 한 순간이다

어린 시절부터 외국을 오가며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과 만났다 헤어짐을 반복하면서 타인과의 관계에 고민이 많았다. 누군가가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늘 ‘바람이 지나갈 자리‘ 정도의 거리를 둬야 한다고 말하는 걸 본 적이 있는데, 듣자마자 내가 생각하는 바를 제대로 꼬집은 말이라며 무릎을 탁 쳤다

너무 가까이 다가서려고 하다 중심을 잃으면 관계도 쉽게 어그러질뿐더러 상처 받기 십상이다.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상대방과 나 사이에 일정한 거리를 유지해야 함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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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읽는게 능사는 아니지만
깊이 읽기 위해선
많이 읽어야만 합니다.

압도적인 양이 쌓이면
질은 반드시 변화하게
되어 있습니다.

많이 읽으면
많이 쓰게 되고

많이 쓰게 되면
넓게 읽게 되고

넓게 읽게 되면
깊게 쓰게 되고

깊게 쓰게 되면
깊게 읽게 됩니다.

능사는
자신에게 달려 있습니다.
언제나처럼.

독서칠결은 성문준이 신량을 위해 써준글이다. 독서에서 유념해야 할 일곱 가지를 들어 경전공부에 임하는 자세를 말했다. 서문을 보면 13세 소년은 워낙 재주가 뛰어났다. 하지만 책을 읽어 가늠하는 저울질의 역량은 아직 갖춰지지 않았다. 문선 을 읽는데 어디서부터 들어가야 할지 몰라 갈팡질팡하고 있었다.

첫째, 한 권당 1~2년씩 집중하여 수백 번씩 줄줄 외울 때까지 읽는다. 다 외운 책은 불에 태워 없애버릴 각오로 읽어야 한다. 그래야 어느 옆구리를 찔러도 막힘없이 나온다.
둘째, 건너뛰는 법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통째로 읽어야 한다. 어렵다고 건너뛰고 막힌다고 멈추면 성취는 없다.
셋째, 감정을 이입해서 몰입해야 한다. 논어를 읽다가 제자가 스승에게 질문하는 대목과 만나면 자기가 묻는 듯이 하고, 성인의 대답은 오늘 막 스승에게서 처음 듣는 것처럼 하면 절실해서 못알아들을 것이 없게 된다.

넷째, 계통을 갖춰서 번지수를 잘 알고 읽어야 한다. 군대의 대오처럼 정연하게 단락과 구문의 가락을 질서를 갖춰 읽는다. 덮어놓고 읽지 않고 기승전결의 맥락을 두어서 읽는다. 전체 글의 어디쯤에 해당하는지 따져가며 본다.

다섯째, 낮에 읽고 밤에 생각하는 방식으로 되새겨 읽는다. 부산한 낮에는 열심히 읽어 외우고, 고요한 밤에는 낮동안 익은 글에서 풀리지 않는 부분을 따져서 깨친다.

여섯째, 작자의 마음속 생각을 얻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엣사람의 기백을 내 안에 깃들이려면 어린아이 같은 마음을 제거해서 조아한 습속을 밑동째 뽑아버려야 한다.

일곱째, 읽는데 그치지 말고 자기 글로 엮어보는 연습을 병행하는 것이다. 안으로 구겨넣기만 하고 밖으로 펼침이 없으면 독서의 마지막 화룡점정은 이뤄지지 않는다.

옛사람에게 독서는 소설책 읽듯 한차례 읽고 치우는 행위가 아니었다. 추려서 새기고 따지고 가려서 꼭꼭 씹어 자기화하는 과정이었다. 성현의 말씀이 내 안에 걸어들어와 내 삶의 전반을 변화시켰다. 많이 읽는 것만 능사가 아니고 깊이 읽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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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정은
어디로 이어지는 것일까


차분한 차가움의 온도여
여정은 어디로 이어지는 것일까?
멈춤이래도
너는 멈추지 않을 수 있을까?
당신이 갔대도
당신은 당신이 있는 곳으로
어떻게 갈 수 있을까?
내 속의 내가 나는 아니라 할 적에
나는 나일 수 있을까?
사물이 사물 속으로 들어가듯
사물이 사물 속에서 나오듯
감동하지 않고
나는 이제 더 이상
헤아리지도 않는다. 9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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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너 뛰거나 앞당기거나
옆으로 밀쳐낼 수 없는 끼니.

인생은 지금까지 먹고 마신
끼니로 이루어진게 아닐까.

끼니는 어김없이 돌아왔다. 지나간 모든 끼니는 다가올 단 한끼니 앞에서 무효였다. 먹은 끼니나 먹지 못한 끼니나, 지나간 끼니는 닥쳐올 끼니를 해결할 수 없었다. 끼니는 시간과도 같았다. 무수한 끼니들이 대열을 지어 다가오고 있었지만, 지나간 모든 끼니들은 단절되어 있었다. 굶더라도, 다가오는 끼니를 피할 수는 없었다. 끼니는 파도처럼 정확하고 쉴새없이 밀어닥쳤다. 끼니를 건너뛰어 앞당길 수도 없었고 옆으로 밀쳐낼 수도 없었다. 끼니는 새로운 시간의, 밀물로 달려드는 것이어서 사람이 거기에 개입할 수 없었다. 먹든 굶든 간에, 다만 속수무책의 몸을 내맡길 뿐이었다. 끼니는 칼로 베어지지 않았고 총포로 조준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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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평적 개념의 순간들로
수직적 개념의 영원을
이해하는 건 불가능하다.
아니 무의미하다.

시간은 흐르는 게 아니라
각각의 점들이
무수히 찍혀 있는 것이다.

오늘 하루
어떤 점을 찍어야 할 것인가
어떤 점을 찍지 말아야 할 것인가


과거와 미래의 차이는 
이 희미함과 깊이 연결돼 있다
만일 우리가 이 세상의 정확한
미시적인 상태에 대한 상세한 내용을 
고려할 수 있다면 시간의 흐름에 관한 
특징적인 부분들이 사라질까?

그렇다. 
사물의 미시적인 상태를 관찰하면, 
과거와 미래의 차이가 사라진다. 

예를 들어 이 세상의 미래는 
현재의 상태에 따라
즉 과거의 상태에서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현재에 의해 결정된다. 

우리는 원인이 결과보다 앞선다는 
말을 자주하지만
사물의 기본 문법에서는 
‘원인과 ‘결과‘의 구분이 없다. 

그 대신 서로 다른 시간에서의 
사건들을 연결하는 물리 법칙들에 의해 
표현되는 규칙성이 있는데
여기서 미래와 과거는 서로 대칭적이다.

미시적인 관점에서 보면 
과거와 미래의 구분은 무의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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