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
오늘 일어날 모든 일들을
알고 있다면 그것을 감사해할까

이 인생
구비구비에서 일어날
모든 일들을 알고 있다면
과연 살아보거나 살아가려 할까

모두 알고 있고 안다면
지루했을 이 아침

때로는
모르는 게 약이다

이만큼이나 주신 것만으로
감사하며 시작하는 아침이
보약이다.

작가가 자신이 무엇을 쓰고 있는지 안다면, 그 글은 진부해지거나 정신분석학 따위에 빠져들 위험이 아주 큽니다. 그러나 그것을 알지 못해서 앞이 안 보인다는 듯이 더듬거리면 길을 찾아간다면, 뒤돌아보았을 때 자신이 길을 직접 만들었음을 알게 될 겁니다.
막스 피르 - P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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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세상 어디즈음
살아가고 있는가.
내 계절 어디즈음
걸어가고 있는가.
이 여행길이
목적지였음을
언제즈음 알아차릴 것인가.

찰나 생
찰나 멸

모든 것을 잃고
서리와 얼음으로 덮인 나무일때
헐벗은 가지에 
바람 소리만 가득할 때
그것으로 자신의 전 생애를 
판단해선 안 된다.
연약한 움을 틔운 시기에는 
그 연약함이 오므려쥔 기대를 
무시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모든 계절을 다 품고
한 계절씩 여행하는 중이기 때문이다.
어떤 계절도 영원히 
지속되지 않음을 
나무는 잘 안다.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어떤 겨울도 견딜 만하다는 것을.. 힌디어에
‘킬레가 또 데켕게‘라는 격언이 있다. ‘꽃이 피면 알게 될 것이다.‘
라는 뜻이다.

지금은 나의 미래를 장담할 수 없고
설명할 길이 없어도 언젠가 
내가 꽃을 피우면 사람들이 
그것을 보게 될 것이라는 의미이다.
자신의 현재 모습에 대해
자신이 통과하는 계절에 대해 
굳이 타인에게 설명할 필요가 없다. 
타인이 아니라 
자신에게 증명하면 된다.
시간이 흘러 결실을 맺으면 사람들은 
자연히 알게 될 것이므로
바깥의 계절과 상관없이

지금 나는 
어느 계절을 살아가고있는가? - P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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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고픔은 훌륭한 스승이고
인간은 거기에서 배우는 바가 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자발적인 굶주림
시장기와 같은 외로움의 시간
건널 수 있어야 한다.
견디느냐와
즐기느냐의 차이가
성장의 척도가 된다.

나는 젊음이나 마찬가지로 덧없고도 거짓된 청년기의 서정적이 기질을 아직 지니고 있었다. 그것을 잃어버려서 오히려 잘되었다는 생각을 했지만, 장편 소설을 꼭 써야 한다는 필요성 역시 잘 알았다. 하지만 쓰지 않고는 견디지 못할 때까지 나는그 일을 미루리라. 우리들이 밥을 제대로 먹기 위해서 꼭 써야하기 때문에 소설을 쓴다면 나는 나쁜 놈이다. 달리 어쩔 수가 없고 오직 작품을 쓰는 것만이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믿게될 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나는 글을 쓰리라. 압박감이 강해지기를 기다리자. 그러는 동안에 나는 내가 가장 잘 아는 어떤내용에 대해서 긴 작품을 쓸 준비를 해야 한다. - P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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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상과 태도기 둘 다 방법이다라는 건

목적이라는 이야기일까
수단이라는 이야기일까
과정이라는 이야기일까
결과라는 이야기일까

독서로 여행을 대신하기 시작한 지 오래되었지만 삶이 이 지경이 된 것에 불만은 없다. 내게는 가보지 못한 곳에 대한 동경보다는 읽지 못한 책에 대한 갈급이 언제나 더 세다. 그러니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살고 있는 것이다. ‘마이 소울 시티‘가 어디일까 떠올려보려 했으나 실패했다. 가본 곳이 없어서만은 아니었다. 생각을 시작하자마자 소설 속의 한 장소가 떠올랐는데 도무지 거기서 벗어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코끼리를 생각하지 말자고 결심했더니 코끼리만 생각하게 된 꼴이다. 도리 없이 ‘그곳‘ 대해서 쓰기로 한다. 그래, 나의 ‘소울시티‘는 무진이다. 382.p

우울하고 애매하게 만들기. 이를 각각 멜랑콜리와 아이러니라고 부른다. 잃어버린 것을 포기하지 못한 채 상실의 고통과 한 몸이기를 끝내 고집하는 것. 믿는 척하면서 안 믿고, 지는 척하면서 이기는 것. 전자는 우리가 무언가 결정적인 것을 잃어버린 채 살고 있음을 고독하게 증거하고, 후자는 절대적인 진리라 간주되는 것들이 한낱 상대적인 진리일 뿐임을 경쾌하게 폭로한다. 멜랑콜리는 증상이고 아이러니는 태도이지만 여하튼 둘 다 방법이다. - P3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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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지 못하는 것
알게 하는 지식을 추구하기 보단
알고 있는 것
이미 알고 있음을 알아차림으로써
깨달음의 지혜로 추구하는게
더 중요하지 않을까

이것은 왜 존재하는가
라는 의문을

이것은 어떻게 존재하는가
라는 질문으로

눈 먼 사람에게
빛에 대해 설명해주기보다는

눈 먼 사람이 직접 눈 떠서
빛을 볼 수 있게 하는 것

철학이
필요한 수단이 아니라
충분한 방편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되게 할 수 있지 않을까

미지의 것을 알기 위해서는 
지금은 알지 못하는 일을 
접할 필요가 있다.
지금 알지 못하는 일을 
알지 못한다는 이유로 거절하면 
알게 될 기회를 잃게 되고

알게 됨으로써 변화할 수 있는 
기회 또한 잃고 만다.

그러므로 알지 못하는 사람
즉 타자와의 만남은 자신을
바꿀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이것이 바로 레비나스가 말하는 
타자와의 해후가 가져다주는 
가능성이다.
레비나스는 자칫 서로 이해하지 못해 
적대적인 관계가 될 가능성이 있는 
타자와의 해후에 있어 
그의 철학의 핵심 개념인 
얼굴의 중요성을 누차 강조했다. 
다음과 같은 문단이 대표적이다.

인간에게 ‘사람을 죽이지 말지어다!‘ 하고 표현하는 ‘얼굴‘의 개념만은 
자기만족을 느끼는 동안에도
혹은 우리의 능력을 시험하는 
장애를 겪는 동안에도 
회귀하지 않는다.
이는 현실적으로 죽이는 일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단지 죽일 수 있는 것은 
타자의 얼굴을 응시하지
않는 경우뿐이다. - P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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