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지 못하는 것
알게 하는 지식을 추구하기 보단
알고 있는 것
이미 알고 있음을 알아차림으로써
깨달음의 지혜로 추구하는게
더 중요하지 않을까
​
이것은 왜 존재하는가
라는 의문을
​
이것은 어떻게 존재하는가
라는 질문으로
​
눈 먼 사람에게
빛에 대해 설명해주기보다는
​
눈 먼 사람이 직접 눈 떠서
빛을 볼 수 있게 하는 것
​
철학이
필요한 수단이 아니라
충분한 방편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
되게 할 수 있지 않을까

미지의 것을 알기 위해서는 
지금은 알지 못하는 일을 
접할 필요가 있다.
지금 알지 못하는 일을 
알지 못한다는 이유로 거절하면 
알게 될 기회를 잃게 되고
​
알게 됨으로써 변화할 수 있는 
기회 또한 잃고 만다.
​
그러므로 알지 못하는 사람
즉 타자와의 만남은 자신을
바꿀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이것이 바로 레비나스가 말하는 
타자와의 해후가 가져다주는 
가능성이다.
레비나스는 자칫 서로 이해하지 못해 
적대적인 관계가 될 가능성이 있는 
타자와의 해후에 있어 
그의 철학의 핵심 개념인 
얼굴의 중요성을 누차 강조했다. 
다음과 같은 문단이 대표적이다.
​
인간에게 ‘사람을 죽이지 말지어다!‘ 하고 표현하는 ‘얼굴‘의 개념만은 
자기만족을 느끼는 동안에도
혹은 우리의 능력을 시험하는 
장애를 겪는 동안에도 
회귀하지 않는다.
이는 현실적으로 죽이는 일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단지 죽일 수 있는 것은 
타자의 얼굴을 응시하지
않는 경우뿐이다. - P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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