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시간
같은 공간
같은 사연
같은 인연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다

흐르는 시냇물에
손을 담그면
매순간
새 물 흐르듯이

시냇물
떠내려가는
낙엽들
앞 뒤
돌아보지 않듯이

일기일회다.

다사 때 선생님은 자주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 진지하게 임해야 해요. 다사에 참여할 때는 정주도 손님도 이번이 ‘일기일회‘의 다사라고 생각하고 마음을 담아서 하는 법이니까요." 일기일회 란 일생에 단 한 번 뿐이라는 의미다.
225.p

아버지는 술을 마시면 자주 가족들에게 이런 말을 했다. "나는 죽을 때 벚꽃처럼 한순간에 지고 싶구나." 늘 연극 대사 같은 말을 하기 일쑤였기 때문에 나도 엄마도 남동생도 "또 저런다."하고 웃어 넘겼다. 그런데 아버지의 장례식 날, 정말로 연극의 피날레처럼 벚꽃이 하늘하늘 흩날렸다. 화장터까지 와 주었던 다케다 선생님이 중얼거렸다. "노리코, 벚꽃이 슬픈 추억이 되어 버렸구나." 나는 잿빛 연기를 지켜보았다. "정말로 한순간에 가 버렸어요..." 인생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은 언제나 갑작스럽다. 옛날에도 지금도.

만일 미리 알고 있었다 하더라도 사람은 정말로 그 순간이 닥칠 때까지 아무런 마음의 준비도 하지 못하다. 결국 처음 느꼈던 감정 그대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슬퍼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그 순간이 왔을 때 비로소 자신이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달리 어떨게 살아갈 수 있을까? 언제나 마지막 순간이 다가올 때까지 어떠한 마음의 준비도 하지 못하고, 결국 오랜 시간이 걸려 조금씩 그 슬픔에 익숙해져 갈 수 밖에 없는 인간이란 존재에게...231.p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9년을 이틀 남겨둔
12월 29일 일요일.

가는 해가 아쉽진 않지만
오는 해 반갑지도 않지만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서
사발면으로 늦은 아침 먹고

밀린 일 하고 있는
이 날도 추억이 되리라.

밥에는 대책이 없다.
한두 끼를 먹어서 되는 일이 아니라, 죽는 날까지 때가 되면 반드시 먹어야 한다. 이것이 밥이다. 이것이 진저리 나는 밥이라는 것이다.
밥벌이도 힘들지만, 벌어놓은 밥을 넘기기도 그에 못지 않게 힘들다. 술이 덜 깬 아침에, 골은 깨어지고 속은 뒤집히는데, 다시 거리로 나아가기 위해 김 나는 밥을 마주하고 있으면 밥의 슬픔은 절정을 이룬다. 이것을 넘겨야 다시 이것을 벌 수가 있는데, 속이 쓰려서 이것을 넘길 수가 없다. 이것을 벌기 위하여 이것을 넘길 수가 없도록 몸을 부려야 한다. 대체 나는 왜 이것을 이토록 필사적으로 벌어야 하는가. 그러니 이것을 어찌하면 좋은가. 대책이 없는 것이다. 36.p

그러므로 이 세상의 근로감독관들아, 제발 인간을 향해서 열심히 일하라고 조져대지 말아 달라. 제발 이제는 좀 쉬라고 말해 달라. 이미 곤죽이 되도록 열심히 했다. 나는 밥벌이를 지겨워하는 모든 사람들의 친구가 되고 싶다. 친구들아, 밥벌이에는 아무 대책이 없다. 그러나 우리들의 목표는 끝끝내 밥벌이가 아니다. 이걸 잊지 말고 또다시 각자 핸드폰으 차고 거리로 나가서 꾸역꾸역 밥을 벌자. 무슨 도리 있겠는가. 아무 도리 없다.38.p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는 걸을 때만 사색할 수 있다.
내 걸음이 멈추면 내 생각도 멈춘다. 내 두 발이 움직여야 내 머리가 움직인다.
장자끄 루소

독서는 앉아서 하는 여행
여행은 걸으면서 하는 독서
둘의 공통점은
뚜벅뚜벅 할 수 있고 해야 한다는 점이다.

한 장소를 파악한다는 것은 그 장소에 기억과 연상이라는 보이지 않는 씨앗을 심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 장소로 돌아가면 그 씨앗의 열매가 기다리고 있다. 새로운 장소는 새로운 생각, 새로운 가능성이다. 세상을 두루 살피려면 걸어 다녀야 하듯, 마음을 두루 살피려면 걸어 다녀야 한다. 32.p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외근중
책한권 다 읽기는
처음인듯.

미래도
과거도
현재도
꿈이었음을

잊지말기

미래에 사는 것은 꿈이다. 미래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미래에 사는 것은 현재에 만족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욕망에 대한 두 가지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하나는 우리는 가지고 있는 것이 무엇이든 그것에 집착한다는 것이다. 이 모순을 보라. 가지고 있는 것이 무엇이든 집착하면서 만족할줄 모른다. 그것으로 인해 고통받기 때문에 그것을 더욱 개선하고 장식하고 좋게 꾸미려는 꿈을 꾼다. 우리는 가지고 있는 것에 끝없이 매달리고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끝없이 욕망한다. 우리는 이 둘 사이에서 짓눌리고 있다. 언제나 그럴 것이다. 어제도 그랬고, 오늘도 그렇고 내일도 그렇고 전 생애가 그럴 것이다.
자신이 가진 것에 착 달라붙어 누구도 손대지 못하게 하면서 여전히 자신은 그것에 만족하지 못한다. 그러면서 언젠가는 더 나아질 것이라 기대한다. 열정이나 욕망 속에서 사는 이는 무익한 삶을 산다.
그는 항상 불행하고 비참하다.
그들은 항상 실재하지 않는 꿈을 꾼다.53-54.p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첫 문장을 따라가면
어디든 도달할 수가 있다.
문제는 무엇이
첫 문장이 되어야 하느냐이다.

프랑스작가이자 철학자이자 
비평가인 롤랑 바르트는 말했다.

어떤 담론이건 담론이 표현하는 것은 
전부 한 문장 안에 담겨있다.

그는 또 덧붙였다.

규모와 무관하게 모든 담론은 
하나의 긴 문장이다……
마찬가지로 한 문장은 그 자체로 
짧은 담론이다.

몇 년 전 이 책을 계획하고 있을 때
내가 일하던 대학의 학과장 
휴 케너HughKenner 선생은 내게 
"일단 첫 문장을 제대로 쓰면 나머지는 
자연스레 따라온다"는 
요지의 조언을 해주었다. 

뜻인즉슨, 내가 쓴 첫 문장이 그것에서 
시작된 여정의 우여곡절을 온전히 
이해한 결과물이라면(그 경우 첫 문장은 
곧 마지막 문장이 된다) 
그 문장만 따라가도 내 주장과 사례들의
질서가 제대로 잡힌다는 것이다.
그 충고는 옳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