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세계문학 42
프란츠 카프카 지음, 권혁준 옮김 / 창비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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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와 장편소설 중 한편인 '성'이 창비세계문학 시리즈의 한권으로 번역되어 나왔습니다. 오랫동안 관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끝까지 읽지는 못해 늘 마음 한구석에 빚을 지고 있는 듯한 느낌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책은 저의 그 모든 마음의 짐을 들어 주었습니다. 난해하게만 다가오던 기존의 번역서와는 달리, 비록 이 작품 특유의 애매모호함은 여전하지만, 번역자체는 아주 유려하고 이해하기 쉽게 번역되어 있어서 읽는것 자체에는 크게 부담이 없었습니다.
카프카는 당시에 최고의 교육을 받은 엘리트로서 그가 살던 동유럽의 비합리적이고 주술적인 전근대적 사고에 젖은 보통의 사람들과는 아주 달랐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직접적으로 대중들을 계몽하기 보다는 대중들 스스로 자신들의 전근대성을 자각할 수 있도록 이 작품을 창작하였습니다.
작품 속에서 카프카의 이름 첫글자를 딴듯한 주인공인 '케이'는 마을 주민들의 전근대적이고 비합리적이고 집단주의적이고 권위에만 의지하는 구태의연한 사고방식을 혁신하기 위해 끊임없이 갈등을 일으키고 싸워나갑니다. 즉, 사실 카프카가 살던 당시 동유럽은 19세기에 비로소 농노제도 폐지될만큼 서유럽에 비해 근대화의 속도가 아주 더딘 변방에 해당합니다. 이러한 변방에서 서유럽의 계몽주의에 기초한 교육을 받아 합리적인 사유를 하던 카프카는 자신 주변의 보통 사람들을 관찰하고 이들의 전근대적 사고방식에 대해 반감을 느끼며 마음속으로 많은 갈등을 했고, 결국 죽음에 이르도록 끝까지 그들과 융합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그들을 버리고 떠나지도 못하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면서 한편의 우화로서 <성>이란 작품을 최후의 유작으로 남겼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러한 전근대성을 극복하는 역사적 과정은 동유럽뿐 아니라 유라시아 대륙의 반대쪽 끝인 아시아에서도 치열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즉 2차대전 직후에 벌어진 중국에서 국민당과 공산당간의 내전, 한국전쟁, 베트남전쟁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이 근대화내지는 서구화과정의 난맥상을 잘 보여줍니다. 우리나라나 일본 중국 대만 등 아시아 전역에서도 여전히 서구식 교육을 받아 합리적 사유를 적극적으로 수용한 소수의 엘리트들이 어떻게 전근대적이고 주술적인 사고방식에 젖은 대중들을 각성시켜 나가는지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문제라고 할 것입니다.

끝으로, 카프카의 이 책은 우리시대에도 충분히 의미가 있는 고전으로 창비에서 새로이 쉽게 번역하였으므로 가급적 읽어보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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