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충격의 외환위기 이후부터, 여기 저기에서 한국이나 일본은 경제의 투명성이 없어서 투자자의 신뢰를 얻지 못한다는 논의가 미디어에 오르내리게되자 우리는 사회 각 분야에서 투명성을 확보하는 것이 선진국으로 가는 길이라는 믿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미디어의 주장에 설득된 사람들은 대체로 투명성은 선이고 우리가 추구해야할 목표라고까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그런데 한병철선생님이 이 책에서 이러한 우리의 투명성 신화를 단번에 격파해 버립니다. 사회는 투명해질 수록 인간의 자유로운 표현의 자유와 개인의 프라이버시는 급격하게 위축되게 됩니다. 특히 투명성의 부정적인 측면은 몇몇의 선정적보도채널의 등장으로 인해 극에 달하게 됩니다. 형사법상 모든 피의자나 피고인에게는 무죄추정의 원칙이 적용되어야 마땅함에도 대중들의 관심이 쏠리는 사건의 경우, 당연히 보호해야할 사생활조차 투명사회에서는 모두 공개되어 언론을 통해 심판받는 일이 반복되게 됩니다. 이러한 현실은 미디어의 발달로 전세계적인 일이 되고 있고 별로 새로운 현상도 아니게 되었습니다. 특히, 서양의 경우 오프라윈프리쇼와 같은 개인의 사생활을 전면에 내세우는 쇼가 유행하고 주부들에게 인기를 끌지만, 우리는 드라마를 보면 봤지 그런 쇼는 크게 주목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즉 서양인들은 자신의 사생활을 투명하게 드러내는 것에 대해 거부감이 없고, 또한 있는 그대로 감정을 드러내는 것을 개성표현이라는 독특한 문화라고 선전합니다. 우리와 같은 동양인들은 그렇게 자신의 개성을 표현하지 못하는 점에 대해 스스로 위축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소수의 도시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살게 되면서 과도한 자기 표현과 투명성을 추구하는 것은 사회적 영역에서는 그 부작용이 나타나게 됩니다. 몇몇 도시에 인구 밀집된 상황에서 생존해야하는 산업화이후의 시대에서는 불투명성이 오히려 개인의 프라이버시나 행동의 자유를 폭넓게 보장해주는 역설적 상황이 벌어지게 됩니다.또한, 이러한 동서양의 차이는 저자가 동양인이라는 방향으로 자연스럽게 귀결됩니다. 독일어로 책을 출간했지만, 동양인이기 때문에 어느누구도 의문시하지 않았고 적어도 철학의 영역에서는 거의 논의 되지 않았던 '투명성'의 문제를 제기할 수 있었습니다. 끝으로 이 책은 최근의 정보화와 앞으로 도래할 우리의 미래에 어떻게 개인의 사생활과 표현의 자유를 보호하고 국가나 기업의 간섭없는 진정한 자유를 지켜낼지에 관한 통찰력있는 보고서라고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