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그림자 (합본 특별판) 잊힌 책들의 묘지 4부작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 지음, 정동섭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현대 소설은 기교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 특히 카프카나 프루스트 같은 대가의

등장이후, 그의 작품을 오마주하거나 그 형식을 차용하여 현학적이고 우화적인 소설을 흔하게

만날 수 있고, 이런 형식에서 뛰어난 작품들을 최고의 문학상에 오르기도 합니다. 


하지만, 소설의 기본은 그 형식보다는 서사이기에 이야기적으로 완성도가 높은  소설이 독자입장에서는  오랫동안 기억에 남습니다. 이런 뛰어난 이야기를 가진 작품이 바로 사폰의 바람의 그림자라는 소설입니다. 이 소설은 스페인의 현대사를 배경으로 특히 바르셀로나라는 독특한 지역적 배경을 중심으로 여러 인간 군상들이 등장하여 사랑과 우정에 대해 이야기해 줍니다. 


이 책은 사랑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게 합니다. 홀리안이라는 등장인물의 페넬로페와의 미완성 사랑과 다니엘과 베아트리스의 '완성된' 사랑이라는 대비를 통해 사랑의 의미를 묻습니다. 

우리가 대중매체에서 흔하게 접하는 감각적이고 육욕적인 사랑은 특히 훌리안과 페넬로페의 사랑과 대비해 보면 많은 것을 스스로 깨달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페넬로페라는 이름도 우화적이고 이 작품의 주제의식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즉, 서사시 오딧세이아에는  오딧세우스의 아내로 페넬로페가 등장합니다. 오딧세우스도 십여년간 바다에 길을 잃고 방황하는 도중에도 아내인 페넬로페에게 돌아가기 위해 분투하는 내용이 주된 내용인데, 사폰의 작품에서 홀리안은 현대판 오딧세우스로 재탄생하게 됩니다.


격동과 모순의 현대사를 가진 스페인을 배경으로, 근친상간과 이로 인해 일어나는 일디야 가문의 몰락과 훌리안의 죽음을 둘러싼 감춰진 가족사를 들춰내는 소년 탐정 다니엘의 활약과 악당 푸메로의 끊질긴 추적, 해방을 꿈꾸었어나 좌절되어 퇴락한 페르민이라는 인물을 통해 스페인 공화주의자의 무기력과 무능과 이를 치유하는 이야기를 통해 새로운 스페인 공화국이 재탄생할 것이라는 것을 암시합니다. 즉, 이 책은 단순한 훌리안의 죽음을 추적하는 추리소설로도 읽을 수 있고, 스페인 현대사에 대한 배경지식이 있으시다면, 스페인 내전에 의해 좌절된 공화주의자들의 패배와 이를 치유하고 다시 부활하게 될 것임을 암시하는 대하역사소설로도 읽을 수 있을 것입니다. 다양한 상징과 시대 배경 묘사도 충실하게 되어 있어서 여러번 읽으면서 그 숨겨진 의미를 음미한다면 더욱 책읽는 재미가 배가될 것입니다.   


사폰의 작품은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과 견주어도 결코 뒤지지 않는 현대의 고전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며, 그래서 비록 우리와는 크게 관계없는 스페인의 현대사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지만, 2차세계대전 직전에 스페인공화국의 붕괴되게하는 스페인내전이라는 공화주의자와 프랑코세력으로 대표되는 보수주의자간의 전쟁이 지니는 세계사적 의미를 생각해 보신다면 충분히 음미하고 읽어볼 가치가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