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노시타의 글은 황교통(黃橋通), 곧 종로4가에서 창경원까지의 출근길을 회상하며 시작했다. 열여섯 소년은 냉맥주와 냉사이다를 파는 노점들을 통과해, 복숭아와 하귤을 문전에 늘어놓고 유람객과 총독부 의원의 손님들을 호객하는 장사꾼들을 지나 궁으로 들어온다. 가슴에는 이름표와 표찰이 달려 있고 갈색 작업복을 입었다.
출근부에 사인을 하지만 사무소로 들어가지는 않는다.
어차피 그의 자리는 대온실부터 붉은사슴, 영양, 노루, 얼룩말들이 있는 동쪽 초식동물사까지 전체이니까. 궁에는 하루도 조용한 아침이 없었다. 홍화문을 들어서자마자 동물 소리가 포획하듯 귀를 덮었다. 귀 있는 사람이라면 듣지 않을 수 없는 소리였다. 대만, 일본, 히말라야, 필리핀,
브라질, 아프리카 등지에서 온 수십마리의 원숭이가 노는 소리, 제주 말과 요크셔 돼지들이 우는 소리, 삶과 늑대가 목적 없이 위협하는 소리, 동양 최대의 큰물새우리에서 들려오는 두루미와 흑고니, 왕관앵무와 펠리컨과 청둥오리, 가마우지 같은 새들의 지저귐, 노천방사장을 나는백여종 새 떼의 날갯짓, 그 모든 것이 동물사 냄새와 함께 아침을 열었다. - P13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보통은 대답 못하면 쑥스러워하거나 창피해하거나 그래야 하잖아? 근데 얘는 그런 게 없어. 뭐랄까, 그냥 칠판이나 담장 같은 게 된 것 같아."
칠판이나 담장 같은 아이. 어쩌면 아이는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런 일들은 외부의 두드림에도 응답을 내놓을 수 없는 심한 무기력을 만들어내니까.  - P6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리사는 할머니에게 냉랭했고 확실히 적대적이었다. 나는 어쩌면 잃어본 적이 없어서 저러는지 모른다고 짐작했다. 부산에 부모님이 계신다고 했고 할머니도 있으니까, 가족을 잃어보지 않은 사람들은가족 아쉬운 줄을 모르게 마련이었다. 명절이면 섬 밭두렁에 도시 차들이 열 지어 주차되어 있고 거기서 내린 껄렁한 아이들이 자기 사촌들을 따라 마을 구경 다니는 모습들까지, 그 모든 게 마음 서늘하도록 부러운 사람도 있다는 걸. - P4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지금도 리사를 생각하면 한번도 본 적 없는 LA의 한 빙상장이 상상된다. 낙원하숙을 떠나 유학을 간 열여덟의리사가 비행기에서 내린 지 48시간 만에 스케이트 부츠를 신고 묵묵히 얼음을 지치는 장면이 무릎을 굽히고 주먹을 쥔 채 빙상장 얼음 끝을 쏘아보는 리사에게는 당연히 말도, 웃음도 없다. 그렇다고 음울함이 드리워지지도 않았는데 그런 건 리사의 영향권 밖에 있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자주 침울해지기는 했지만 리사의 우울에는 뭐랄까, 위축된 서글픔 같은 게 없었다. 내면의 커튼을 열어젖히면 흐느껴 울고 있는 여린 영혼이 아니라 히치콕의 영화 「사이코」에서처럼 무법자가 달려들 듯한 공격적인 우울이랄까. - P2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17세기 로마는 두 천재 건축가 베르니니와 보로미니가 있었다. 두 사람은 평생 서로를 경쟁자이자 영감의 대상으로 삼아 걸작을 만들어냈다. 두 사람의 눈부신 실력을 바탕으로 18세기에 등장한 천정화와 계단, 분수대는 로마 바로크의 장관이다. - P26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