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헝가리에서는 첨가물이나 방부제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었고 모든 식재료가 재료 그대로의 모습으로 유통되고 있었다. 그렇게 신선하고 소박한 먹거리를 나의 몸은 참 좋아했다.
아버지의 지인 댁에 초대받았을 때는 정원에서 기르던 토끼와 닭을 직접 잡아 조리한 음식을 먹을 기회도 있었고, 사냥해온 영양고기를 대접받은 일도 있었다. 야산을 돌아다니던 영양고기는 씹을 때마다 생명의 힘이 입안에 퍼지는 느낌이 들었다. 음식은 생명이라는 너무나도 간단한 사실을 나는 그때 처음 깨달았다.
10대 후반부터 내 몸은 정크식품에 절어 있었다. 항상 몸이 나른하다고 느꼈는데 놀랍게도 헝가리에 산 지 1년 만에 내 몸은 달라졌다.
나중에 귀국한 후, 예전에 항상 마시던 캔 커피를 마시고는 갈색 물감이라고 느낄 정도였다.
- P164

엔데는 돈을 ‘사람들이 생활에서 사용하는 교환을 위한 돈=빵집에서 쓰는 돈‘과 ‘자본이 사업을 통해 불리려 하는 돈=자본으로서의 돈‘으로 나누었다. 그리고 전혀 다른 이 두 종류의 돈에 동일한 ‘법정통화‘(에, 달러 등)가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경제와 삶이 혼란을 일으킨다고 지적하며, 그렇다면 이 두 종류의 돈을 나누면 된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빵집에서 쓰는 돈으로는 도시를 목적으로 한 특정 지역에서만 쓸 수 있는 돈, ‘지역통화‘를 쓰자고 제안했다. 바로 이 지역통화라는 조금 특이한 돈의 가능성에 당시의 나는 완전히 빠져들었다.
「엔데의 유언에서는 지역통화에 대한 몇 가지 사례가 소개되어있다. 그 중에서도 내가 강력하게 끌린 부분은 지역 농업을 활성화시켰던 미국의 이타카라는 마을의 통화 ‘이타카 아워(Ithaca Hours)‘였다. 그 지폐에는 이런 이념이 인쇄되어 있다.
"이타카 아워는 우리 지역의 자원을 재활용함으로써 지역 경제를 자극하고, 새로운 일자리 창출에 일조한다. 이타카 아워는 우리의 기능, 체력, 도구, 삼림, 들판, 강 등 우리 지역 본래의 자본에 의해 유지된다."(‘「엔데의 유언」) - P177

언제였던가. 단골손님이 임종이 얼마 남지 않은 아버지께 빵을 보내달라는 주문을 한 적이 있다.
"아버지는 빵을 참 좋아하셨거든요. 돌아가시기 전에 꼭 빵을 대접하고 싶어요. 다루마리의 빵을 드시고 편안하게 눈을 감으시면 좋겠습니다."라는 의뢰였다.
늦지 않게 보내드릴 수 있을까? 평소보다 더 진심을 담아 빵을 구웠다. 그 빵에 쏟은 우리의 마음이 전해지도록 택배 포장에도 온갖 정성을 쏟아 급히 보냈다. 얼마 후 다시 연락을 받았다.
"저희 아버지는 다루마리의 빵을 드시면서 돌아가셨습니다. 입에문 빵 한 조각을 맛있게 천천히 음미하면서, 미소를 띤 채 조용히 숨을 거두었습니다. 그 댁 빵이 저희 아버지의 마지막 만찬이었습니다."
- P198

돈을 쓰는 방식이야말로 사회를 만든다.
자리가 잡히고 균이 자라면 먹거리는 발효한다. 그와 마찬가지로 소상인과 장인이 크면 경제도 발효할 것이다. 사람과 균과 작물의 생명이 넉넉하게 자라고 잠재능력이 충분히 발휘되는 경제. 그것이 시골빵집이 새롭게 구워낸 자본론이다. 빵을 굽는 우리는 시골 변방에서 일어나는 조용한 혁명의 태동을 오늘도 느끼는 중이다.
- P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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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르트헤이트 Apartheid 를 만든 천재들은 자신들보다 절대 다수의 사람들이 서로에게등을 돌리게끔 만들었다. 말 그대로, 따로 떨어뜨려apart 미워하게 hate 만든 것이다. 사람들을 여러 그룹으로 나눈 다음 서로 미워하게 만들면, 그들 모두를 아주 손쉽게 통제할 수 있다.
그 당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흑인 인구는 백인에 비해 거의 다섯 배나 많았지만, 줄1루Zulu, 코사지hosa, 초와나rswana, 소토Sotho, 벤다venda, 은데벨레 Ndebele, 총가 Tsange,
페디Peil 등 각기 다른 언어를 쓰는 여러 부족으로 나뉘어 있었다. 아파르트헤이트가 시행되기 오래전부터 이 부족 파벌들은 서로 충돌하고 싸워왔다. 백인들은 그 적대감을 이용해서 이 부족들을 분리하고 정복했다. 모든 비非백인들은 체계적으로 다양한 그룹 및 하위 그룹으로 분리되었다. 그리고 이들 그룹끼리 계속해서 서로 불화하게끔, 각 그루뼐로 행사할 수 있는 권리도 다르게 주어졌다. - P12

에피소드 1

뛰어!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의 추격 신에서는 누군가 달리는 차에서 뛰어내리거나 던져지는 장면이 심심찮게 등장한다. 맨바닥에 부딪힌 그사람은 어느 정도 데굴데굴 구르다가 딱 멈춰서 벌떡 일어나 먼지를 툭툭 덜어 낸다. 마치 별일 아니라는 듯이. 그런 장면을 볼 때마다 난생각한다. ‘저거 완전 뻥이야, 달리는 차에서 내던져지면 저것보다 훨씬 더 아프다고."
- P15

매년 열리는 메리베일 운동회의 챔피언은 나였고, 엄마들중 챔피언은 바로 우리 엄마였다. 비결이 뭐냐고? 엄마는 늘 내 엉덩이를 걷어차려고 날 쫓아다녔고, 나는 걷어차이지 않기 위해 늘 도망 다녔으니까. 그 누구도 나와 엄마보다 빨리 달리지 못했다. 엄마는 ‘이리와서 좀 맞자‘는 식으로 매질하는 타입이 아니었다. 그보단, 무료 배송으로 매질을 서비스하는 쪽이랄까. 또 물건을 집어던지는 데도 능숙했다. 무엇이든 엄마 옆에 있던 게 내 눈앞으로 날아오곤 했다. 그게 깨질 수 있는 물건이면 잡아서 고이 내려놔야 했다. 만약에 깨지기라도하면 그 역시 내 잘못이 되어 버리고 그럼 볼기짝이 훨씬 더 얼얼해질테니까. 엄마가 꽃병을 던지면, 나는 그걸 잡아서, 내려놓고, 다시 도망갔다. 그 찰나의 순간에 나는 생각해야 했다. 이거 중요한 물건인가?
그래. 깨질 수 있는 건가? 그래. 그럼 잡고, 내려놓고, 다시 도망가자!!
- P24

다만 지금 확실히 기억나는 것. 앞으로도 절대 잊지 않을 것은, 그 뒤에 이어진 폭력 사태였다. 가끔 당시 민주주의가 아파르트헤이트에승리했다며 이를 ‘무혈 혁명‘이라 부르는 사람들이 보인다. 하지만 그건 백인들에게만 해당되는 말이었다. 흑인들의 피는 거리에 흘러 넘했다.
아파르트헤이트가 붕괴됐으니 우리는 이제 주도권이 흑인들에게 넘어 오리란 걸 알았다. 문제는, ‘어느 쪽 흑인이냐‘ 였다. 잉카타 자유당Inkatha Freedom Party측과 아프리카 민족회의Anc: African National Congress 측이 서로 권력을 다투면서 폭력 사태가 빈발했다. 이 둘 사이의 정치적 역학 관계는 상당히 복잡했지만, 줄루와 코사의 대리전으로 이해하는 편이 가장 쉽다. 잉카타는 대부분 줄루족으로, 매우 호전적이며 국수주의적이었다. 한편 ANC는 여러 다른 부족들의 연합체 성격을 띠고있었으나 그 당시엔 주로 코사족이 리더를 맡고 있었다. 이 둘은 평화롭게 힘을 뭉치는 대신 서로에게 등을 돌리고 믿을 수 없을 만큼 야만적인 행위를 저질렀다. 곳곳에서 폭동이 일었다. 수천 명의 사람들이 살해됐다. - P26

언어에는 정체성과 문화뿐 아니라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에 대한 인식도 담겨있다. 같은 언어를 쓴다는 건 ‘우리는 똑같다‘는 의미를 전한다. 언어에 장벽이 있다면
‘우리는 다르다‘는 의미다. 아파르트헤이트의 설계자들은 이 점을 잘 알았다. 흑인들을분리시키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그들은 우리들을 물리적으로만이 아니라 언어적으로도 나눠 놓았다. 반투 학교에서는 아이들에게 오직 그들의 언어로만 가르쳤다. 줄루족 아이들은 줄루어로 배웠다. 츠와나 아이들은 츠와나어로 배웠다. 이 때문에 우리는 정부가 쳐 놓은 덫에 걸려 우리들끼리 싸웠다. 우리들은 서로 다르다고 믿으면서.
언어의 위대한 점은, 그 반대로 사람들에게 ‘우리는 똑같다‘고 설득시키는 데도 쉽게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 P78

사촌들이라면 충분히 벌을 받고도 남을 짓을 해도 나는 경고만 받고 풀려났다. 심지어 나는 내 사촌들 누구보다도 더 못된 아이였다. 개들은 감히 날 따라올 수 없었다.
뭔가가 깨지거나 할머니의 쿠키가 없어졌다면, 그 범인은 나였다. 나는 사고뭉치였다.
오직 내 엄마만이 내가 진정 두려워하는 유일한 권력이었다. 엄마는 매를 아끼면 아이를 망치는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모두 말했다. "아냐, 저 애는 달라." 그리고 늘 나만은 넘어가 주었다. 이렇게 자라다 보니 나는 이런 모든 혜택을 안겨 주는 시스템에 백인들이 얼마나 쉽게 익숙해지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한 짓 때문에 사촌들이 대신 매 맞는 걸 알았지만, 나는 할머니의 생각을 바꿀 마음이 전혀 없었다. 그건 곧 나도 매를 맞게 된다는 건데, 대체 왜 그래야 하겠는가? 그럼 내 기분이 좀 나아질까? 매를 맞는데 기분이 나아질 리 없었다. 내게는 선택지가 있었다. 집안에 인종적 정의를 실현하느냐, 아니면 할머니의 쿠키를 마음껏 즐기느냐. 물론 나는 쿠키를 골랐다.
- P83

미션 스쿨과 반투 학교로 대변되는 남아공의 교육은, 우리를 압제하던 두 백인 그룹, 영국인들과 아프리카너들의 차이점을 극명히 보여 준다. 영국식 인종 차별과 아프리카너식 인종 차별의 차이점은, 적어도 영국인들은 원주민들에게 뭔가 갈망할 대상을제공했다는 것이다. 만약 똑바른 영어를 쓰고 제대로 차려 입을 수 있다면, 스스로를 영국식으로 교화시킬 수 있다면, 언젠가는 사회에서 환영받는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갈망.
그러나 아프리카너들은 그런 기능성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영국식 인종 차별이 "만약사람처럼 걷고 사람처럼 말하는 원숭이가 있다면, 그건 행여라도 사람일지 몰라" 라면,
아프리카너식 인종 차별은 "대체 왜 원숭이에게 책을 준단 말이야?"라는 식이었던 것이다.
- P97

엄마가 이런 얘기들을 해 준 덕에 나는 지금까지 살아온 과정을결코 당연하게 여기지 않았지만, 그건 자기 연민에서 비롯된 게 아니었다. "과거로부터 배우고 과거보다 더 나아져야 해." 엄마는 말했다.
"하지만 과거를 슬퍼하지는 마라. 인생은 고통으로 가득해, 고통이 너를 단련하게 만들되, 마음에 담아 두지 마. 비통해하지 마라." 그리고엄마는 그러지 않았다. 어린 시절의 박탈감, 부모로부터의 배신감, 그무엇에 대해서도 절대 불평하는 법이 없었다.
엄마는 과거를 흘려보냈을 뿐 아니라 반복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아들의 어린 시절이 자신의 것과 닮아서는 안 됐다.  - P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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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매일 묘지에 간다. 나는 Claus라는 이름이 새겨진 십자가를 바라보며 Lucas라는 이름이 새겨진 다른 십자가로 대체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나는 또한 우리 네 사람이 곧 다시 만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머니만 돌아가시면, 나는 더 이상 살아야 할 이유가 없다.
기차. 그래, 그건 좋은 생각이다.

- P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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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어버리게, 인생은 그런 거야. 모든 게 시간이 지나면 지워지게마련이지. 기억은 희미해지고, 고통은 줄어들고, 나는 사람들이 어떤새나 꽃을 기억하듯이, 내 아내를 기억하고 있지. 그녀는 인생의 기적이었어. 그녀가 사는 세상은 모든 게 가볍고, 쉽고, 아름다웠지. 처음에는 내가 그녀 때문에 이곳에 오곤 했는데, 이제는 주디트, 살아 있는 여인 때문에 이곳에 오네. 자네가 보기엔 우습겠지, 루카스, 하지만 난 주디트를 사랑해, 자기 자식도 아니면서 아이들에게 쏟는 그녀의 사랑, 은혜, 힘을 사랑하네."
- P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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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찰대가 멀어졌다. 우리가 말했다.
"가세요. 아빠. 다음번 순찰은 이십 분 후에 있어요."
아빠는 옆구리에 판자 두 개를 끼고 앞으로 나아가서 판자 하나를 바리케이드에 기대놓고 기어올라간다.
우리는 큰 나무 뒤에 배를 깔고 엎드려서 손으로 귀를 막고 입을벌린다.
폭발음이 들린다.
우리는 미리 준비했던 다른 판자 두 개와 보물이 든 마대를 들고 철조망까지 달린다.
아빠는 두 번째 철조망 직전에 쓰러져 있다.
그렇다. 국경을 넘어가는 방법이 있기는 하다. 누군가를 앞서 가게하는 것이다.
마대를 쥐고, 앞서 간 발자국을 따라간 다음, 아빠의 축 늘어진 몸뚱이를 밟고, 우리 가운데 하나만 국경을 넘어갔다.
남은 하나는 할머니 집으로 돌아왔다.
- P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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