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의 중·고등학교 교육 환경은 후자에 해당되는 ‘오랜 시간 숙고하는 사고방식‘을 충분히 훈련시키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입학 시험을 통해 문제를 어떻게 단시간 동안풀 수 있는가 하는 전자의 사고 방식을 훈련시키는 것이 태반인것 같다. 이것은 불행하고 불완전한 교육이다. 장시간 동안 생각하는 훈련이 안 되어 있는 사람은 깊이 생각할 수가 없다. 따라서앞에서 말한 ‘지혜의 깊이도 키워지지 않는다. - P52

영어에 loneness(고독)와 loneliness(외로움)라는 단어가 있다. 이 두 단어의 뜻은 상통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명확히 서로 대립하는 것이다. loneliness 는 loneness 로부터 도망치려고하는 인간의 감정을 나타낸 말이다. loneness 를 잃었기 때문에loneliness 가 생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적어도loneness를 확고히 갖고 있으면, 좋아하는 사람이나 싫어하는 사람, 어떤 사람과 어떻게 접하더라도 loneliness 를 느끼지 않는다는 것이 나의 신조이다.
편견에서 벗어나 친구들이 가진 중요한 것을 될 수 있는 대로 많이 배우기 위해서도 자기 자신의 loneness 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 P81

이 세상에는 상대가 되지 않을 정도로 우수한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하버드 대학 시절의 멈퍼드와 아틴이 그랬다. 그런 우수한사람들을 일일이 질투하는 것은 아무런 도움도 안 된다. 문제를 푸는 데 있어서 그러한 영재들에게 얻어맞거나, 그들이 나와는 상대가 안 될 정도의 재능을 보였을 때 나는 혼자 이 노래를 부르면서체념하곤 했다. 체념한다고 해서 모두를 포기하는 것은 아니다. 자기의 목표를 확실히 잡으면서 포기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질투심이 안 생긴다. 그리고 남을 질투하는 마음이 없으면 자기의 정신에너지가 조금도 소모되는 일이 없고 판단력도 둔해지지 않는다.
결국 그것이 창조로 이어져 갈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체념하는 기술을 알아두는 것, 그것은 창조하는 데 관련되는 정신 에너지를 제어하고 증폭하는 데 대단히 중요한 것 중의 하나이다. - P99

"문제라는 것은 당신이 하는 방법과 반대로 구체적인 문제에서부터 자꾸 추상화시켜서, 마지막으로 제일 이상적인 형태로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문제가 이상적인 모양이 되면 자연히 풀릴 것입니다."
••••••
예를 들어 회사를 시작할 때 먼저 목표를 구체화시켜, 어떤 지역에서 얼마의 이윤을 내기 위해서는 회사 조직을 어떻게 만들어야 좋은가 하는 식의 사고방식으로는 오히려 잘 안 되는 경우가 많다. 회사가 단기적인 안목으로 운영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오히려 일본뿐만 아니라 세계 시장에서도 이름난 일류 회사를 만들자고 생각하는 편이 그 회사의 본질을 파악할 수 있어서 성공할 확률이 높은 것이다.
문제를 이상적인 형태로 할 것, 또는 순수한 형태로 만들어 풀기 시작할 것. 이것도 창조에는 중요하다.
왜 그것이 중요한가? 지금 말했듯이 해결 방법론 면에서 도움이 되기 때문이지만, 또 단순명쾌한 이론을 결과로서 창조하기위해서는 그러한 작업을 해둘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 P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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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생태계에는 이처럼 소수의 개체들, 심지어는 정자를 품은 한마리의 암컷에 의해 시작되는 개체군들이 적지 않다. 이처럼 다양하지 못한 유전자군으로 시작된 개체군에서 일어나는 각종 유전적 성향을 ‘창시자 효과 founder effect‘라고 한다. 영화 「블루 라군」의 경우처럼 정말 저 먼 외딴 섬에 몇 마리의 새 또는 곤충이 바람에 실려 가 새로운 개체군을 형성하는 경우도 있지만 육지에서도 때로 서식지가 단절되어 졸지에 적은 수의 개체들이 새로운 개체군을 시작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생태학자들은 이처럼 조각 나 고립된 서식지를 ‘서식지섬habitat island‘이라 부르는데 정작 물 위에 떠 있는 섬이 지닌 속성들과 그리 다르지 않다. 지난 100여 년을 돌이켜 볼 때 물 위의 섬들은 그리 많이 생기지 않은 듯하나 서식지 섬들은 엄청나게 늘어났다.
우리 인간의 활동 영역이 넓어짐에 따라 자연 생태계는 점점 더 잘게쪼개지며 많은 개체군들이 아예 절멸extinct하거나 절멸할 가능성이농후한 병 bottleneck 상태에 빠졌다. - P56

비록 나는 이 글에서 진화는 결코 진보적 변화가 아니라고 역설하고 있지만 사실 진화 생물학계는 이 문제를 두고 두 진영으로 갈려있다. 다윈도 이 문제에 있어서는 어느 정도 양 진영을 왔다 갔다 한것처럼 보인다. "인간은 만물의 척도"라고 말했던 로마의 철학자 프로타고라스 Protagoras처럼 지금도 일부 진화 생물학자들은 지성이나감정 이입 등 우리 스스로 가장 특별하게 생각하는 인간의 속성들은 진보적 진화의 결과일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나의 스승인 하버드대학교의 에드워드 윌슨 교수는 생물의 진화를 전체적으로 바라봤을 때 엄연히 진보하는 방향으로 진화해 왔다고 믿는 쪽이다. 하지만그의 제자인 나는 적어도 이 문제에 관해서는 굴드 진영에 가깝다. 그의 저서 『풀하우스 Full House 에서 굴드는 진화란 단순한 진보가 아니라 다양성이 증가하는 방향으로 변화해온 과정이라고 정의한다.
이전 글을 읽은 독자라면 내가 얼마나 굴드를 불편해 하는지 잘알 것이다. 하지만 그의 모든 게 싫은 것은 아니다. 그는 분명 진화 이론의 발달에 여러모로 공헌했다. 진화와 진보의 관계에 대한 그의 명쾌한 설명도 그중 하나이다. - P71

그런데 정말 척추동물의 눈은 완벽한 구조를 지니고 있는가? 공교롭게도 척추도 없는 무척추동물 중에도 우리와 상당히 비슷한 구조의 눈을 가진 동물들이 있다. 바로 오징어, 문어, 낙지 등의 연체동물이다. 오징어의 눈과 우리 인간의 눈을 위아래로 잘라 단면을 비교해보면 놀라울 정도로 흡사하다. 서로 전혀 다른 진화의 역사를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신기할 정도로 비슷한 구조와 기능을 갖게 된 이른바 ‘수렴 진화convergent evolution‘의 좋은 예이다. 그런데 오징어의 눈과 우리 눈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금세 한 가지 뚜렷하게 다른점을 발견할 수 있다. 하나는 시신경과 실핏줄이 망막의 뒷면에 붙어있는 데 비해 다른 하나는 망막에 구멍을 뚫고 시신경과 실핏줄을 동공 안으로 끌어들여 망막의 내벽에 붙여 놓았다. 도대체 왜 멀쩡한 스크린에 구멍을 뚫고 깨끗한 상이 맺혀야 하는 스크린의 앞면에 그것들을 덕지덕지 붙여놓은 것일까? 과연 오징어와 인간 중 누가 그런 어리석은 구조를 가진 눈의 소유자일까? 답은 뜻밖에도 우리 인간이 그런 비합리적인 눈을 가졌다는 것이다.
- P85

왜 인간의 눈은 이렇게도 불합리하게 만들어졌는가? 자연 선택은왜 좀 더 완벽한 설계를 만들어 내지 못했는가? 문제는 바로 인류가거쳐 온 진화의 역사에 있다. 뒤집힌 망막의 설계는 인간만의 문제가아니라 거의 모든 척추동물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문제이다. 척추동물의 눈은 작은 조상 동물들의 투명한 피부 밑에 있던 빛에 민감한 세포들로부터 발달했다. 당연히 이 세포들에 혈관과 신경들이 연결되어 있었고, 그 상태에서는 다분히 합리적인 설계였을 것이다. 하지만 수억 년이 흐른 오늘에도 빛은 어쩔 수 없이 혈관과 신경들을 지나쳐야만 시각 세포에 도달할 수 있다.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설계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바꿀 수 있는 게아니다. 진화에는 이처럼 역사적 제약historical constraint, 또는 계통학적 제약phylogenetic constraint 이 있다. - P87

생물 환경biotic environment에 대비하여 물리적 환경은 다른말로 비생물 환경abiotic environment이라고도 한다. 비생물환경과 생물환경 간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하나 있다. 생물 환경은 그것이 둘러싸고 있는 생물과 함께 변화한다. 즉 공진화coevolution한다는 점에서 어떻게 보면 물리적 환경보다 더 중요할 수 있다. 공진화의 가장 잘 알려진 예는 단연 현화식물과 그들에게 꽃가루받이pollination 서비스를 제공하고 그 대가로 꿀을 얻는 벌, 나비, 박쥐, 새 등의 동물이 맺고 있는 관계이다. 꽃가루받이는 서로 이득을 주고받는 상리 공생 mutualism 형태의 공진화지만 서로 쫓고 쫓기는 관계인 포식predation과 기생parasitism의 상대들도 끊임없이밀고 당기며 함께 진화한다. 날로 속도가 느는 치타의 추격을 따돌리려 영양도 점점 빨라지고, 늘 새로운 무기를 개발하여 공격하는 기생생물에 대항하여 기주 생물host 도 새로운 유전자 조합으로 면역력을 키운다. 이 관계는 마치 옛날 소련과 미국이 벌였던 군비 경쟁을 방불케 한다. 소련이 새롭고 더 강력한 미사일을 개발하면 미국은 그걸공중에서 격침시킬 수 있는 요격 미사일을 개발하곤 했다. 진화 생물학자들은 이와 흡사하게 자연계에서 벌어지는 군비 경쟁을 진화적군비 경쟁evolutionary arms race이라고 부른다. - P98

자연 생태계의 얽히고 설킨 관계망 속에서 무수히 많은 다른 생물들과 공진화하며 어느 한 방향으로 일관성 있는 적응 체계를 만들어낸다는 것은 확률적으로 불가능하다. 19세기 영국의 작가 피터 래섬Peter Mere Latham 은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완전한 계획을 세우려는 것은 쇠퇴의 징조이다. 흥미로운 발견이나 발전이 이루어지는 동안에는 완벽한 연구실을 설계할 시간이 없다."자연의 강은 완벽의 정상을 향해 거슬러 오르지 않는다. 그저 구불구불 흘러갈 뿐이다. - P99

그런데 나는 우리나라의 상황이 단순히 항생제 남용 때문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남용과 오용 모두가 문제인 것이다. 예전에 미국에살 때 열이 너무 심하게 오르거나 콧물이나 재채기가 멈추질 않아 병원을 찾으면 우선 그런 증상을 유발하는 장본인이 세균인지 바이러스인지를 가리기 위해 병원균 배양 시험부터 했던 걸로 기억한다. 그래서 세균성으로 밝혀지면 항생제를 처방하지만 만일 바이러스가 원인으로 판정되면 집에서 편히 쉬며 물을 많이 마셔 몸 안에 들어온 바이러스를 열심히 씻어 내라며 약도 주지 않고 돌려보낸다. 바이러스는 완벽한 의미의 생명체가 아니기 때문에 항생제로는 구제할수 없다.  - P113

생물의 형질에는 생존 survival을 돕는 게 있는가 하면, 생존에는 그리 도움이 되지 않지만 번식 reproduction에는 결정적으로 유리한 것들이 있다. 
••••••
건강과 장수는 번식을 돕는 한도 내에서만 진화적 의미를 지닌다.
이처럼 생물의 형질은 대부분 생존과 번식 중 어느 하나에만 관련하여 진화하는 게 보통이지만 어떤 형질은 그를 소유하고 있는 개체로 하여금 생존과 번식 모두에서 탁월하게 만들어 주기도 한다. 공작과 꿩의 수컷은 명백하게 생존에는 불리하더라도 번식에 유리하기때문에 그처럼 화려한 깃털을 갖도록 진화했지만, 수사슴의 뿔은 생존과 번식 모두에 도움이 되는 것처럼 보인다. 크고 강력한 뿔은 다른 수컷들과 경쟁하거나 심지어는 포식 동물의 공격을 받을 때 자신을 성공적으로 보호해 줄 수 있다는 점에서 분명히 생존에 도움을 주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가 하면 특별히 가지도 무성하고 우람한 뿔을 가진 수컷이 암컷에게도 매력적으로 보인다면 짝짓기 과정에서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므로 번식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 P124

바로 이 배우자를 두고 경쟁하는 후자의 경우 그 대상이자 목표는거의 언제나 암컷이며 경쟁의 주체는 주로 수컷이라는 점을 일깨워준 사람이 바로 다윈이다. 더구나 그 경쟁의 결과가 궁극적으로는 암컷의 선택에 의해 이뤄진다는 것이다. 선택권의 소재는 결국 투자의크기로 결정된다. 이른바 ‘개미 투자자‘라고 불리는 소액 주주가 대주주를 제치고 선택권을 행사할 수는 없는 게 아닌가? 그래서 소액주주들이 힘을 모아 주주 총회에서 대주주의 전횡을 막아 보려 애쓰고 있는 것이다.
유성 생식을 하는 모든 생물에서 정자, 즉 수컷의 배우자가 암컷의 배우자, 즉 난자보다 큰 경우는 절대로 없다. 만일 그런 경우가 발견된다면 최초의 발견으로 평가받을 일이 아니라 그 생물에서는 암수의 역할이 바뀌었거나 아예 암수를 새롭게 정립해야 할 것이다. 암수의 정의에 따르면, 수컷은 자신의 유전자를 정자라는 운반체에 실어 암컷에게 전달하는 쪽이고 암컷은 그 유전자를 받아 자신의 유전자와 섞어 새로운 생명체로 키워 내는 초기 발생의 임무를 띠고있는 존재이다. 이 세상 모든 생물에서 전혀 예외 없이 정자는 난자에 비해 엄청나게 작다.
- P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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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길을 걷고 있으면 아무 생각도 할 필요가 없다. 느끼기만하면 된다. 요샌 한창 땅기운이 왕성할 때다. 걷잡을 수 없는 힘으로 산천초목을 통해 지상으로 분출하고 있다. 흙길을 걷고 있으면 나무만큼은 아니라도 풀만큼도 못하더라도 그 생명력의 미소한 부분이나마 나에게도 미치고 있다는 걸 느끼게 된다. 그 힘이 비록 나에게 이르러 잎이나 꽃이 되어 피어나지는 못한다 할지라도 이 풍진 세상을 참고 견딜 수 있는 힘이 된다면 어찌 미소하다고만 할 수 있겠는가. 땅기운과의 이런 편안한 친화감에 힘입어 나도 모르게 기도를 하게 된다. 이렇게 당당하게 걸을 수 있는 기쁨을 누리는 동안만 살게 하소서, 라고. - P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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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에는 ‘넓이가 있고, ‘깊이‘가 있고, ‘힘‘이 있다. ‘지혜의 힘‘이란 결단력을 말한다.
우리가 인생에서 부딪히는 문제들은 퀴즈나 테스트처럼 정해진 답이 있는 것이 아니다. 인생의 문제는 상당한 시간을 들이지않으면 진정한 해결이 불가능할 뿐더러 문제 그 자체의 진의조차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긴 시간을 들여서 모든 것을 알아내기 전에는 아무 행동도 취하지 않겠다는 태도로는 이 세상을살아갈 수 없다.
현대 의학의 수준으로는 몇 퍼센트밖에 해명되어 있지 않은 어떤 난치병일지라도 의사는 눈앞에서 고통받는 환자에게 무엇인가 처방을 내려야만 하는 것처럼, 쉽게 해결할 수 없는 어떤 문제에 대해서도 어느 순간에는 결단을 내리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한 단계 뛰어넘어 앞으로 나아가는 비약을 해야 한다.
불연속적인 것을 연속적인 것으로 유도하는 두뇌의 관용성은 비약하는 것을 비약이 아닌 것같이 생각할 수 있게 한다. 따라서 사람은 비약할 수 있다. 이것은 컴퓨터나 로봇에는 없는 인간만이 가진 능력이다.
결단할 수 있는 힘, 어느 순간에 ‘얏!‘ 하고 비약할 수 있는힘, 이러한 지혜의 힘은 인생과는 직접 관계가 없어 보이는 공부하는 가운데서 키워지는 것이다.
지혜에는 내가 말한 것 이외에도 몇 가지 측면이 더 있을 것이다. 어쨌든 "왜 배워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서 나는 "지혜를 닦기 위해서이다."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 - P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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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9년은 인류 역사상 참으로 대단한 해였다. 흔히 교향곡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하이든 Franz Joseph Haydn이 사망하고 멘델스존 Felix Mendelssohn Bartholdy이 탄생했다. 『우게쓰 이야기」로 잘 알려진 일본의 설화 작가 우에다 아키나리가 우리 곁을 떠나고 「검은고양이 The black cat」의 작가 에드거 앨런 포 Edgar Allan Poe와 내가 은밀하게 좋아하는 러시아의 소설가 니콜라이 고골Nikolai Vasilievich Gogol이 태어난 해이기도 하다. 여기까지만 들으면 1809년은 여느 해 못지않게 훌륭한 해이기는 하나 ‘참으로 대단한 해이어야 할 까닭이 무엇일까 의아해 할 분들도 계실 것이다.l99o9op99 I o
내가 1809년을 특별히 대단한 해로 생각하는 이유는 다른 데 있다. 인류 역사의 방향을 송두리째 뒤바꿔 놓은 대표적인 두 인물, 에이브러햄 링컨 Abraham Lincoln 찰스 다윈이 태어난 해이기 때문이다. 음악과 문학이 인간의 삶에서 과학과 정치보다 덜 중요하다는 뜻은결코 아니지만, 링컨과 다윈은 분야를 초월하여 인류사에 가장 거대한 족적을 남긴 위인들이라는 점에 토를 달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공교롭게도 이 두 사람은 1809년 2월 12일 같은 날에 태어났다.
- P17

다윈이 아니었더라면 우리 인간을 포함한 자연의 모든 생물들이 태초 생명의 늪에서 우연히 발생한 지극히 단순한 하나의 생명체로부터 분화되어 나온 진화의 산물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을 수도 있다. 인간이라는 동물도 결국 이 세상 모든 다른 생물들과 근본적으로 한 가족이라는 사실처럼 우리를 철저하게 겸허하게 만드는 개념이 또 있을까? 다윈은 우리에게 생명권의 평등을 일깨워 준 사상가이다.  - P18

훌륭한 학술 이론이 갖춰야 할 속성으로 흔히 단순성 simplicity과 응용성robustness, 그리고 직관적 아름다움 intuitive beauty을 든다. 이론 자체가 너무 복잡하면 우선 활용도가 떨어지고 의미 전달에도 어려움이 많다. 수식으로 표현되는 수학적 이론들이 지니기 쉬운 결점이 바로 이 부분이다. ‘다윈의 해‘를 기념하기 위해 미국 하버드 대학교의 진화 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 교수가 편집하고 서문을 쓴 책이 2006년 노턴 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 윌슨 교수는 그 책의 제목을 그처럼 단순한 시작으로부터 From So Simple a Beginning』라고 붙였다. 다윈이 『종의 기원』에서 한 다음과 같은 말에서 따온 것이다. "그처럼 단순한 시작으로부터 가장 아름답고 가장 화려한 수많은 모습의 생명들이 진화했고 지금도 진화하고 있다니." 사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처럼 단순한 시작으로부터 이렇게 엄청난 생명의 다양성이 진화한 과정을 설명하는 이론이 어쩌면 이렇게도 단순할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그래서 나는 이 장의 제목을 ‘진화론, 그 간결미 So Simple aBeginning, So Simple a Theory‘라고 붙였다. 다윈의 진화론이 갖고 있는 가장 큰 매력은 우선 간결함이다.
게다가 이처럼 간결한 이론이 설명하지 못할 현상이 거의 없다는것은 더욱 큰 놀라움이다.  - P21

이러한 변이들 중 유전하는 것만이 자연선택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 둘째 조건이다. 다세포 생물은 기능적으로 서로 다른 두 가지 종류의 세포들로 구성되어 있다. 하나는 몸의 구조를 이루는 체세포somatic cell이고 다른 하나는 번식을 담당하는 생식 세포reproductive cell이다. 한 생명체가 생애를 통해 아무리 많은 변화를 겪는다 해도 그것이 생식 세포 내의 변화가 아니면 다음 세대로 전해질 수 없다. 체세포의 변화는 당대에만 나타날 뿐 자손에는 전달되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장 바티스트 라마르크 Jean Baptiste Lamark의 ‘획득 형질의 유전‘ 개념의 맹점이다. 당신이 만일 금발의 딸을 원한다면 ‘금발 유전자‘를 지닌 북구의 여인과 결혼해야지 미용실에서 금색으로 머리를 염색한 한국 여성과 결혼할 일은 아니라는 말이다. - P27

진화학에도 대진화macro-evolution 와 소진화micro-evolution가 있다. 하나의 종이 오랜 세월 동안 많은 변화를 거쳐 새로운 종으로 분화하는 것이 대진화라면 시간에 따른 개체군의 유전자 빈도의변화, 즉 세대를 거듭하며 개체들의 형태, 생리, 행동 등에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소진화라고 한다. 세대가 아주 짧은 미생물의 경우에는우리가 실제로 종의 분화를 목격할 수 있지만 인간을 포함한 대부분의 다세포 생물의 대진화를 관찰하기에는 우리 자신의 수명이 턱없이 짧다.
사람들은 흔히 대진화를 진화의 전부로 착각한다. 그래서 진화가 멈췄다는 궤변에도 귀를 기울이게 되지만 소진화는 결코 멈출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 그리고 여러분이 글을 읽고 있는 동안에도 지구상 어딘가에서 새 생명이 탄생하고있다. 그 아기가 갖고 태어나는 유전체genome 때문에 우리 인류 전체의 유전자군gene pool의 구성은 미세하지만 분명히 변화했다. 이것이 진화의 현장이다. 진화의 필요충분조건 네 가지가 모두 일어나야하지만 그중 어느 하나라도 일어나지 않을 확률은 거의 없다. 진화는 결코 멈출 수 있는 게 아니다. - P30

 1858년 앨프리드러셀 윌리스 Alfred Russel Wallace와 함께 영국 린네 학회Linnean Society 에서 발표한 논문에서 다윈은 진화가 일어나기 위한 조건으로 다음의 네 가지를 들었다.

첫째, 한 종에 속하는 개체들은 각자 다른 형태, 생리, 행동 등을 보인다. 즉 자연계의 생물 개체들 간에 변이variation가 존재한다.
둘째, 일반적으로 자손은 부모를 닮는다. 즉 어떤 변이는 유전heredity한다.
셋째, 환경이 뒷받침할 수 있는 이상으로 많은 개체들이 태어나기 때문에 먹이 등 한정된 자원을 놓고 경쟁competition할 수밖에 없다.
넷째, 주어진 환경에 잘 적응하도록 도와주는 형질을 지닌 개체들이보다 많이 살아남아 더 많은 자손을 남긴다 [자연 선택natural selection]. - P26

 돌연변이는 DNA가 복제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오류로인해 유전자 자체가 변형되는 유전자 돌연변이 gene mutation 와 DNA의 실타래인 염색체 일부가 소실deletion 되거나 중복 복제 duplication 되거나 뒤집힘inversion 또는 서로 자리바꿈 translocation을 하는 바람에 벌어지는 비교적 큰 규모의 염색체 돌연변이 chromosome mutation 의 형태로 나타난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공정 중 품질 관리 면에서 단연 최고 점수를 차지하는 것이 바로 생물의 세포 분열 메커니즘이다. 태초부터 지금까지 그 수많은 생명체에서 쉬지 않고 일어났음에도 불량품을 만들어 낸 확률은 극히 낮다. 우리 몸에서 세포들이 분열할 때 품질 관리가 잘되지 않아 번번이 조금이라도 다른 모양을 한 세포들이 만들어진다면 아침에 일어나 거울을 마주하기가 겁날 것이다. 돌연변이는 그리 자주 일어나지도 않으며 일어나서 그리 좋을게 없는 현상이다. 아주 드물게나마 요행히 생존이나 번식에 유리한 돌연변이가 나타나 개체군 내에 어렵사리 자리를 잡는 것이다. 진화가 만일 바람직한 변이의 출현을 기다리며 돌연변이에만 목을 맸다면 지금과 같이 현란한 생물다양성은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다. - P38

생물 진화의 현장은 대체로 국지적인 개체군population이다. 그래서돌연변이보다는 오히려 다른 개체군으로부터 새로운 유전자 변이가유입되어 변화를 일으키는 빈도와 규모가 훨씬 클 것이다. - P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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