톰은 스물네 살이던 1905년에 텍사스 기마경찰대에 들어갔다. 19세기에 변경지대에서 인디언들과 싸우는 자원 민병대로 창설된이 기마경찰대는 나중에 국경 지역에서 멕시코인들과도 맞서 싸웠으며, 차츰 일종의 경찰력으로 발전했다. 인디언들과 멕시코인들은 총부터 먼저 쏘고 보는 잔인한 방식 때문에 기마경찰대를 오래전부터 증오했으나, 텍사스의 백인 주민들 사이에서 기마경찰대는 신화적인 존재였다. 린든 B. 존슨은 나중에 이런 말을 했다. "텍사스의 모든 소년들은 텍사스 기마경찰대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어른이된다. 나도 예외가 아니었다." - P202

화이트는 이른바 인디언 사업이라는 것이 치밀한 범죄임을 깨달았다. 사회의 다양한 부문들이 여기에 공범으로 참여하고 있었다. 사기꾼 후견인과 재산관리인은 대개 사업가, 목장주, 변호사, 정치가 등 백인 지도층 중에서 뽑힌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도둑질을 도와주고 은폐해준 치안관, 검사, 판사 등도 백인 지도층이기는 마찬가지였다(때로는 이들 자신이 후견인과 재산관리인 역할을 하기도 했다).
1924년에 인디언 권리연맹이 이른바 "부당이득과 착취의 흥청망청 잔치‘에 대한 조사를 실시했다. 그들은 오클라호마주의 부유한 인디언들이 어떻게 "과학적이고 가차 없는 방법으로 노골적으로 파렴치한 도둑질을 당하고 있는지 기록했다. 후견인이 "판사들이 선거에서 자신을 지지해준 충실한 친구들에게 보답으로 나눠주는 자리"라는 점도 밝혔다. 판사들은 "내게 표를 주면, 당신에게좋은 후견인 자리를 주겠다"고 말한다고 했다. 오세이지족 남성과 결혼한 어떤 백인 여성은 기자에게 어떻게 음모가 진행되는지 설명해주었다. "상인과 변호사 무리가 갑자기 나타나서 특정한 인디언을 먹잇감으로 점찍었다. 그들은 모든 공무원을 손에 쥐고 있었다. (…) 그들은 서로를 잘 이해하는 사이였으며, ‘당신이 이러이러한 것을 갖고, 나는 이것을 갖겠다‘며 냉혹한 대화를 나눴다. 그들은 유전에서 나오는 돈에 대한 권리와 대형 농장을 갖고 있는 인디언들을 골라서 점찍었다." - P218

화이트는 어니스트와 몰리의 결혼(애나가 살해당하기 4년 전)도 처음부터 음모의 일환이었는지, 아니면 헤일이 나중에 조카를 압박해서 아내를 배신하게 만든 것인지 결론을 내릴 수 없었다. 어느 쪽이든 상상조차 힘들 만큼 뻔뻔하고 사악한 음모였다. 어니스트는 몰리와 한 침대에서 잠을 자고, 몰리와 함께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 내내 그녀의 가족들을 해치는 음모를 꾸며야 했다. 셰익스피어가 쓴<율리우스 카이사르>의 한 구절이 생각난다.

그대의 괴물 같은 얼굴을 가려줄
어두운 동굴이 어디 있을까? 그런 것을 찾지 말라, 음모여.
미소와 상냥함 속에 그것을 숨기라. - P230

후버는 새로 시작된 수사를 수사국의 특별한 사례로 선전하고싶어 했다. 당시 그는 수사국의 구조개편을 계속 실시하던 중이었다. 번스를 비롯한 타락한 구식 형사들이 만들어놓은 더러운 이미지를 지우기 위해 후버는 비정할 정도로 효율을 중시하는 경영시스템을 옹호한 진보적인 사상가들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이런 시스템의 모델이 된 것은, 산업공학자인 프레더릭 윈슬로 테일러의 이론이었다. 그는 기업을 반드시 ‘과학적으로‘ 경영해야 한다면서, 노동자 각자가 처리하는 업무를 세심하게 분석하고 정량화해야 한다고주장했다. 진보주의자들은 이 방법을 정부에 적용함으로써, 타락한 보스들이 수사기관을 비롯한 정부기관에 자신의 후원자와 돈으로움직이는 사람들을 가득 채워넣는 낡은 전통에 종지부를 찍으려고했다. 새로 싹트고 있는 관료체제를 테크노크라트가 허버트 후버("위대한 엔지니어)의 방식으로 경영하는 것이 그들의 이상이었다. 후버는 제1차 세계대전 중에 인도적인 구호활동을 몹시 신속하게해내서 영웅이 된 인물이다.
역사가 리처드 지드 파워스는 J. 에드거 후버가 조직과 사회적 통제에 집착하는 자신의 생각과 비슷한 면을 진보주의에서 찾아냈다고 지적했다. 게다가 책상물림인 후버가 이 방법을 통해 대담한 용사, 현대적인 과학시대를 위해 앞장선 십자군 같은 이미지를 쌓을수도 있었다. 그가 총을 쏘지 않는다는 사실 또한 이런 이미지를 더욱 빛나게 해주었다. 기자들은 "낡은 탐정의 시대가 끝났다"면서 후버가 "가짜 콧수염으로 변장하고, 빛을 가릴 수 있는 램프를 들고다니는 과거 수사국 형사의 이미지를 지워버리고, 대신 체계적인 절차를 도입했다"고 지적했다. 한 기사에는 이런 구절이 있었다. "그는 골프를 친다. 구식 형사가 골프를 치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는가?""
하지만 개혁을 향한 진보주의의 열정 밑에는 추악함이 숨어 있는 경우가 많았다. 주로 중산층 출신의 백인 개신교도인 진보주의자들은 이민자와 흑인에 대해 깊은 편견을 갖고 있었으며, 자신들의 미덕과 권위를 워낙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에 민주적인 절차를 경멸했다. 후버의 어두운 충동을 거울처럼 비춰주는 진보주의의 일면이다. - P234

후버는 겹치는 부서들을 없애고 권위를 중앙에 집중시키는 등수사국의 급격한 구조조정을 추진했다. 그동안 화이트는 사건을 책임진 다른 특수요원들과 마찬가지로 현장에서 뛰는 부하들에 대해 과거보다 더 큰 지휘권을 허락받았으나, 그와 동시에 부하 요원들의모든 행동에 대해 더 많은 책임을 져야 했다. 그는 업무능력 평가서를 끊임없이 작성하고, ‘지식‘ ‘판단력‘ ‘외모‘ ‘서류작업‘ ‘충성심‘
등 다양한 항목에 대해 요원들의 점수를 0에서 100까지 매겨야 했다. 모든 항목의 점수를 더해서 평균을 낸 수치가 그 요원의 전체점수가 되었다. 화이트가 후버에게 가끔 부하 요원에게 100점을 주기도 한다고 말하자, 후버는 서신을 통해 날카로운 반응을 보였다. "유감스럽지만 나는 수사국 관할하에 있는 요원이 완벽하다거나 100점이라는 평가를 받을 자격이 있다고 믿을 수 없습니다." - P234

후버는 법무부에 들어오기 전에 의회도서관의 사무원이었다. 그의 동료는 이렇게 말했다. "그가 여기 남아 있었다면 틀림없이 도서관장이 됐을 것이다." 어쨌든 이 경력 덕분에 후버는 듀이 십진법을 이용해서 다량의 데이터를 분류하는 법을 훤히 알고 있었다. 그는 하위항목을 숫자로 구분하는 비슷한 분류법을 채택해서, 수사국의 서류와 자료 목록을 정리하게 했다(정치가들을 협박하는 데 사용할수 있는 정보가 포함된 후버의 ‘인물 파일‘은 비서의 사무실에 별도로 보관되었다). 요원들은 이제 사건보고서를 표준양식에 따라 종이 한 장 분량으로 정리해서 올려야 했다. 그 덕분에 서류의 양(능률을 통계적으로 측정하는 또 하나의 척도)이 줄었을 뿐만 아니라, 검사가 사건의 수사 지속 여부를 평가하는 데 걸리는 시간도 줄어들었다. - P237

후버 휘하에서 요원들은 대기업 직원들처럼 서로 호환이 가능한 톱니와 같았다. 보통 해당 지역 출신을 치안관으로 삼던 전통적인경찰력 운영방식과는 크게 달랐다. 이런 변화 덕분에 요원들은 담당지역에서 부패에 물들지 않고, 진정한 의미의 전국적인 경찰력이될 수 있었다. 그러나 지역적 차이를 무시한다는 점, 직원들이 어디에도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항상 떠돌아다녀야 하기 때문에 인간적인 측면을 잃어버린다는 점이 문제였다. 화이트는 오로지 수사국의 발전만을 생각하며"‘ 후버에게 쓴 편지에서, 한 지역과 그 주민들에 대해 잘 아는 요원이 더 효과적으로 활동할 수 있을 것이라고 썼다. 그는 오세이지 수사에서 텍사스 출신 목부로 신분을 위장한 자신의 부하가 이렇게 일선에서 뛰는 데는 이상적인 인물이지만, "만약 그를 시카고나 뉴욕이나 보스턴에 배치한다면 거의 쓸모없는 존재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래도 후버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의 말에 언제나 복종하는 부하들 중 한 명은 다음과 같은 메모를 작성했다. "나는 이 문제와 관련해서 화이트 요원의 말에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한 지역 주민들의 특징에만 친숙한 요원은 다른 방면의 일자리를 찾아보는 편이 나을 것이다."
뉴욕에 임시로 마련된 훈련소에서 요원들은 새로운 규정과 수사방법을 주입식으로 교육받았다(후버는 나중에 이 교육프로그램을 발전시켜, 버지니아주 콴티코에 온전한 아카데미를 세웠다). 요원들은 훈련을통해 지문감식이나 탄도학 등 후버가 ‘과학수사‘라고 찬사를 보낸방법에 대해 점점 더 많이 배울 수 있었다. 또한 오세이지 사건의 첫 수사에서처럼 수사가 중단되거나 지연되는 일을 피하기 위해 정식으로 증거를 수집하는 규칙도 배웠다. - P238

헤일은 자신의 권력을 더욱 단단히 다지기 위해 더욱더 많은 호원활동을 시작했다. 렌 요원은 보고서에서 헤일이 "자신의 이름을높이기 위해 여러 사람들에게 옷가지와 선물을 주고, 돈을 꿔주는등 모든 선수단을 동원하고 있다"고 썼다. 헤일은 심지어 "어린 소년들에게 망아지도 선물하고 있었다.
텍사스 출신 목부로 위장한 비밀요원 한 명이 서서히 헤일과 친해졌다. 그는 과거 카우보이 시절을 헤일과 함께 회상했고, 헤일이 자기 목장의 가축들을 검사할 때도 동행했다. 이 요원은 헤일이 수사관들을 조롱하고 있는 것 같다고 보고했다. 그가 요원에게 "내가 워낙 능수능란해서 어려운 지경에 빠질 수가 없어!"라고 자랑했다는 것이다.
화이트는 페어팩스의 거리에서 헤일을 보곤 했다. 나비넥타이를 매고 턱을 높이 치켜든 그의 모습은 화이트 형제들과 그의 아버지가 평생 추적해 잡아들이던 범죄자들의 화신 같았다. 그는 "세상이 전부 자기 것인 줄 아는 것 같았다.
유망한 단서들이 매번 막다른 길에서 끝나면서 압박이 가중되자 화이트는 가끔 라이플을 꺼내 들고 시골로 사라졌다. 거기서 오리나 하늘을 나는 새가 눈에 띄면, 그는 녀석을 겨냥해서 총을 쏘았다. 나중에는 공중에 연기가 자욱하고, 피가 땅에 흠뻑 밸 정도였다. - P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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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래그는 서랍 속에 접힌 채로 있다.
지금은 펼치지 않고도 떠올릴 수 있는 그 세계지도에서 세상의 모든 바다는 분명 이어져 있다. 이제 나는 그 사실이 다소 무섭다. 바다를 등지고 아무리 멀리 가도, 반드시 세상 어떤 바다와 다시 마주치게 될 테니까. 그 불편한 예감에 시달릴때마다 이상하게도 오래전 지하 소극장에서 본 오타쿠들이 떠오른다. 그 기모이한 오타쿠들의 열렬한 구호. 가치코이코죠. 진짜 사랑 고백. 좋아 좋아 정말 좋아 역시 좋아…… 그것도사랑이라면, 나는 어쩐지 그 근시의 사랑이 조금 그립다. - P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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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들은 왜 그들이 십대 후반에서 이십대 후반의 여성이어야 하는지, 열한 명 중에 아프리칸은 한 명뿐인데 아시안은 일곱 명이나 되는지를 문제삼았다. 하지만 르몽드에서 ‘세계의 문화적 헤게모니가 여성-아시안으로 이동했다는 증거‘라고 말했듯, 오히려 그 점이 높이 평가되기도 했다. 실제로 멤버들은 인종과 무관하게 모든 대륙에서 고르게 사랑받았고, 여성 팬들의 지지가 더 뜨거웠다. 진정성을 의심하던 사람들도 그들이 가사를 어떻게 쓰는지, 소셜미디어에서 어떻게 소통하는지, 수익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보며 하나둘 설득됐다. 그들은 아름다웠고, 유능했고, 심지어 옳았다. - P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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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모든 바다

당신은 ‘세상 모든 바다‘의 팬입니까.
아무에게나 물어보고 싶다. 하지만 내가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을 다른 사람에게 해도 될까. 질문하기 전에 내가 누구인지부터 밝히는 게 옳을지도 모른다. 나는 ‘하쿠‘라고 합니다. 그런 소개부터 한다면 어떨까. 내가 일본인인 것을 알면 사람들은 더 너그러워질 수도 있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많았다.
나는 그날 잠실에 모인 십삼만 명 중 한 명이었다.
이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내가 하쿠라는 것이 부분적으로는 거짓일 수 있다. 그러나 내가 다섯 달 전 여름에 잠실에 갔던 일은, 그곳에서 백영록과 만난 일은 어떻게 보아도 사실이다. 그러니 거기서부터 출발하는 게 좋겠다. - P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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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이지 공포시대의 공식적인 희생자 수가 부족원만 따져서 적어도 스물네 명까지 늘어났다. 다른 희생자들 중에는 보건 외에 수사를 도우려 했던 사람 두 명이 더 포함되어 있었다. 오세이지에서 농장을 경영하던 저명인사는 약에 취한 채 계단 아래로 내던져져 목숨을 잃었고, 또 한 사람은 이 사건에 대해 주정부 관리들에게 브리핑을 하러 가던 길에 오클라호마시티에서 총에 맞아 쓰러졌다. 전국적인 간행물인 <리터러리 다이제스트>는 ‘오세이지족의 ‘검은저주"라는 표현을 쓰면서, 이 부족 사람들이 "인적 드문 풀밭에서 총에 맞거나, 자동차 안에 앉아 있다가 쇠기둥에 찔리거나, 독에 중독되어 서서히 죽어가거나, 집에서 자다가 다이너마이트에 날아갔다"고 보도했다. 기사는 계속 이어졌다. "저주는 계속된다. 저주가 어디에서 끝날지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1인당 소득이 세계에서 제일 높은 사람들이 세계에서 가장 많이 살해당하고 있었다. 나중에 언론은 이 살인사건들에 대해 "금세기의 어느 살인사건 못지않게 어둡고 야비하다"면서 "미국 범죄 역사 중 가장 유혈이 낭자한 페이지"라고 표현했다.
이 사건을 해결하려는 모든 노력은 제대로 풀리지 않았다.  - P136

1925년 여름 어느 날, 수사국의 휴스턴 현장 사무소 책임자인 톰화이트 특수요원에게 워싱턴 본부에서 긴급 명령이 내려왔다. 신임수사국장인 J. 에드거 후버가 당장 그를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싶어 한다는 내용이었다. 화이트는 재빨리 짐을 꾸렸다. 후버는 직원들에게 검은 양복, 수수한 넥타이, 반짝반짝 광을 낸 검은 신발을착용하라고 요구했다. 요원들이 법률가나 전문 직업인의 분위기를풍기는 백인 미국인의 전형적인 모습이 되기를 바랐기 때문이었다. 그는 매일 요원들에게 ‘이러이러한 일을 하면 안 된다‘는 식의 지령을 새로이 내려 보내는 것 같았다. 화이트는 이런 분위기에 반항하려고 일부러 커다란 카우보이모자를 썼다. - P145

하딩의 후임인 캘빈 쿨리지는 1924년 여름 무렵 번스를 해임하고 할런 피스크 스톤을 신임 법무장관으로 임명했다. 미국이 점점 성장하면서 수많은 연방법이 만들어졌기 때문에 스톤은 전국적인경찰력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그의 뜻에 맞는 기관을 만들기 위해서는 기존의 수사국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완전히 탈바꿈시켜야 했다.
스톤은 신임 수사국장을 물색하는 동안 스물아홉 살의 수사국 부국장이던 J. 에드거 후버를 국장대리로 선택함으로써 법무부를 비판하던 많은 사람들에게 놀라움을 안겼다. 후버는 비록 티포트 돔과 관련해서 얼룩이 묻지는 않았지만, 그동안 멋대로 날뛴 수사국정보부, 즉 단순히 정치적 신념이 다르다는 이유로 사람들을 정탐한 부서의 책임자였다. 후버는 또한 수사 경험이 전혀 없었다. 총격전을 직접 경험한 적도 없고, 범인을 체포해본 적도 없었다. 이미 세상을 떠난 그의 조부와 아버지는 생전에 연방정부 공무원이었고, 아직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는 후버는 관료제의 피조물이었다. 그래서 그는 관료들 사이의 가십, 그들 사이에서 통하는 언어, 은연중에 이루어지는 거래, 피는 흐르지 않지만 지독한 영역싸움 등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자기만의 관료적인 제국을 건설하기 위해 수사국장의 자리를 탐낸 후버는 자신이 국내 인사들의 감시활동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스톤에게 숨긴 채 정보부를 해체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스톤이 요구하는 개혁조치들을 열심히 실행했다. 그것은 수사국을 현대적인 세력으로 재편하려는 그 자신의 욕망을 더욱 진전시키는 일이기도 했다. 후버는 스톤에게 보낸 메모에서, 자신이 인사자료들을 샅샅이 훑으며 해고해야 마땅한 무능력자와 부정한 요원들을 가려내기 시작했다고 알렸다. 후버는 또한 신입 요원들의 채용요건을 높여서 법률이나 회계에 대한 어느 정도의 지식을 요구하기로 했다고 스톤에게 말했다. "수사국의 직원들이 수사국의 사기를 높이고 장관님의 정책을 문자 그대로 엄밀히 시행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일 것입니다."
1924년 12월 스톤은 후버가 그토록 바라 마지않던 자리를 그에게 주었다. 후버는 수사국을 통일된 세력으로 급속히 재편했다. 거의 50년 동안 국장으로 재직하면서, 그는 이 세력을 휘둘러 범죄와 싸우는 한편, 기가 막힐 정도로 엄청난 권력남용도 저질렀다. - P150

후버는 그에게 이렇게 약속했다. "당신이 필요한 만큼 인력을 배정해주겠습니다. 후버는 대학 출신 풋내기 요원들의 한계를 알고있었으므로, 화이트의 동생인 박사를 포함한 소수의 카우보이들을 계속 요원 명부에 남겨두었다. 이 요원들은 아직 과학적인 수사방법을 배우는 중이고, 타자기로 보고서를 완성하는 방식에 적응 중이었다.‘ 하지만 화이트는 그들만이 이런 수사를 감당할 수 있다고보았다. 거친 시골마을에 침투해서 무법자들을 상대하고, 용의자들을 미행하고, 필요하면 며칠 동안 잠 한숨 자지 않고 버티고, 압박속에서도 정체를 들키지 않고, 여차하면 치명적인 무기도 다뤄야했기 때문이다. 화이트는 카우보이들로 팀을 짜기 시작했지만, 박사는 거기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화이트 형제는 기마경관 시절 이후로 같은 사건을 맡는 것을 피했다. 가족들을 위해 혹시라도 두 명이 동시에 목숨을 잃는 일만은 막고 싶어서였다. - P163

모리슨이 슬그머니 도망칠 우려가 있기는 했다. 그래서 버거 요원은 그를 풀어주기 전에 베르티용 측정법이라고 불리는 엄격한 절차를 그에게 적용했다. 1879년에 프랑스의 범죄학자 알퐁스 베르티용이 고안한 이 측정법은 상습적인 범죄자의 신원을 확인하기 위해 만들어진 최초의 과학적인 방법이었다. 버거 요원은 캘리퍼스(내부 지름이나 두께 등을 재는 기구옮긴이)를 비롯한 여러 특수 도구들로 모리슨의 신체에서 열한 가지 치수를 쟀다. 댈러스 경찰도 이 작업에 협조해주었다. 그가 측정한 치수 중에는 모리슨의 왼발 길이 머리의 폭과 길이, 오른쪽 귀의 지름 등이 포함되었다.
버거 요원은 모리슨에게 이렇게 신체를 측정하는 목적을 알려준 뒤, 머그샷 촬영도 의뢰했다. 머그샷 역시 베르티용이 고안한 것이었다. 1894년에 추문 전문기자인 이다 타르벨은 베르티용의 측정법을 거친 죄수는 모두 언제나 "쉽게 잡힐 것"이라고 썼다. "문신을 지우고 가슴을 압박하고, 머리를 염색하고, 이를 뽑고, 몸에 흉터를 만들고, 키를 숨겨도 소용이 없다." 하지만 베르티용 측정법은 이미 더 효율적인 신원확인 방법에 밀려나고 있었다. 과학수사의 세계에 혁명을 일으킨 이 새로운 방법은 바로 지문 감식이었다. 몇몇 사건에서 이제는 목격자가 없는 경우에도 용의자가 범행현장에 있었음을 증명할 수 있었다. 후버는 수사국장 대리가 된 뒤, 신원확인과를 신설했다. 그리고 전국에서 체포된 범죄자들의 지문을 이곳에 보관했다. 후버는 이런 과학적인 방법이 "공통의 위험 앞에서 문명의 수호자들"을 도울 것이라고 주장했다. - P173

톰은 범죄자들이 범죄를 저지르는 이유에 대해 자주 생각해보았다. 수감자들 중 일부는 철저하게 사악해서 마치 악마의 화신처럼보였다. 머리에 병이 들어서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죄수들은 절박한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폭력적이고 비열한 짓을 저지른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나중에죄를 뉘우치면서 구원을 얻고자 했다. 어떤 면에서 보면 이런 죄수들을 생각할 때 가장 무서웠다. 누구라도 악에 사로잡힐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였기 때문이다. 톰은 가족들과 함께 인근의 침례교회에 다녔는데, 목사는 모두가 죄인이라고 말했다. 법과 정의를 지키는 에밋조차 죄인이었다. 톰은 평생 이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노력했으나 끝내 풀지 못한 듯하다. - P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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