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 에이미.
수업에 들어오며 로버트는 오늘도 밝은 얼굴로 인사했었다. 쨍한 자줏빛 스웨터에 잿빛 머리카락이 눈에 띄었다. 자신에게 잘 어울리는 게 뭔지 아는 남자의 옷차림이었다. 나는 로버트가 평소 옷을 잘 갖춰 입는 게 좋았다. 은퇴 후에도 여전히 자신의 노동 앞에서 어떤 격식과 약속을 지키는 것 같아서였다. 그건 본인뿐 아니라 상대에 대한 예의이기도 했다. 그리고 나는 몇 년간 그런 존중에 좀 목말라 있었다. - P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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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빵도 맛있어. 몇 개 포장했으니까 이따 집에 가서 먹어.
기진이 집에서 미리 챙겨 나온 에코백을 툭툭 건드렸다. 선주가 한번 더 ‘이럴 때 딸이 있어 참 좋다‘고 했다. 선주는 자신이 딸에게 짐이 되지 않을까 늘 걱정하면서도 가끔은 딸에게 의존하고 싶어했다. 왜냐하면 ‘방법‘이 없으니까. 주위에 물어볼 곳도, 수단도, 자원도, 지식도 없으니까. 당장 상대와 말만 통해도 혼자 뭔가 해볼 텐데 영어도 국어도 선주에게는 모두 어려웠다. 게다가 점점 몇몇 단어가 머릿속에서 증발되고 있었다. 선주는 자신이 어떻게든 혼자 풀어보려 끙끙댄 문제를 기진이 휴대전화를 이용해 너무 가뿐하게 해결하는 걸보고 종종 어리둥절했다. 그럴 땐 딸이 자랑스러우면서도 그정도 문제 하나 풀지 못한 스스로가 못마땅해졌다. - P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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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드라마 보면 난 늘 이상하고 궁금한 게 있었어요.
희주가 맥주잔을 든 채 잠시 회상에 젖은 표정을 지었다.
-뭐요?
-파자마-파자마 잠옷?
-응. 드라마 속 주인공이 집에서 늘 그렇게 입고 있는 게.
그런 옷이 따로 있는 게 생경하고 이상했어요.
-어? 나도 그런 거 있는데.
-뭐요?
-간식.
-아.....
-영화나 드라마에서 내 또래 아이가 혼자 쓰는 방이랑 그안으로 엄마가 쟁반에 받쳐 갖다주던 간식. 나는 그게 늘 신기하고 낯설었었어요.
-맞아. 근데 걔는 꼭 엄마한테 나가라고 소리치고.
-맞아. 진짜 그랬어.
두 사람은 맞장구를 치며 함께 웃었다. 과한 자기 연민이나엄살이 없는, 깨끗함이 묻어나는 웃음이었다. 그리하여 어느봄, 회식 멤버가 다 떠난 새벽, 해장국집에서 단둘이 3차를 하고 긴 가로수 아래로 도시의 2급수가 흐르는 천변을 걷다. 두사람은 꽃이 흐드러지게 핀 벚나무 아래서 고전적으로 입맞췄다. 오랫동안 유지해온 ‘적절함‘의 거리를 둘이 힘을 합쳐 구겨버렸다. 스무 살의 다급함이나 허둥거림 없이, 과도한 기대나 실망도 없이 서로의 느낌에 집중하면서. 그러고 한참 뒤 입술을 떼었을 때, 기태가 갑자기 벚나무를 발로 차기 시작했다.
-기태씨, 왜 그래요?
희주의 다급한 목소리에 기태는 문득 발길질을 멈췄다. 그러곤 술에 취해 발그레해진 얼굴로 희주를 빤히 바라보다 누가 들어도 너무 순진하고 무모해 낯뜨거워지는 말을 했다.
-자기 꽃비 맞으라고요. - P151

사다리 마지막 칸에 기적적으로 오른 자신과 달리 ‘요즘‘ 입사한 친구들은 어느 정도 한국의 정교한 계급 필터를 거친 이들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대개 자신이 쥐고 태어난 걸 과소평가하는 것 같았다. 계급성은 지우고 나이라는 약자성만 내세운 채 신문에서 읽은 말로 앞 세대에게 자주 적의를 보이는 것 같았다. 물론 뭘 굳이 읽지 않고도 언제든 쉽게 품을 수 있는 게 적의이기도 했다. 기태는 대학 졸업 후 어렵게 은행에 들어온 뒤 세상에는 돈 많은사람이 참 많다는 걸 실감하곤 했다. 그리고 그중에는 기태의 ‘고객‘뿐 아니라 동기나 후배도 여럿 있었다.
-당신들이 첫 세대가 아니라 ‘부모보다 못살거나 비슷하게 사는 사람들‘은 늘 있었어요. 지금도 있고.
후배들 앞에서 언제나 ‘좋은 선배‘이길 자처하는 박과장이과장되게 웃었다.
-에이, 비율이 다르잖아, 비율이 비용도 다르고.
-그러니까 ‘우리‘ 말고, ‘세대‘ 말고, 내 얘길 하자고, 내얘기를. - P159

그날 집으로 돌아가며 기태는 ‘아! 앞으로 나는 부하 직원들에게 존중받는 은따, 대우받는 꼰대가 되겠구나‘ 자책했다. 그렇지만 그날 기태를 괴롭힌 건 자신이 실언했단 사실이 아니었다. 기태가 진정 후회하는 건 그 순간 자신이 굳이 ‘진심‘을말했다는 거였다. 그날 기태는 이혼한 이래 처음으로 희주가그리웠다. SNS에 가입해 처음으로 희주의 계정을 찾아본 날도 그날이었다. 그저 열심히 살아왔을 뿐인데 존재 자체로 누군가에게 부정과 경멸의 대상이 된 것 같았던 날. 이제 자신이 빼도 박도 못하는 기성세대가 됐음을 자명하게 받아들여야 했던 밤 말이다. - P160

사실 정신을 단속하는 일이라면 조금 자신 있었다. 나이들어도 세상 소식에 귀를 열어두고,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으면주변에 크게 폐 끼치는 존재는 되지 않으리라 과신했다. 실제로 기태의 젊은 시절 꿈은 훌륭한 어른은 못 돼도 산뜻한 중년은 되는 거였다. 청결한 옷을 입고, 타인과 적정 거리를 유지하며, 젊은 세대를 지지하고, 주변에 해가 되지 않는 존재가되는 것. 긴 시간이 지나 기태가 진심으로 놀란 건 자신이 어쩌면 그렇게 자신할 수 있었나 하는 생각에서였다. 기태는 자신을 둘러싼 좌표는 그대로되 ‘나‘라는 점만 이동하리라 착각했었다. 점과 더불어 좌표도 같이 움직이는데다 다른 그래프와 충돌하며 곡선과 직선이 찌그러지고 휠 거라 예상 못한 까닭이었다. 물론 나이들어 좋은 점도 있었다. 젊은 시절 여기저기 빵가루처럼 지저분하게 흘리고 다닌 말과 마음들, 담백하지 못한 처신들. 쉽게 흥분하거나 화를 낸 뒤 엄습한 부끄러움같은 건 이제 많이 줄었으니까. 경험이 많다는 건 ‘경험을 해석했던 경험‘이 많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그런데 냄새는 헛구역질이나 트림은 ‘해석‘이나 ‘의지‘로 잘 막아지지가 않았다. 문제는 이제 겨우 시작이라는 거였다. 기태는 자신이 늙음에대해 아는 것이 하나도 없음을, 안다 믿었던 것조차 실은 아는게 아니었음을 새삼 실감했다. 그러니 앞으로 남은 삶은 또 얼마나 혹독할까? - P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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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과 정책은 점점 더 불가분의 관계가 되었다. 중국 외교관들은 타국 정부의 행태를 비난할 때 으레 <중국 인민의 감정을 상하게 한다>라고 말했으며그런 식의 표현은 갈수록 잦아졌다. 해당 표현이 사용된 사례를 일일이 세어본 팡커청이라는 기자는 1949년부터 1978년까지 세 번에 불과했던 <중국의감정이 상한 사례가 1980년대와 1990년대에 들어 평균 1년에 다섯 번으로늘어났음을 알아냈다. - P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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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가 이탈리아를 달리던 그날 그는 고국에서의 생활을 돌아보며 사색적인 분위기에 젖었다. 「사람들은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것이 과연 유익할지 종종의문을 제기합니다. 당연히 유익합니다. 발언의 자유를 누릴 수도 있고 정치가를 직접 선택할 수 있는 자유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일당제(一黨制)도 마찬가지로 이점이 있지 않나요?」 그는 차창 밖 고속도로를 가리키며 지역민의 반대에 맞서느라 그 고속도로를 완공하기까지 10년이 걸렸다고 설명했다. 「중국이었다면 6개월 만에 끝났을 겁니다! 경제가 계속해서 성장하려면 일당제가 유일한 답이에요.」 가이드 리가 얼마나 강하게 이를 지지했는지, 만약 베이징에서 그런 식의 이야기를 일상적으로 듣지 않았더라면 그를 정부 대변인으로착각할 정도였다. 「외국 분석가들은 중국 경제가 그토록 빠르게 성장한 이유를 절대로 이해할 수 없을 겁니다. 그래요, 중국은 일당제 국가입니다. 그렇지만 그 안의 공무원들은 엘리트들 가운데 선별되고 13억 인구 중에서 선별된 엘리트라면 슈퍼 엘리트라고 불려도 될 겁니다.」 - P159

중국의 발흥에 아무런 반감도 없다고 말하는 미국정치가들을 믿느냐고 묻자 그는 고개를 저었다. 「전혀요. 우리가 발전하도록놔두긴 할겁니다. 다만 발전의 수위를 제한하려 들겠죠. 내가 아는 사람들 모두 그렇게 생각합니다.」 최대한 예의 바르게 말하고자 한 그의 설명에 따르면, 미국인들은 세계 무대에서 약자의 입장이 되는 데 적응할 필요가 있을 터였다.
한때 중국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미국은 최고의 자리에 있는 것에 매우 익숙하지만 조만간 2등으로 밀려날 겁니다. 지금 당장 그렇게 된다는 건 아니예요. 20년이나 30년 정도 걸리겠죠. 어쨌든 궁극적으로는 중국의 GDP가 미국의 GDP를 앞지르게 될 겁니다. 나는 그가 여행을 많이 했음에도 중국과 서양에는 절대로 극복될 수 없는 철학적 차이가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두 가지 서로 다른 사고방식>이 존재한다고 여긴다는 인상을 받았다. 「우리는 그들의 도구를 이용하고 그들의 방식을 배울 겁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중국은 언제나중국의 방식을 유지할 거예요.」그는 서구 사회와 나란히 나아가는 중국의 미래에 대해 그다지 긍정적이지 않았다. 특히 어떤 점에서는 그에게 반박하기가 어려웠다. 예컨대 나에게는 중국이 보다 부유해지면서 자연스럽게 서구화와 민주화가 진행될 거라는 믿음이 없었다. 톈안먼 광장의 비극적인 잠재력에 이끌렸을 때와 같은 확신이 더이상은 없었다. 현재 내가 살고 있는 중국은 수시로 고무적인 느낌을 주는가하면 절망적인 느낌을 주기도 했다. 그곳에는 자수성가한 사람들과 비밀 감옥이 동시에 존재했으며, 세상에 대한 강렬한 호기심과 어쩌면 그 세상에서 중국이 차지했어야 할 자리에 대한 방어적인 자긍심이 동시에 존재했다.  - P161

2004년 중앙 선전부에는 굳이 투표까지 하지 않고도 대중의 동향을 조사하고 연구할 수 있는 여론 부서가 신설되었다. 사상화 작업 영역은 시들기는커녕 오히려 규모가 더욱 커지고 복잡해져서, 일부의 추정에 의하면 중국 시민 1백명당 선전관 한 명꼴로 확대되었다. 천둥처럼 요란한 확성기와 등사된 팸플릿의 시대는 막을 내렸다. 여느 경쟁 기업들과 마찬가지로 중앙 선전부도 이제조회 수와 주요 시간대 시청률로 효율성을 판단했다. 장이머우 같은 유명한영화 제작자들의 도움을 받아 고예산 광고를 제작하고, 한 선전 간부의 말처럼 <사람들의 귀로, 머릿속으로 들어가서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상대적으로 가볍고 감정적인 메시지로 대중을 열광케 했다. 공산당 내 학자들의 지적대로<사람들의 생각을 지배 이데올로기와 일치시켜서 그들의 행동을 표준화하는문제>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중앙 선전부의 최대 관심사는 무엇보다 언론이었다. 톈안먼 사건 후에 장쩌민 주석은 <유산 계급이 진보주의를 요구하는 전장에 중국의 신문이나 라디오, 텔레비전을 방치하는 일은 두 번 다시 없을 것이다>라고 선언했다. 그의 선언에 따르면 중국은 그가 <이른바 글라스노스트>‘라고 지칭한 어떤 것에 절대로 굴복하지 않을 터였다. 언론인들은 여전히 <한목소리로> 노래해야 했고,
중앙 선전부는 뉴스에 등장하거나 등장하지 말아야 할 방대하고 계속 진화하는 단어 목록을 발표해서 언론이 한목소리를 내도록 도왔다. 어떤 규칙들은 절대로 변하지 않았다. 예컨대 타이완의 법률을 언급할 때는 무조건 <이른바 법률>이라고 해야 했으며, 중국의 정치 제도가 지극히 독특함에도 불구하고 기자들은 중국 정부를 다른 나라와 비교할 때 절대로 <국제 관행에 따르면>이라는 표현을 사용할 수 없었다. 경제 문제와 관련해서도 공휴일에는 나쁜 소식을 자세히 다룰 수 없었고, 이를테면 중국 은행의 취약성이나 부자들의 정치적 영향력처럼 정부가 해결할 수 없다>고 분류한 문제들을 심층 보도할 수도 없었다. 가장 엄격하게 금지된 주제는 톈안먼 그 자체였다. 중국 교과서는1989년의 저항 운동이나 유혈 사태에 대해 어떠한 언급도 하지 않았다. 정부는 그해에 벌어진 사건들을 논의할 때 소수의 <검은손>에 의해 조직화된 <혼란> 또는 <소요>라고 묘사했다. - P168

그녀가 당시를 회상하며 말했다. 「정말 터무니없었어요」 농부들은 일을 할이유가 없었다. 그들은 들판에서 때로는 2시간 내내 누워만 있으려고 했어요.
내가 이제 일을 시작해야 하지 않나요?>라고 물으면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수 있지?>라고 되물었죠」 그녀가 계속 말했다. 「10년이 지나서야 나는 모든게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그녀 세대의 많은 이들에게 시골살이는 일종의 계시였다. 마찬가지로 농촌에 내려가야 했던 또 다른 젊은 신봉자 우쓰가 내게 주철 공장에서 맞은 첫날에 대해 들려주었다. 「우리는 항상 <프롤레타리아가 사심 없는 계급이다>라고 믿도록 배웠고 그렇게 철석같이 믿었습니다. 그가 주철 공장에 도착하고2~3시간이 지났을 무렵 한 동료 노동자가 그에게 다가와서 말했다. 「그쯤이면 충분해. 이제 그만해도 돼」우쓰는 당혹스러웠다. 「달리 할 일도 없는데 계속 일할게요.」그러자 그 동료가 귓속말로 조언했다. 「그러면 다른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을 거야」우쓰가 하루를 꽉 채워 성실하게 일할 경우 모두의 할당량이 늘어날 터였다. 그는 연장을 내려놓았다. 곧 국영 공장에서 살아남는 다른 요령도 배웠다. 창고에서 부품을 슬쩍하는 방법과 암시장에 내다 팔 램프를 만드는 방법 등이었다. 후에 저명한 작가이자 편집자가 된 우쓰에게 그 일은 두 개의 평행한 현실 세계를 보여 주었다. 그가 내게 말했다. 「하나의 이야기는 대중이 알고 있는것이고 다른 하나는 실제 현실입니다.」 - P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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