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르트헤이트 Apartheid 를 만든 천재들은 자신들보다 절대 다수의 사람들이 서로에게등을 돌리게끔 만들었다. 말 그대로, 따로 떨어뜨려apart 미워하게 hate 만든 것이다. 사람들을 여러 그룹으로 나눈 다음 서로 미워하게 만들면, 그들 모두를 아주 손쉽게 통제할 수 있다.
그 당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흑인 인구는 백인에 비해 거의 다섯 배나 많았지만, 줄1루Zulu, 코사지hosa, 초와나rswana, 소토Sotho, 벤다venda, 은데벨레 Ndebele, 총가 Tsange,
페디Peil 등 각기 다른 언어를 쓰는 여러 부족으로 나뉘어 있었다. 아파르트헤이트가 시행되기 오래전부터 이 부족 파벌들은 서로 충돌하고 싸워왔다. 백인들은 그 적대감을 이용해서 이 부족들을 분리하고 정복했다. 모든 비非백인들은 체계적으로 다양한 그룹 및 하위 그룹으로 분리되었다. 그리고 이들 그룹끼리 계속해서 서로 불화하게끔, 각 그루뼐로 행사할 수 있는 권리도 다르게 주어졌다. - P12

에피소드 1

뛰어!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의 추격 신에서는 누군가 달리는 차에서 뛰어내리거나 던져지는 장면이 심심찮게 등장한다. 맨바닥에 부딪힌 그사람은 어느 정도 데굴데굴 구르다가 딱 멈춰서 벌떡 일어나 먼지를 툭툭 덜어 낸다. 마치 별일 아니라는 듯이. 그런 장면을 볼 때마다 난생각한다. ‘저거 완전 뻥이야, 달리는 차에서 내던져지면 저것보다 훨씬 더 아프다고."
- P15

매년 열리는 메리베일 운동회의 챔피언은 나였고, 엄마들중 챔피언은 바로 우리 엄마였다. 비결이 뭐냐고? 엄마는 늘 내 엉덩이를 걷어차려고 날 쫓아다녔고, 나는 걷어차이지 않기 위해 늘 도망 다녔으니까. 그 누구도 나와 엄마보다 빨리 달리지 못했다. 엄마는 ‘이리와서 좀 맞자‘는 식으로 매질하는 타입이 아니었다. 그보단, 무료 배송으로 매질을 서비스하는 쪽이랄까. 또 물건을 집어던지는 데도 능숙했다. 무엇이든 엄마 옆에 있던 게 내 눈앞으로 날아오곤 했다. 그게 깨질 수 있는 물건이면 잡아서 고이 내려놔야 했다. 만약에 깨지기라도하면 그 역시 내 잘못이 되어 버리고 그럼 볼기짝이 훨씬 더 얼얼해질테니까. 엄마가 꽃병을 던지면, 나는 그걸 잡아서, 내려놓고, 다시 도망갔다. 그 찰나의 순간에 나는 생각해야 했다. 이거 중요한 물건인가?
그래. 깨질 수 있는 건가? 그래. 그럼 잡고, 내려놓고, 다시 도망가자!!
- P24

다만 지금 확실히 기억나는 것. 앞으로도 절대 잊지 않을 것은, 그 뒤에 이어진 폭력 사태였다. 가끔 당시 민주주의가 아파르트헤이트에승리했다며 이를 ‘무혈 혁명‘이라 부르는 사람들이 보인다. 하지만 그건 백인들에게만 해당되는 말이었다. 흑인들의 피는 거리에 흘러 넘했다.
아파르트헤이트가 붕괴됐으니 우리는 이제 주도권이 흑인들에게 넘어 오리란 걸 알았다. 문제는, ‘어느 쪽 흑인이냐‘ 였다. 잉카타 자유당Inkatha Freedom Party측과 아프리카 민족회의Anc: African National Congress 측이 서로 권력을 다투면서 폭력 사태가 빈발했다. 이 둘 사이의 정치적 역학 관계는 상당히 복잡했지만, 줄루와 코사의 대리전으로 이해하는 편이 가장 쉽다. 잉카타는 대부분 줄루족으로, 매우 호전적이며 국수주의적이었다. 한편 ANC는 여러 다른 부족들의 연합체 성격을 띠고있었으나 그 당시엔 주로 코사족이 리더를 맡고 있었다. 이 둘은 평화롭게 힘을 뭉치는 대신 서로에게 등을 돌리고 믿을 수 없을 만큼 야만적인 행위를 저질렀다. 곳곳에서 폭동이 일었다. 수천 명의 사람들이 살해됐다. - P26

언어에는 정체성과 문화뿐 아니라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에 대한 인식도 담겨있다. 같은 언어를 쓴다는 건 ‘우리는 똑같다‘는 의미를 전한다. 언어에 장벽이 있다면
‘우리는 다르다‘는 의미다. 아파르트헤이트의 설계자들은 이 점을 잘 알았다. 흑인들을분리시키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그들은 우리들을 물리적으로만이 아니라 언어적으로도 나눠 놓았다. 반투 학교에서는 아이들에게 오직 그들의 언어로만 가르쳤다. 줄루족 아이들은 줄루어로 배웠다. 츠와나 아이들은 츠와나어로 배웠다. 이 때문에 우리는 정부가 쳐 놓은 덫에 걸려 우리들끼리 싸웠다. 우리들은 서로 다르다고 믿으면서.
언어의 위대한 점은, 그 반대로 사람들에게 ‘우리는 똑같다‘고 설득시키는 데도 쉽게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 P78

사촌들이라면 충분히 벌을 받고도 남을 짓을 해도 나는 경고만 받고 풀려났다. 심지어 나는 내 사촌들 누구보다도 더 못된 아이였다. 개들은 감히 날 따라올 수 없었다.
뭔가가 깨지거나 할머니의 쿠키가 없어졌다면, 그 범인은 나였다. 나는 사고뭉치였다.
오직 내 엄마만이 내가 진정 두려워하는 유일한 권력이었다. 엄마는 매를 아끼면 아이를 망치는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모두 말했다. "아냐, 저 애는 달라." 그리고 늘 나만은 넘어가 주었다. 이렇게 자라다 보니 나는 이런 모든 혜택을 안겨 주는 시스템에 백인들이 얼마나 쉽게 익숙해지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한 짓 때문에 사촌들이 대신 매 맞는 걸 알았지만, 나는 할머니의 생각을 바꿀 마음이 전혀 없었다. 그건 곧 나도 매를 맞게 된다는 건데, 대체 왜 그래야 하겠는가? 그럼 내 기분이 좀 나아질까? 매를 맞는데 기분이 나아질 리 없었다. 내게는 선택지가 있었다. 집안에 인종적 정의를 실현하느냐, 아니면 할머니의 쿠키를 마음껏 즐기느냐. 물론 나는 쿠키를 골랐다.
- P83

미션 스쿨과 반투 학교로 대변되는 남아공의 교육은, 우리를 압제하던 두 백인 그룹, 영국인들과 아프리카너들의 차이점을 극명히 보여 준다. 영국식 인종 차별과 아프리카너식 인종 차별의 차이점은, 적어도 영국인들은 원주민들에게 뭔가 갈망할 대상을제공했다는 것이다. 만약 똑바른 영어를 쓰고 제대로 차려 입을 수 있다면, 스스로를 영국식으로 교화시킬 수 있다면, 언젠가는 사회에서 환영받는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갈망.
그러나 아프리카너들은 그런 기능성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영국식 인종 차별이 "만약사람처럼 걷고 사람처럼 말하는 원숭이가 있다면, 그건 행여라도 사람일지 몰라" 라면,
아프리카너식 인종 차별은 "대체 왜 원숭이에게 책을 준단 말이야?"라는 식이었던 것이다.
- P97

엄마가 이런 얘기들을 해 준 덕에 나는 지금까지 살아온 과정을결코 당연하게 여기지 않았지만, 그건 자기 연민에서 비롯된 게 아니었다. "과거로부터 배우고 과거보다 더 나아져야 해." 엄마는 말했다.
"하지만 과거를 슬퍼하지는 마라. 인생은 고통으로 가득해, 고통이 너를 단련하게 만들되, 마음에 담아 두지 마. 비통해하지 마라." 그리고엄마는 그러지 않았다. 어린 시절의 박탈감, 부모로부터의 배신감, 그무엇에 대해서도 절대 불평하는 법이 없었다.
엄마는 과거를 흘려보냈을 뿐 아니라 반복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아들의 어린 시절이 자신의 것과 닮아서는 안 됐다.  - P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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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매일 묘지에 간다. 나는 Claus라는 이름이 새겨진 십자가를 바라보며 Lucas라는 이름이 새겨진 다른 십자가로 대체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나는 또한 우리 네 사람이 곧 다시 만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머니만 돌아가시면, 나는 더 이상 살아야 할 이유가 없다.
기차. 그래, 그건 좋은 생각이다.

- P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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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어버리게, 인생은 그런 거야. 모든 게 시간이 지나면 지워지게마련이지. 기억은 희미해지고, 고통은 줄어들고, 나는 사람들이 어떤새나 꽃을 기억하듯이, 내 아내를 기억하고 있지. 그녀는 인생의 기적이었어. 그녀가 사는 세상은 모든 게 가볍고, 쉽고, 아름다웠지. 처음에는 내가 그녀 때문에 이곳에 오곤 했는데, 이제는 주디트, 살아 있는 여인 때문에 이곳에 오네. 자네가 보기엔 우습겠지, 루카스, 하지만 난 주디트를 사랑해, 자기 자식도 아니면서 아이들에게 쏟는 그녀의 사랑, 은혜, 힘을 사랑하네."
- P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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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찰대가 멀어졌다. 우리가 말했다.
"가세요. 아빠. 다음번 순찰은 이십 분 후에 있어요."
아빠는 옆구리에 판자 두 개를 끼고 앞으로 나아가서 판자 하나를 바리케이드에 기대놓고 기어올라간다.
우리는 큰 나무 뒤에 배를 깔고 엎드려서 손으로 귀를 막고 입을벌린다.
폭발음이 들린다.
우리는 미리 준비했던 다른 판자 두 개와 보물이 든 마대를 들고 철조망까지 달린다.
아빠는 두 번째 철조망 직전에 쓰러져 있다.
그렇다. 국경을 넘어가는 방법이 있기는 하다. 누군가를 앞서 가게하는 것이다.
마대를 쥐고, 앞서 간 발자국을 따라간 다음, 아빠의 축 늘어진 몸뚱이를 밟고, 우리 가운데 하나만 국경을 넘어갔다.
남은 하나는 할머니 집으로 돌아왔다.
- P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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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뿐이 아니다. 기술혁신은 대부분의 경우 노동을 단순하게(또는쉽게 만드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빵을 만들려는 사람들이 이스트를 환영했던 이유도 노동의 수고를 확 줄여주었기 때문이다. 언뜻 제빵기술자에게도 좋은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 수 있지만, 긴 안목에서 보면 사실은 노동자의 목을 죄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것도 역시 노동력의 교환가치(임금)를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노동이 단순해지면 기술은 필요 없어진다. 그러면 기술습득 비용이 굳는 만큼 임금도 낮아지는 것이다.
또 하나, 노동이 단순해짐으로써 노동자에게는 크나큰 영향을 미친다. 단순한 노동은 ‘누구나 가능한 일로 전락해 얼마든지 대체할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 부분을 마르크스는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노동자는 기계의 부속물로 전락하고, 부속물로서의 그에게는 오직 가장 단순하고 가장 단조로우며 가장 손쉽게 획득할 수 있는 기술만이 요구된다." (「공산당 선언」) - P67

일(노동력)을 값싸게 만들기 위해 음식 (상품) 값을 내린다는 것이 마르크스가 밝혀낸 자본주의의 구조다.
농산물 수입도 음식 값을 깎아내리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다. 시의성 있는 예로는 TPP(환태평양 경제동반자협정)를 들 수 있다. TPP에참가하면 농산물 가격이 지금보다 싸진다. 쌀과 소고기의 관세가 철폐되면 소고기덮밥 가격은 200엔 아래로 떨어진다는 등의 이야기가있지만, 이런 이야기는 요즘 들어 처음 거론된 내용이 아니다. 마르크스는 당시의 자본가 (경영자)가 농산물 수입 자유화에 관해 어떤 식으로 바라봤는지 속내를 소개한 바 있다.
곡물 및 모든 식료품의 가격이 싸야 산업은 이익을 얻는다. 왜냐하면 가격을 끌어올리는 요소가 무엇이건 간에 가격이 비싸지면 그로 인해 틀림없이 노동력도 비싸지기 때문이다. (중략) 식료품 가격은 반드시 노동의 가격에 영향을 미친다. 생활필수품의 가격이 싸지면 노동의 가격은 계속 떨어질 것이다." (『자본론』 1권 4편 10장)소비자의 눈높이에서 생각해도 상품이 싸면 쌀수록 고마운 일이다. 물론 상품을 파는 사람 입장에서도 싸게 팔아야 잘 팔린다고 생각하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그 상황이 돌고돌아 노동자의 목을 죈다. 마르크스는 그 점을 가르쳐준다. - P69

여기서 간단히 금융을 통해 돈이 어떻게 증식되는지를 살펴보자.
A라는 사람이 은행에 100만 엔을 맡겼다(빌려줬다고 하자. 그 100만 엔은 원래는 A의 것이지만 은행은 A가 맡긴(A에게 빌린) 100 만엔을 성실하고 정직하게 금고에 보관하는 데가 아니다. 예컨대 그 중80만 엔을 B라는 공장에 유자를 한다.
A는 100만 엔을 자산으로 보유한 상태고, 사도 현금 80만 엔을손에 넣었다. 원래 100만 엔이었던 A의 돈이 은행의 융자(B사 입장에서 보면 빌린 돈)를 통해 180만 엔으로 불어났다. 이것을 금융용어로
‘신용참조‘라 한다. 신용, 즉 빌린 돈을 통해 돈을 참조해내는 기능은 은행만이 가진 특수 기능이다. - P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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