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리사를 생각하면 한번도 본 적 없는 LA의 한 빙상장이 상상된다. 낙원하숙을 떠나 유학을 간 열여덟의리사가 비행기에서 내린 지 48시간 만에 스케이트 부츠를 신고 묵묵히 얼음을 지치는 장면이 무릎을 굽히고 주먹을 쥔 채 빙상장 얼음 끝을 쏘아보는 리사에게는 당연히 말도, 웃음도 없다. 그렇다고 음울함이 드리워지지도 않았는데 그런 건 리사의 영향권 밖에 있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자주 침울해지기는 했지만 리사의 우울에는 뭐랄까, 위축된 서글픔 같은 게 없었다. 내면의 커튼을 열어젖히면 흐느껴 울고 있는 여린 영혼이 아니라 히치콕의 영화 「사이코」에서처럼 무법자가 달려들 듯한 공격적인 우울이랄까. - P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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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로마는 두 천재 건축가 베르니니와 보로미니가 있었다. 두 사람은 평생 서로를 경쟁자이자 영감의 대상으로 삼아 걸작을 만들어냈다. 두 사람의 눈부신 실력을 바탕으로 18세기에 등장한 천정화와 계단, 분수대는 로마 바로크의 장관이다. - P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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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원서동

처음에 배운 건 수리의 종류에 관한 용어들이었다. 중수와 중창과 재건의 차이 같은 것. 면접을 끝내고 받아 온『고건축용어사전에서 가장 먼저 찾아본 말들이었다. 면접은 친구 은혜가 소개해준 자리였다. 건축사사무소인데문화재 공사 백서 기록담당자를 채용하고 싶어한다고. - P11

돌아보면 항상 어떤 장소를 지워버림으로써 삶을 견뎌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잊어야겠다 싶은 장소들은 아예발길을 끊어서 최대한 망각할 수 있게 노력해왔지만 이일을 맡으면 그곳에 대해 생각하고 더 알게 될 것이었다. 거기에는 일년 남짓의 내 임시 일자리가 있었고 600년 전에 건축된 고궁이 있었고 잊지 않으면 살 수가 없겠구나싶어 망각을 결심한 낙원하숙이 있었다. - P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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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그래, 바로 그거지. 청춘은 가 버려야만 해, 암 그렇지. 그러나 청춘이란 어떤 의미로는 짐승 같은 것이라고도 볼 수있어. 아니, 그건 딱히 짐승이라기보다는 길거리에서 파는 쪼끄만 인형과도 같은 거야. 양철과 스프링 장치로 만들어지고 바깥에 태엽 감는 손잡이가 있어서 태엽을 드르륵드르륵 감았다 놓으면 걸어가는 그런 인형, 일직선으로 걸어가다가 주변의 것들에 꽝꽝 부딪히지만, 그건 어쩔 수가 없는 일이지. 청춘이라는 건 그런 쪼끄만 기계 중의 하나와 같은 거야. - P270

여러분, 이게 바로 앞으로 벌어질 일이야. 내 이야기의 막바지에 다가왔으니까. 여러분은 이 어린 동무 알렉스와 같이 고통을 느끼면서 여기저기를 다 다녔고, 하나님이 만든 세상에서 가장 더러운 놈들이 여러분의 동무 알렉스에게 한 모든 일을 보았어. 그게 다 내가 어리기 때문이었지. 그러나 이 이야기를 끝내는 지금, 난 더 이상 어리지 않아. 알렉스는 어른이 되었단 말이야, 그렇고말고.
그리고 내가 지금 가는 곳은, 여러분, 여러분은 갈 수 없는나 혼자만의 길이야. 내일도 향기로운 꽃이 피겠고, 구린내 나는 세상이 돌아가겠고, 별과 달이 저 하늘에 떠 있을 거고, 여러분의 오랜 동무 알렉스는 홀로 짝을 찾고 있을 거야. 엄청 구리고 더러운 세상이야, 여러분. 자, 이제 여러분의 동무로부터 작별 인사를. 그리고 이 이야기에 나오는 다른 놈들에게는 커다란 야유를 엿이나 먹으라 그래. 그러나 여러분은 가끔씩 과거의 알렉스를 기억하라고. 아멘, 염병할.

서섹스 에칭엄에서,
1961년 8월 - P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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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크 미술이 과하다 싶을 정도로 웅장하고 화려한 장식으로 무장한 것은 시대적인 상황 때문이다. 종교개혁과 로마의 약탈로 큰 타격을 입은 가톨릭 교회는 교회의 권위를 회복하기 위해 트리엔트 공의회를 연다. 카를로 보로메오추기경, 교황 식스토 5세의 노력으로 로마 가톨릭은 다시 예전의 권위를 회복한다. 반종교개혁을 위해 미술과 학문을 통제하는 상황에서도 과학과 진리는거부할 수 없는 흐름이었다. - P89

로마의 뒷골목을 그린 화가라고요?

바로 카라바조입니다. 카라바조는 어둠의 화가로 불립니다. 그의 그림 속에 로마의 어두운 뒷골목 사람들이 자주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카라바조는 로마의 깊은 그림자로부터 영감을 얻어 미술을 바라보는 전통적인 시선을 완전히 뒤집었습니다.

뒷골목을 그려 유명해졌다니 흥미롭네요.

먼저 그의 생애를 잠시 짚어볼까요? 카라바조의 원래 이름은 미켈란젤로메리시입니다.

그 유명한 미켈란젤로요?

르네상스 시대의 미켈란젤로와는 이름만 같을 뿐 전혀 다른 사람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고향 이름을 빌려와 그를 카라바조Caravaggio라고 불렀습니다. 카라바조는 밀라노 바로 옆에 있는 작은 도시입니다. - P96

무엇보다도 카라바조는 공간을 어둡게 하면서도 강한 빛을 집어넣어 이야기를 이어지게 합니다. 연극의 조명처럼 빛을 활용해서 시선을 집중시키죠. 이탈리아어로 어둠은 테네브라Tenebra입니다. 카라바조가 보여주는 명암의 극적인 대조효과를 테네브리즘Tenebrism이라고 부릅니다.
카라바조는 테네브리즘의 창시자인 겁니다.
그림 속 빛이 마태오를 비추면서 성스러운 느낌이 들어요.
테네브리즘은 신성한 분위기뿐만 아니라 무겁거나 폭력적인 주제와 어우러질 때도 매력을 발휘합니다. - P114

아무래도 그리는 데 공을 들여서일까요?

맞습니다. 건축적 회화라고 불리는 프레스코 벽화는 이젤화보다 규모가훨씬 크고 다루는 주제도 광범위합니다. 그래서 프레스코 벽화를 기준으로 화가의 역량을 판가름했던 겁니다. 안니발레 카라치는 방금 본 그림처럼 프레스코 벽화를 그려 명성을 얻었던 반면, 카라바조는 주로 이젤화를그렸습니다.

카라바조가 그린 콘타렐리 예배당 그림은 벽화가 아니었나요?

콘타렐리 예배당 그림은 캔버스에 그려 벽에 붙여서 정통 벽화로 볼 수 없습니다. 카라치의 작품처럼 프레스코 기법으로 거대한 건축 공간에 여러이야기를 펼쳐 놓는 그림이 진정한 벽화입니다.
카라바조가 강렬한 회화 세계를 보여주었음에도 주로 이젤화를 그려 사람들은 그의 영향력을 한정된 범위에서만 인정했습니다. 반면 벽화를 그했던 안니발레 카라치는 미켈란젤로나 라파엘로와 비교되는 전설적인 화가로 높이 평가했습니다. - P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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