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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과학은 없다 - 탈식민주의 과학기술학의 도전
워릭 앤더슨 지음, 이종식 편역 / 이음 / 2025년 11월
평점 :
워릭 앤더슨의 『서양과학은 없다』는 제목만 보면 도발적이지만, 실제로는 훨씬 더 깊고 섬세한 문제의식을 담고 있다. 이 책은 “과학은 보편적이다”라는 서구 근대의 신화를 비판하면서, 우리가 당연하게 여긴 ‘과학’이라는 개념 자체가 특정한 역사·권력·제국주의적 맥락에서 만들어진 것임을 밝힌다.
앤더슨은 탈식민주의 과학기술학(STS)을 기반으로, 서구 과학이 단순히 전 세계에 ‘전파’된 것이 아니라 식민 권력 관계 속에서 재조합되고 변화하며 만들어진 혼종적(hybrid) 지식임을 강조한다. 즉, 서양과학이 세계로 퍼져나가면서도 원래의 의미를 그대로 유지한 것이 아니라, 현지의 지식·문화·권력구조와 상호작용하며 변형되었다는 것이다.
이 책의 흥미로운 점은 ‘비서구=전통, 서구=과학’이라는 이분법을 완전히 해체한다는 데 있다. 앤더슨은 과학이 특정한 문명이나 민족의 고유한 산물이 아니라, 만나고 충돌하고 협상하며 생성된 역사적 과정의 산물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책을 읽다 보면 ‘진정한 과학’이 무엇인지 묻기보다, ‘우리가 과학이라고 부르는 것이 어떤 경로를 통해 정당성을 획득했는가’라는 더 근본적인 질문을 만나게 된다.
번역 또한 어려운 개념을 최대한 분명하게 전달하려는 노력이 느껴져, 탈식민주의나 STS를 처음 접하는 독자에게도 크게 장벽이 되지 않는다. 다만 사유의 깊이가 있는 만큼, 한 문장 한 문장을 천천히 음미하며 읽게 되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