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 세상과 사랑에 빠지기 열다
헤르만 헤세 지음, 박종대 옮김 / 열림원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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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 나와 비슷한 결을 가진 사람을 만나면 반갑고 소중하게 느껴진다. 결이 다른 사람과 어우러져야 할 때 유독 낯선 긴장과 피로감에 힘들어해서인지 평온함을 지킬 수 있고, 존중받는 느낌을 주는 결이 비슷한 사람이 내겐 귀하고 감사하다. 책도 마찬가지다. 성장과 발전을 위해서는 다양한 책들을 읽어야 하겠지만, 그보다는 곁을 내주는, 내 삶의 격을 인정해 주는, 결이 같은 작가의 작품들을 자주 찾게 되고 의지하게 된다. 나에게 그런 작가가 바로 헤르만 헤세다.


헤르만 헤세는 다양한 소설과 에세이, 그리고 시와 편지 등을 통해 '불안과 실존'에 대한 고민과 감정들을 꾸밈없이 담담하게 풀어내었는데, 이 책<미친 세상과 사랑에 빠지기>에는 그중에서 특히 매혹적인 사유의 흔적들을 모아 엮어 놓았다. <싯다르타><데미안>< 유리알 유희>같은 세계적으로 사랑받은 작품들 속 문장들을 다시 새겨볼 수 있어 좋고, 삶의 무심한 구경꾼으로서 현란함 없이 적어낸 시나 내밀한 이야기가 담긴 편지 등을 볼 수 있는 것도 책이 가진 특별함이다.



아무것도 바라는 것 없이 바라볼 때만,

그 바라봄이 그저 순수한 관조일 때만

사물의 영혼과 아름다움이 우리에게 문을 열어 준다.

<미친 세상과 사랑에 빠지기> p 045



헤세의 글이 마음에 닿는 이유는 모든 것을 통달하여 가르침을 내려주는 현자라서가 아니다. 그는 남들과 달라도, 불안해도 괜찮으니 '나의 방식과 태도가 옳을까?'라는 의심 대신 '있는 그대로의 나'를 선택하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헤세는 인생에서 수많은 고통과 좌절을 겪으며 바깥세상에서가 아닌 내면에서 존재와 삶의 본질을 찾아내었고, 이렇게 생겨먹은 나를 절대 피할 수 없음을 깨달았으며, 온 세상이 나를 반대하더라도 나만큼은 나와 삶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풍요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통찰을 얻었다. 이 세상의 어떤 것도 추하거나 나쁜 것이 없고, 그저 모든 것이 거룩하고 존귀하다는 진리는 내가 가진 허물이 더 이상은 허물이 아니고, 내 본질은 파괴될 수 없기에 나를 바꾸려는 시도가 무의미하고 불필요하다는 것을 일깨운다.


삶에 정해진 의미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인간이기에 의미 없이 살아갈 수는 없다. 날마다 고통을 건네는 미친 세상과 사랑에 빠져 살아가려면 세상이 정해놓은 의미들에는 단호히 마음을 두지 말고, 내가 선택한 의미와 법칙을 흔들림 없이 지키고 따르려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나는 개선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 나는 나로 살기 위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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