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쿠타가와 류노스케×청춘 청춘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지음, 최고은 옮김 / 북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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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쇼몽>이란 작품은 들어본 적 있지만, 작가는 이 책을 통해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는 일본이 나은 대가 나쓰메 소세키가 인정한 천재 작가였으나 정작 자신은 스스로를 신뢰하지 못했고 만족하지 못했다. 그는 일찍 요절한 큰 누나와 미쳐버린 어머니를 보면서 자랐고, 자신도 언젠가는 그렇게 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불안을 느끼며 살다가 35세라는 젊은 나이에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책 속 열 두 편의 작품에는 작가의 인간적 고뇌와 생에 대한 불안이 곳곳에 녹아 있어 그가 느꼈던 괴로움에 공감할 수 있고, 안타까운 그의 결말을 예감할 수 있다.


이 책에 수록된 작품들이 나에게는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대체적으로 익숙하지 않은 내용이었고, 전반적으로 어둡고 혼란스러워 진실이 잘 드러나 보이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낯선 느낌이 신선하게 다가왔고, 그의 이해하기 어려운 세계속에 나와 결이 같은 부분도 분명하게 존재했다. 그리고 너무나 솔직했던 고백들이 용기있게 느껴지기도 했다.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해 살아낸 사람만이 쓸 수 있는 글처럼 보였다. 결국 자기 성찰로 그치지 못하고 자살을 선택했지만 말이다.


가장 흥미로웠던 단편은 <갓파>. 정신병원에 수감된 환자가 갓파의 세계에 다녀온 이야기를 풀어낸 작품이다. 갓파는 물에 사는 일본 요괴를 뜻한다. 갓파의 세계는 인간 세상과 많은 부분이 다르다. 갓파는 인간이 진지하게 여기는 걸 우스워하고, 우스워하는 걸 진지하게 여긴다. 아이를 낳는것도 인간과는 달리, 아이 스스로에게 선택권을 준다. 태어나기 전에 뱃속 아기에게 태어날 지 말 지를 묻는다. 그러면 아이는 선택한다.태어나고 싶지 않다고 말하면 산모는 분만하지 않는다. 갓파에게 인간의 가족제도는 서로를 괴롭히는 어리석은 관계로 치부된다. 그들은 누구의 편을 들기 전에 자기 편부터 든다. 자신이 행복한 게 최우선인 것이다.


주인공은 갓파의 세상에서 끊임없이 동분서주하고, 서로를 착취하며 살아가는 인간 사회에 대한 환멸을 느끼지만 결국 다시 인간사회로 돌아온다. 그러나 낯선 세상을 경험한 자는 이단자로 찍히고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다행히 갓파들이 주인공을 찾아와 새로운 연대를 맺는 희망적인 내용으로 끝맺는다. 갓파들의 세상은 작가가 바라는 이상향인 듯 하다. 삶에 집착하지 않고 왕성하게 자신의 만족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삶. 작가는 갓파들처럼 살 수 없는 자신의 처지에 비관하면서 죽음의 예감하며 글을 써내려가면서도 한줄기 희망은 붙들고 있는 듯 보였다.



"나를 불행하게 할 것을 나는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톱니바퀴>P243



저자는 인생을 지옥보다 더 지옥같다고 느꼈고, 자신이 죄를 지어서 지옥에 떨어진 것 같다고 믿었다. 삶이 얼마나 힘들었으면 이런 생각을 줄곧 했을까. 그의 고뇌가 너무도 처절하다. 나 역시 이상과 현실 사이의 간극에서 많은 부정적인 감정들을 느끼고 살아간다. 그렇지만 삶을 선택의 영역에 두고 싶지는 않다. 불안하든 그렇지 않든 주어진 삶은 살아내야 한다. 또한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불안은 숙명이기에 희미한 미래를 받아들여야 한다. 작가의 말처럼 인생은 보들레르의 시 한 줄만도 못하더라도 처음부터 끝까지 불합리하더라도 지금을 만끽하면서 가볍게 살아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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