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자이 오사무×청춘 청춘
다자이 오사무 지음, 최고은 옮김 / 북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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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인간실격>을 읽고나서 은근한 불쾌감을 느꼈었다. 작가의 괴로움이 나에게는 부잣집 도련님의 투정처럼 여겨졌기 때문이다. 한참 뒤에 다시 책을 읽었을 때에는 그의 방탕한 인생 이면에 감춰진 불안과 허무가 보였다. 자기자신을 연민하면서도 비하하며 조롱하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그렇다면 나는 그를 좀 더 이해하게 된건가. 분명 아닐 것이다. 이 책<다자이 오사무X 청춘>을 읽으면서 다시한번 깨달았다. 인간은 서로를 모른다.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가기 때문에 상대의 고통과 슬픔을 짐작할 수 없다. 다만, 다름을 인정하고, '모른다'는 태도로 바라볼 수는 있을 것이다. 

책은 다자이 오사무의 작품중에서 청춘을 테마로 한 12편을 모아 엮은 단편집이다. 그의 다른 작품에서 잘 드러났듯, 이 책에서도 자신의 파란만장한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묘사하고, 특유의 익살과 섬세한 감수성을 순간순간 드러낸다. 실제로 그는 부유한 명문가에서 태어났지만 한때 좌익 활동을 했고, 예술과 생활 사이에서 고뇌했으며, 복잡한 이성관계와 여러번의 자살시도 끝에 결국 짧은 생을 마감했다. 작품들의 내용과 작가의 생애가 많은 부분 겹치고 있어 작품속 주인공들의 내면세계가 다자이 오사무의 고백처럼 들려온다. 



이제 기대는 버렸어. 모두가 다 예전의 그이고, 그날그날의 바람결에 따라 색이 조금 달라 보일 뿐인 거지.

<그는 예전의 그가 아니다>P069



<그는 예전의 그가 아니다>는 집주인인 '나'와 세입자인 세이센과의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그린 작품이다. 세이센은 말그대로 한량이다. 입만 열면 거짓말을 하고 부인을 자주 바꾸고 그녀들에게 얹혀 살아간다. 게다가 집세를 한번도 안내면서 당당한 태도로 일관하는데 화자인 '나'는 그런 그의 허세에 어처구니 없어 하면서도 어쩌면 천재가 아닐까하며 매력을 느끼기도 한다. 그래서 언젠간 그가 예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변할거라 기대도 하지만 결국 그는 그일 뿐, 달라지지 않는다고 체념한다. 집주인 '나'는 세입자 세이센과 다를 바 없다. 사회에서 융화되지 못하고, 주변인들을 난감하게 하며 예술가라 칭하지만 자신이 혐오스럽고, 모순덩어리라고 느낀다. 그래서 그들은 현실을 외면한다. 



진지해요. 진지하니까. 진지하니까 괴로운 일도 생기는 거죠.

<어릿광대의 꽃>P137



다른 작품들의 '청춘'도 비슷한 결이다. <어린광대의 꽃>은 <인간실격>에서 카페 여직원과 약을 먹고 동반 자살을 기도했다가 여성만 죽고, 다자이 오사무만 살아남은 사건을 소재로 하였다. 죽어야지 하면서도 살고싶어 하는 자신의 위선을 고백하고, 살아남은 자신이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을 지 혼란스러워한다. <우바스테>는 바람난 아내를 미워하는 대신, 함께 동반자살을 시도하다가 실패하고, 각자의 삶을 살게되는 여정을 그린 이야기이다. 역시 다자이 자신의 첫 아내와의 사건을 소재로 하고 있다. 각각의 작품속에서 작가는 혼란속에서 비틀거리고 자신의 치졸함에 점점 더 자신감을 잃어간다.


다자이 오사무의 '청춘'은 어쩔 수 없다는 무력하고 나른한 체념의 시기였던 것 같다. 모두의 기대를 저버린 것 같아 죄책감이 들었고, 그럴수록 인생에 대한 기대가 사라져 사는 목적을 잃어갔던 게 아닐까 싶다. 내 삶 역시 모순과 후회로 가득하다. 죄책감과 수치심에 괴롭고 불안하다. 모든 일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좋을텐데 말처럼 쉽지가 않다. 하지만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알고 있다. 시간의 힘을 믿어야 한다는 것. 모든 일은 지나간다. 시간이 지나면서 생각의 방향이 달라진다. 중요하게 여겼던 가치가 별 거 아닌게 되기도 하고, 전혀 다른 시선으로 바라봐지기도 한다. 진지함도 좋지만 유쾌함도 나쁘지 않다는 걸 살아가면서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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