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도 없는 사이
시몬 드 보부아르 지음, 백수린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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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몬 드 보부아르'. 이 책을 읽게 된 유일한 이유다. 그녀의 철학에 대하여 아는 게 별로 없지만 여성으로서 살아가기 힘든 시대에 태어나 자신의 목소리를 내며 단단한 삶을 살아냈다는 점에서 그녀가 써내려간 이야기가 궁금했다. 특히 <둘도 없는 사이>는 보부아르가 세상을 떠난 후에 공개된 자전 소설이자 그녀의 여러 작품속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친구 '자자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라는 점에서 흥미로움을 더한다.



내가 이해하는 사랑은 하나밖에 없었다.

앙드레를 향해 내가 품고 있던 사랑.

<둘도 없는 사이> p046



책의 화자인 '실비'는 저자 보부아르 자신이다. 어린 시절 학교에서 만난 '앙드레'(실명 '자자')와 둘도 없는 사이로 지내다가 스물 한 살이라는 이른 나이에 갑작스럽게 친구를 잃게 된 이야기이다. 실비는 남들과는 다른, 아이같지 않은 앙드레를 동경했다. 앙드레에겐 열정적인 기질과 자신만의 입장이 있었다. 그녀와는 진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그러나 앙드레의 집안은 전통과 신앙을 중요시했고, 가족안에서 자신이라는 고유성을 버리고, 여자 아이의 의무를 따라야 했기에 앙드레는 자신의 신념을 저버리고 틀에 맞춰진 채 살아야만했다.



어쩌면 이해할 수 없다는 걸 받아들여야 하는지도 모르겠어.

모든 것을 이해하려는 건 교만이야.

<둘도 없는 사이>p079



"가끔은 뭘 하든 다 잘못일 때가 있어." 어떤 선택을 해도 후회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있다. 앙드레가 그랬다.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면 사랑하는 가족의실망하는 모습을 봐야 한다. 반대로 집안의 신념대로 살면, 사회가 원하는 삶을 살면 자유를 박탈당한다. 앙드레는 남들이 좋은 것이라고 믿는, 그러나 자신은 믿지 않는 가치들을 따르는 길을 선택한다. 그리고 남들이 믿는 정답을 받아들이려고 애썼다. 그것이 덜 죄책감을 느끼는 방법일거라 믿었던 것이다. 남들을 화나게 하지 않는 방법이지만, 자신은 나락으로 떨어지는 길이라는 것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자자는 자기 자신으로 있고자 했기 때문에

그리고 그러려는 게 나쁜 것이라고 설득당했기 때문에 죽었다.

<둘도 없는 사이> p191



실비 아니 시몬은 자자의 죽음이 "영성에 의한 범죄"라고 말한다. 실비와 자자가 살았던 세상의 여성들은 결혼 아니면 수녀원이 유일한 선택지였을 만큼 정숙한 여성,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절제하는 것을 커다란 가치로 여겼다. 자자는 그 상황에 적응하기 위해 죽을 정도로 자신을 억누르고 절망했기 때문에 죽음에 이르게 된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시몬은 정반대의 삶을 살았다. 자자를 만나면서부터, 자신의 집안이 기울게 되면서부터 '사회적 의무'를 다하는 삶 대신, 자신의 내적 목소리가 이끄는 대로 살았다. 그 시대에는 보기 힘든 미래지향적인 실존주의 여성으로 미지를 개척하고 앞을 향해 나아갔다.



책을 읽는 동안 나를 부정당하는 수많은 경험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지금의 생기잃은 모습, 짓눌린 모습이 어쩌면 '자자'와 같은 이유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엔 이 책이 '둘도 없는 사이'였던 친구를 그리워하는 이야기라고만 생각했는데 그게 전부는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개인을 소외시키는 전통에 주입당하면 누구나 자신을 잃게 될 수 있다고 저자는 우리를 향해 외치고 있었다. 정답이 없는 세상에서 정답을 주장하며 자신의 가치와 자유를 억압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에 맞설 수 있어야 한다. 지금을, 자신을 누릴 수 있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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