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쓰코의 모험
미시마 유키오 지음, 정수윤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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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일본 소설을 즐겨 읽지는 않는다. 특유의 어두운 분위기 때문인지 아니면 서사보다는 인물의 심리에 더 중점을 둬서인지는 모르겠으나 무겁고 난해하게 느껴져서 자주 찾지 않게 된다. 그런데 이상하게 왠지 모를 끌림도 있다. 처음 읽을 때는 뭐지? 싶다가도 다시 읽어보면 또는 깊이 읽어보면 마음의 동요가 일어나고 등장인물에 대한 연민이 느껴진다. 이 책<나쓰코의 모험> 역시 그랬다. 겉으로 드러나는 서사만 보면 별거없어 보이지만 나쓰코가 떠나는 '길'을 들여다보면 또다른 이야기가 숨어있다. 꽉 막힌 현실에서 살던대로 살아가지 말라고,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려는 모험이 필요하다고 외치고 있다.



수도원... 그곳에 아무것도 없다는 건 알고 있다.

나쓰코는 아무것도 없다는 그 사실이 신선하고 자극적이라 모험이 가득한 곳이라고 느꼈다.

일단 한번 떠나면 돌이킬 수 없다는 건 대단한 모험이다.

<나쓰코의 모험> p026



주인공 나쓰코. 안락한 집안에서 자랐고, 아름다운 외모를 가졌고, 인생을 대하는 아이같은 호기심을 가진 대담하고 정열적인 여성이다. 수많은 남자들이 그녀에게 구애를 하지만 그저 즐길 뿐, 결혼을 꿈꾸지는 않았다. 그 길이 막다른 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는 남들처럼 뻔한 인생을 살 바에는 속세와 연을 끊는게 나을 거라고 생각하고 수도원에 들어가기로 결심한다. 그러는게 세상 남자들에 대한 복수라 생각했고 세상에 더는 멋진 일이 일어날 거라는 기대도 없었다. 차라리 어떤 감상에도 빠지지 않고 단념하고 살 수 있는 수도원이 그녀로서는 최선의 선택이었던 것이다. 여하튼 그녀는 자신을 걱정하는 할머니, 어머니, 고모와 함께 수도원으로 떠난다. 그 길에서 세상사람들이 쓸모없다고 여기는 일에 온마음을 바칠 수 있는 진정한 정열을 가진 남자와 마주하게 되고, 곰에게 복수를 하러 떠나는 그를 따라 길을 나선다.



남자들은 입만 열면 시대가 틀렸다느니 사회가 문제라느니 말이 많지만,

자기 눈 속에 정열이 없다는 게 제일 나쁘다는 걸 깨닫지 못하고 있어...

<나쓰코의 모험>p18



나쓰코, 그녀는 그렇게 자신만의 길을 찾아 나선다. 남들이 알려준 길은 내 길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길은 어렵다. 이상주의자라는, 제멋대로라는 사람들의 비아냥을 감내해야 하고, 불투명하고 불완전한 미래를 받아들여야 한다. 뿐만 아니라, 자신이 찾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른다. 무용한 것일 수 있고, 의미 없는 일일 수 있다. 하지만 그 순간 자신에게 감정이 일면 해야하는 것이다. 하찮아 보여도 뜨거운 정열만 있다면 상관없다. 두 사람은 각자의 꿈을 안고 모험을 떠난다. 세상과 단절되어 있는 숲 깊은 곳으로. 그곳은 밀폐된 도시의 삶과는 다를 것이라고, 이해받지 못해 단절되어 있는 자신들을 품어줄 거라는 희망을 안고 한걸음씩 나아간다.


책을 읽으면서 남들을 의식하지 않는,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주인공 나쓰코가 마냥 매력적이지만은 않았다. 낯설기도 하고, 피곤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이제껏 '세상에 순종적이어야 무난하게 살 수 있다, 튀면 여러가지로 살기 힘들다'라는 생각에 갇혀 있어서다. 이렇게 나름의 판단보다는 길들여진 익숙한 생각에 갇혀있는 나를 소설을 통해 마주했고, 사회통념때문에 지쳐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마땅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이제 나는 할 수 없을 거라는 열등감과 부러움때문에 느끼는 거부반응은 내려놓고, 나쓰코처럼 자신으로 사는 자신감을 가져야겠다는 의지를 다져본다. 삶은 선택과 변화때문에 불완전하지만 그래서 아름다운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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