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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돈키호테
김호연 지음 / 나무옆의자 / 2024년 4월
평점 :
품절
한동안 소설보다는 철학 또는 심리서를 즐겨 읽었다. 타인의 세상에 공감할 여유가 없었고, 내 사정이 급해서 내린 선택이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읽게 된 <불편한 편의점>으로 다시 소설을 읽기 시작했다. 타인의 삶을 통해 더 깊고 더 넓게 나와 남, 그리고 세상을 헤아리는 법을 배울 수 있다는 것을 책에서 보았기 때문이다. 이젠 직접적인 방향과 해법을 제시하는 책도 좋지만, 삶을 먼 산처럼 관조할 수 있게 보여주는 소설을 많이 많이 읽고 싶다.
돈키호테에는 돈키호테와 산초만 나오는 게 아니다.
로시난테와 둘시네아, 목동들과 여관 주인이 필요했다.
이발사와 신부, 하녀와 공작 부인도 필요했다.
그 긴 이야기에 등장하는 많은 사람들과 다양한 음식들을
아저씨는 온몸으로 받아들여야 했다.
심지어 그 이야기를 쓴 세르반테스가 되어.
아저씨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은 듯했다.
<나의 돈키호테> p363
<나의 돈키호테>는 <불편한 편의점>의 작가 김호연의 신작이다. 이번 책 역시 누구나의 삶에서 만날 법한 등장인물과 경험들로 채워져 있어 읽는내내 일상적으로, 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세상살이의 팍팍함이 느껴지는 대목에선 울적함과 고단함이 밀려오기도 했고, 결코 포기하지 않으려는 그들의 노력을 보며 내 안에 남아 있는 꿈과 희망의 반짝임을 보기도 했다. 어찌보면 사소한 이야기이지만 그 안에 연결되어 있는 사람과 경험, 믿음과 우정 등으로 인해 거대한 결과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배운다. 모든 인연이 소중하고 모든 경험이 자양분이 된다는 것을 이렇게 또 깨닫는다.
인생은 결코 내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원하는 것만 하고 살 수 없고, 좋아하는 사람들 하고만 만날 수 없다. 품격있게 나를 지키고 싶지만 현실속에선 그럴 수만은 없다. <나의 돈키호테>의 돈키호테도 그랬다. 돈키호테처럼 자신을 믿고, 세상의 정의를 외치며, 뜨거운 심장을 가지고 자유롭게 살기를 꿈꿨지만 타인의 시선은 매서웠고, 현실이라는 벽이 앞을 가로막았다. 이렇게 소설 속 돈키호테는 실패하고 좌절하고 낙오되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꿈을 포기하지는 않는다. 그는 여러 과정들을 통해서 자신이 돈키호테가 아님을,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자신의 모습에서 산초를 발견하고 산초의 길로 나선다. 그 길에서 또한번 산초도 아님을 깨닫게 되고, 세르반테스가 자신의 길이었음을 알게된다.
자신을 알아가는 여정이 곧 삶이라는 것을 이 책을 통해 다시금 배운다. 하지만 소설은 글일 뿐이고, 현실은 '고통'을 직접 겪어내야 한다. 삶은 쉬지않고 우리에게 문제를 던져주고, 인내를 강요하기 때문에. 다행히 경험을 통해 그 시간들이 흘러가면 새로운 꿈과 희망이 온다는 것을 안다. 가능성이라는 오묘한 설렘이 나를 이끌어주기에 두렵지만 용기내어 한 걸음 한 걸음 내밀어 볼 수 있는 것이다.
돈키호테처럼 멋진 주인공이 아니어도 좋다. 아직 나의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고 또다른 새로운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다. 바모스(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