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냥이 끝나고
안톤 파블로비치 체호프 지음, 최호정 옮김 / 키멜리움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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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마음을 이해하기란 어렵다.

그러나 훨씬 더 어려운 것은 자신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이다.

<사냥이 끝나고> p152



러시아의 극작가로 유명한 안톤 체호프의 유일무이한 범죄소설이다. 고전이고 러시아 작품이라 살짝 지루할 것 같다는 내 예상과는 달리 상당히 드라마틱 하고 흥미진진해서 놓기 힘들게 만드는 이상한 매력이 있는 작품이다. 처음에는 등장인물들이 나열되는 방식으로 전개되니 집중이 잘 안되다가 중반을 넘어가면서부터 급속도로 빠져들었다. 책은 인간의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질투, 분노, 슬픔, 욕망 등의 감정들이 겉으로 표출됐을 때 얼마나 추해질 수 있는지, 어떻게 운명이 뒤바뀌게 되는지, 그리고 잔인함을 드러낸 인간을 용서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하여 생생하고 명확하게 보여주어, 나 자신은 어떤 사람인지, 도덕적, 윤리적 가치관은 어떠한 지 돌아보게 해준다.


소설의 주된 줄거리는 신문사 편집부를 찾아온 어느 남자의 원고 속에 펼쳐진 여러 인간 군상들의 얽히고설킨 사건의 진범을 밝혀내는 것이다. 소설의 저자이자 주인공인 예심판사 세뇨자는 그의 부자 친구인 카르네예프 백작과 방탕한 나날을 보내던 중에 백작의 영지 관리인 우르베닌이 사랑하는 아름다운 여인 올가에게 반하게 되지만, 올가는 자신의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늙은 우르베닌의 청혼을 승낙해버린다. 결혼식 당일 올가는 자신의 진정한 사랑이 세뇨자임을 깨닫고, 도피를 망설이다 평판이 두려워 포기한다. 이후 그녀는 귀족으로 살고 싶은 자기애와 허영심때문에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우르베닌에게 누명을 씌우고 백작과 부도덕한 관계를 맺고 만다. 세뇨자는 그녀의 행동에 상처받고 질투와 분노로 괴로워하는데 어느 날 다 함께 떠난 사냥이 끝나고 숲속으로 사라진 올가가 피투성이가 된 채 발견된다.


책에는 1800년 대 러시아를 배경으로 귀족들과 공직자들의 비뚤어진 성에 대한 인식과 노력 없이 얻어진 부로 나태함을 누리는 모습이 잘 묘사되어 있다. 특히 주인공 세뇨자는 스스로가 무엇을 진정으로 원하는지 알지 못하고, 악마가 지껄이는 내면의 속삭임에 무너져 사랑하는 여인을 버리고, 살인까지 저지르는 어리석고 교활한 인간이다. 올바른 말을 해주는 친구와 하인이 있음에도,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또다시 주어졌음에도 자신의 좁고 편협한 생각에 갇혀 자멸해버리고 만다. 아니 더욱더 악한 욕망과 행동을 표출하면서 삶의 길에서 이탈해버린다.


현실에서 경험할 수 없는 낯선 배경임에도 흠뻑 빠져들어 지켜볼 수 있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여전히 계급이 존재하는 세상이고, 진실한 자들을 조롱하는 악마성을 가진 존재들이 너무나 많기에 쉽게 이야기에 빠져들었는지도 모르겠다. 무엇을 소중히 여기면서 살아가야 할지 생각해 보는 값진 시간이었다. 이 소설이 1800년대에 쓰였다는 것이 놀랍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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