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섬세함 - 이석원 에세이
이석원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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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선택하는 기준이 달라졌다. 전에는 남들이 많이 읽는 책, 필독도서라든가 베스트셀러들을 주로 읽었다. 지금은 그 경험을 통해 책에 대한 나만의 취향이 생겼고, 나아가 나를 부르는, 꼭 읽어달라고 말하는 책을 발견할 수 있게 됐다. <어떤 섬세함>은 그런 끌림으로 읽게 된 책이다.


<보통의 존재>로 유명한 이석원 작가에 대하여 달리 아는 바가 없다. 그래도 책은 전혀 낯설지가 않았고 스스럼없이 다가왔다. 그가 들려주는 일상의 경험담과 사색들은 무척이나 현실감있게 느껴졌고, 어떤 에피소드는 내 마음을 꿰뚫는 것 같기도 했다. 섬세한 태도로 '너만 그런 거 아니야'라고 조용히 이해해 주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읽는 내내 따뜻했다.


남의 하소연을 함부로 징징댐으로 치부하지 않는 태도를 갖는 것.

남들과 대화할 때는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이들에게

골고루 시선을 주는 것.

누군가 아파 쓰러지면 무작정 일으켜 세울 게 아니라

그 사람의 상태를 봐가면서 그에게 필요한 도움을 주는 것.

<어떤 섬세함> p097


이 에세이의 주된 내용은 '타인을 바라보는 태도'에 관한 것이다. 요즘 세상은 저마다 자기 목소리만 높일 뿐 남의 말은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나만 억울하고, 나만 힘들고, 나만 잘 돼야 한다. 그뿐 아니다. 진지함을 폄하하고, 앞서간 사람은 쉽게 꼰대라 치부되고, 존중없는 직설화법을 쿨하다고 하며 이에 서운해하면 소심한 사람으로 간주된다. 한마디로 상대를 이해하려는 마음없이 오로지 자기의 존재만 드러내니 소통은 없고 주장만 있다.


책은 타인을 함부로 규정하지 않고 이면을 바라볼 줄 아는 시선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세상에 착하기만 하거나 나쁘기만 한 사람은 없기에 한쪽면을 본 것으로 누군가의 성품을 단정짓는 건 어리석은 짓이라고 일상의 경험담과 함께 들려준다. 하지만 사람이 입체적인 존재라는 것을 알면서도, 나 역시 단정적으로 평가되고 싶지 않으면서도, 타인에 대해서는 즉각 편견과 선입견이 작동한다. 그래서 나와 결이 다르거나 내 기준에 용납되지 않으면 가차없이 '손절'처리하고 만다. 차라리 홀로 섬에 살지언정 다른 사람을 참아내는 건 내겐 견디기 힘든 일이기 때문에.


저자는 이런 나와 비슷한 면을 갖고 있지만 조금은 다른 태도로 세상을 보려고 한다. 따뜻하고 사려 깊은 시선으로 타인을 보려고 애쓴다. 타인을 미워하고 경계할수록 나만 힘드니 마음이 편해지려면 너그러운 태도로 타인을 바라봐야 한다고. 결국 누굴 이해한다는 건 상대를 위한 게 아니라 나를 위한 일이기에. 하긴 오늘도 나는 어떤 무례한 사람때문에 종일 마음이 불편했다. 존중과 배려없이 자기중심적인 사람은 정말 참기가 힘들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그 사람의 언어습관이 그런 것일 뿐, 나를 기분 나쁘게 하려는 건 아닐 것이라고 생각하니 조금은 마음이 편해진다. 이게 작가가 말하는 '이해의 위력'이겠지.


서로의 온도 차를 없앨 순 없지만 줄여나갈 수는 있을 것이다. 상대를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살기 위해, 아주 작은 구석이라도 이해하려고 노력하다 보면 좀 더 세상을 잘 버틸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싶다. 차분하고 섬세한 위로가 필요한 독자들에게 일독을 추천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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