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 클래식 리이매진드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지음, 티나 베르닝 그림, 이영아 옮김 / 소소의책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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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문학을 찾아 읽곤 하면서도 유독 손이 안가던 책 <지킬 박사와 하이드씨>를 드디어 읽게 되었다. 어쩌면 지금 타이밍에 만나야 할 책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이상하고도 기괴할 거라 생각했던 책은 전혀 부담감 없이 다가와 '나'라는 정체성을 다면적이고, 모순적인 시각으로 탐색해보는 특별한 시간을 만들어 주었다. 삶의 고통의 원인이라 여겨왔던 '자의식'이 '허상'일뿐이라는 진리는 밝혀졌지만 살아가면서 내면의 양가적 감정으로 충돌하는 자아의 전쟁은 생을 마칠때까지 겪을 수밖에 없는 현실이기에 내 안의 '지킬과 하이드'라는 본성과 마주해보는 것은 꼭 필요한 경험이 아닐 수 없다.



삶의 숙명과 고통은 언제까지나 우리의 어깨에 짊어져야 하는 것,

그것을 떨쳐 내려 하면 더욱 낯설고 더욱 지독한 압박감으로 돌아올 뿐이니까.

<지킬 박사와 하이드씨>p163


책은 인간의 내면에 존재하는 선과 악의 이중적 본성에 관한 이야기이다. 지킬 박사는 선과 악이라는 두 가지 인격 사이에서 벌어지는 고통을 벗어던지기위해 모순된 이중성을 분리하는 연구를 시도하다가 약을 발견하게 되고, 분리된 이중인격을 갖게 된다. 처음엔 그가 바라던 대로 희망적이었다. 서로의 의식에 개입이 없기 때문에 부정한 인격은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을 수 있고, 올곧은 인격은 나름의 선행으로 온전한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 그러나 홀가분함은 잠깐이었다. 죄책감, 의무감, 양심 등이 점점 사라져 가면서 선이 없는 악은 걷잡을 수 없이 나쁜 방향으로 흘러가버렸다. 결국 모든 일에는 끝이 있듯이 지킬 박사는 올곧은 자아를 서서히 잃게 되고 사악한 자아와 하나가 되어갔다. 악이 선을 집어삼키게 된 것이다.



나는 곁과 속이 다를지는 몰라도 결코 위선자는 아니었네.

내 안에 존재하는 두 인격 모두 진정이었단 말일세.

제약을 벗어던지고 망신스러운 짓을 벌컥 저지르는 나도,

대낮에 지식을 쌓거나 슬픔과 괴로움을 달래려 애쓰는 나도

진짜 나였네.

<지킬 박사와 하이드씨> p162


지킬 박사의 내면에만 이중성이 존재하는 게 아니다. 인간은 모두 이중인격 아니 다중인격을 갖고 있다. 한없이 선량해 보이는 사람의 내면에서도 이기적이고 추악한 마음은 존재한다. 친구가 잘 되길 진심으로 바라면서도 질투가 나고 열등감도 느낀다. 좋은 것은 나만 갖고 싶기도 하고, 모두와 함께 나누고 싶기도 하다. 이런 상반된 내면의 감정들을 알아차리고 균형감 있게 조율하면서 살아가면 괜찮지만 때때로 선과 악, 옳고 그름은 심한 갈등을 일으키며 스스로를 괴롭힌다. 오만한 욕망과 저속한 쾌락의 나는 내 본성이라 인정하고 싶지 않고, 누군가에게 나의 이런 모습을 들키기라도 할까봐 감추고 위선적인 행동을 하며 힘겹게 살아간다.


지킬 박사는 말한다. 인간은 진정 한 명이 아니라 두 명이라고. 궤변이지만 문맥상 동의한다. 우리 마음속에는 '도덕적인 나'도 '이기적인 욕망을 가진 나'도 모두 존재한다. 더불어 이 극과 극의 쌍둥이들이 죽을 때까지 고뇌와 갈등을 거듭하며 하염없이 싸워나갈 수밖에 없음을 인정하고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 지킬 박사처럼 선과 악의 경계의 골이 깊어지지 않도록 나의 세속적 욕망을 인정하는 동시에 현실에 맞게 타협해가면서 살아가기를 선택하는 게 진정한 본성을 지키는 길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흥미와 긴장감을 동시에 느끼게 해주고 강력한 철학적 고찰을 담고 있는 이 책을 아직 경험하지 못한 분들이라면 일독하시길 추천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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