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에 이름 붙이기 - 보이지 않던 세계가 보이기 시작할 때
캐럴 계숙 윤 지음, 정지인 옮김 / 윌북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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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이름 붙이기>. 책의 제목만 얼핏 보았을 때에는 평범한 자연에 관한 지식이나 환경을 주제로 한 이야기를 풀어냈을 거라 추측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이 책은 그동안 한 번도 깊이 있게 생각해 본 적 없는 세상에 대한 이야기이며 지금껏 잘못 길들여진 직관을 바로잡아 진실을 볼 수 있도록 깨우침을 주는 지혜로운 책이다.


책의 핵심 주제는 '생명의 기원과 명명을 분류의 틀에 넣어 보려고 하지 말고 직접 눈으로 바라보라'라는 것이다. 간략하게 주제를 풀어 설명해 보면, 애초에 우리는 고유의 감각(움벨트)으로 생명의 질서를 감지하고, 살펴보고, 분류했다. 모든 인류에게는 생명의 세계를 바라보는 한 가지 방식을 공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사는 지역에 따라 생명을 바라보는 시각이 다르기도 하지만 인간은 자기들 주변의 생명들을 감지할 수 있고, 알아차릴 수 있어 분류하고, 명명하며, 계층 구조로 체계화했다.


자연은 사람들에게 600에서 멈추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오히려 사람들이 자기네 주변의 다양한 식물이나 동물을 모두 다 다뤘든 아니든 간에

600가지 속에 도달하면 분류를 멈춘다.

<자연에 이름 붙이기>p203



그런데 생명의 질서를 알아보는 인간의 능력은 한계가 있었다. 무엇보다 '생명이 진화한다는 사실'을 알아보지 못한다. 늘 현재만을 인식하지 과학이 증명하는 과거와 미래를 볼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놀라울 만큼 경험할 수 있는 세상이 넓어지면서 인간의 자연스러운 감각만으로는 생명의 질서를 분류하고 명명하는데 한계가 있기에 강력한 과학의 힘을 빌릴 수밖에 없었다. 이제 분류하고 명명하는 것은 우리가 아닌 과학의 일, 전문가의 일이 되었고, 그들은 뻔히 보이는 물고기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새들이 공룡이라는 소리까지 한다. 상식(본능적 시각)과 조화되지 않는 과학에만 의지한 엉뚱한 결과물이다.


이름을 알고 싶은 마음은 그 존재에 대한 관심의 시작이다.

이름을 모르면 스쳐 지나가지만

이름을 알면 마음속에, 머릿속에 스며든다.

<옮긴이의 말> p419


우리가 지나치게 과학의 옳음을 확신한 결과 야생의 존재들이 대멸종 중이다. 한 가지 비전만 옳다고 믿어서 얻은 비참한 현실인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아직 늦지 않았다고, 다시 우리의 능력을 되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생명의 세계를 알아보는 시각이 지금은 물건을 한눈에 구별하는 능력으로 바뀌었지만 조금만 고개를 돌리면 자연은 분명 거기 풍부하게 존재하다고 이야기한다. 오로지 과학자들만의 관점만 유지할 필요는 없다. 분류는 옳거나 틀린 것이라고 단순하게 볼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다양하게 세상을 이해할 수도 있다고 이 책은 나름의 해법을 제시한다. 의식적으로 제한된 시각에서 빠져나와 전체적이고 풍성한 시각을 가지고 세상을 흡수할 수 있다고 우리를 흔들어 깨운다.

생명의 세계, 진화와 과학에 관하여 완전히 새로운 생각을 갖게 만드는 책이다. 모두가 읽어보시길, 특히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를 읽었거나 읽을 계획이신 분들에게 강력 추천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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