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 공지영의 섬진 산책
공지영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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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는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이 있어.

이 둘을 구별하고 나면 인생은 엄청 달라져.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나 자신을 살피고 나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 외에는 없어." /p.253


공지영 작가의 책은 처음이다. 소설을 즐겨읽지 않아서이기도 하지만 왠지 나와는 결이 다를 것 같아서가 그 이유다. 그러다가 단순한 호기심에 읽은 신간 에세이<그럼에도 불구하고>는 이런 나의 생각이 잘못됐음을 단박에 알게 해주었다. 역시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는 작가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힘든 시기를 겪었고, 지금도 겪고 있는 그녀의 글은 깊고 날카로우며 단단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는 도시를 떠나 섬진강 근처에서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작가 공지영이 들려주는 '나 자신을 사랑하는 법'에 대한 이야기다. 해결하기 어려운 삶의 문제들 속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해야 생각을 바꿔 지금의 나를 받아들일 수 있는지, 진심으로 나 자신을 소중히 여길 수 있는지에 대한 방법을 들려준다. 책 속에 담긴 모든 에피소드들은 내가 한 번쯤 마음에 품었거나 지금도 고민 중인 이야기들이다. 작가는 차분하면서 단호하게 노련한 필력으로 늘 같은 생각들을 반복하고, 나만의 관념에 붙들려 있는 나를 선명한 시선으로 직면하게 하고, 망설임 없이 행동하게끔 돕는다. 정말 오랜만에 귀한 책을 만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보는 것이다

책에는 작가 공지영이 진정으로 행복해지기 위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봤던 많은 일들이 담겨있다.

'지금, 여기 그리고 나 자신.' 그녀는 이 세 가지의 행복해지는 비결들을 깨닫고 우선 쉽게 되는 일부터 시도했다. 자신에게 좋은 옷을 입히고, 집 안 청소와 정돈을 하기 시작했다. 먹는 것도 바꿔나갔다. 힘겨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매 순간 '이건 나 자신을 위해서인가' 묻고 행동했다.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존심은 잠시 미루어 두고, 남의 시선은 접어두고, 나에게 좋은 일을 해야 하니까.' 그런 노력 덕분에 그녀는 '나는 나 자신으로 아름다울 뿐이다'라고 생각하게 됐고, 그러자 모든 것이 변했다고 말한다. 나 역시 그녀처럼 다르게 살기 위해 노력 중인데 왠지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는 것 같다. 특히나 '나 자신을 사랑하기'란 정말 정말 어렵다. 거울 속 나를 바라보며 '난 참 매력적이야, 멋져'라고 말해보지만 그냥 말뿐이지 속마음은 전혀 다르다. 본심은 점점 나이 드는 얼굴이 싫고, 마음에 안 든다. 물론 하루아침에 마인드가 바뀌지는 않겠지만 겉 따로 속 따로인 게 무슨 도움이 될까 싶어 그만두고 만다. 하지만 작가는 그렇지 않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봐야 한다며 이렇게 조언한다. "마음은 빨리 바꾸지 못하고 내 마음대로 되지 않지만 억지로라도 내뱉는 말은 우선 내 맘대로 할 수 있다. 그러니 되는 일부터 해보는 것이다." 모든 일에는 연습이 필요한데 하물며 평생을 해온 습관을 바꾸는 일은 당연히 오래 걸리고 힘들 수밖에 없다. 그러니 작가 말대로 일단 해보는 거다. 예쁜 척, 쿨한 척, 나 자신을 사랑하는 척. 그런 척 말하고 행동하다 보면 정말로 그렇게 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보는 것이다!"

우리는 안다. 가끔 과거가 현재의 나를 밀어붙이다 못해 미래까지 멱살을 잡는다는 것을, 그때 우리는 되돌릴 수 없는 과거의 웅덩이에 다시 빠져서 허우적거리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순간에도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을 용서하는 것은 유용하고도 필요한 일이다. 그렇게 되어야만 우리는 마치 거센 조류를 거스르는 배처럼 끊임없이 과거로 떠밀려 가면서도 앞으로 계속 나아가는 것이다. /p.278

<그럼에도 불구하고>는 '나, 인간관계, 나이 듦' 같은 삶의 근원적인 문제들에 대해 담담하면서도 날카롭게 풀어내어 현재의 삶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해준다. 작가는 이제 인생의 고통들에 감사하고 다시금 다가오는 고통들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한다. 그렇다. 분명 고통 없이는 성장할 수 없고, 그 고통을 기쁘게 맞이할 수는 없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소한으로 의미를 부여해볼 수는 있다.

한 번뿐인 내 인생, 성장하느냐 아니면 그냥 늙어버리느냐는 내 선택에 달려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을 다스리고 할 수 있는 것을 실천해나간다면 나에게도 분명 다른 세상이 열릴 것이다.

생은 기필코 우리를 절벽으로 민다. 그때 우리는 선택할 것이다.

추락할 것인지 날아오를 것인지를. /p.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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