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측면이 좀 더 낫습니다만
하완 지음 / 세미콜론 / 2020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누군가에게 인정받는 것은 분명 기분 좋은 일이지만 인정을 바라면 곤란한 일이 생긴다.

이 바닥의 생리가 그렇다. 아쉬운 쪽이 언제나 을이다.

그러므로 타인의 인정에 목마른 사람은 타인에게 휘둘릴 가능성이 크다.

세상의 인정을 바라는가? 그럼 세상에 휘둘릴 것이다.

이 삶은 누군가의 인정이 필요한 삶이 아니다. 내 삶이니까. 내 거니까 내가 갑이다. _ p.23


<저는 측면이 좀 더 낫습니다만>. 독특한 제목에 눈길이 가서 살펴보니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의 작가 하완의 신작 에세이였다. 워낙 유명한 베스트셀러라 읽은 줄 착각했을 정도여서 그의 두 번째 책도 당연히 재미있을 거라는 기대에 망설임 없이 읽기로 했다.

"왜 똑같은 면으로 자신을 증명해야 하는 걸까? 저마다 나은 면이 있을 텐데"

<저는 측면이 좀 더 낫습니다만>는 자신을 자기합리화하며 관습적인 시대에 맞서 자유롭게 살자고 이야기하는 책이다. 어찌 보면 객관적 기준에 들지 못하는 이들의 자기변명? 찌질이들의 자기합리화?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객관적 기준이, 정면 승부만이 정답이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정면이 멋진 사람도 있지만 측면이 또는 후면이 잘난 사람도 있으니까. 말로는 '나답게'를 외치면서도 타인의 시선에 갇혀 객관적인 삶을 바라보고 주체적으로 살지 못한다면 '남답게' 사는 인생을 살아야 한다. 저자 하완은 이 책을 통해 내 삶의 긍정적인 면을 보아내고 즐겁게 사는 일이 우리가 해내야 하는 일이라 이야기하며 공감을 이끈다.

어떻게 될지 몰라서 '무서워.'가 아닌,

어떻게 될지 몰라서 '궁금해.'로 살면

인생은 한결 재미있는 것이 된다.

책 초반부만 해도 작가가 지금껏 살아온 환경이 나와는 거리가 있어서 큰 공감을 기대하지는 않았는데, 웬걸 에피소드마다 모두 내 이야기들이다. 잃을 것도 별로 없으면서 겁내는 타고난 겁쟁이에 '가능하면 경쟁하지 말고 살자'라는 게 인생 모토이고, 자칭 '집돌이'라 부를 정도로 집에 있는 시간이 가장 안전하고 편한 스탈, 여기에 가까운 사람들의 고통을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여 힘들어하는 것까지 자꾸 내 모습이 오버랩된다. 작가는 특유의 재미있고 친근한 문체로 무겁지 않게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여기에 작가가 직접 그린 경쾌하면서도 묵직한 메시지가 담긴 그림으로 감동과 웃음을 자아낸다.

"그럴 수 있어"

이 책을 읽으면서 유독 와닿았던 말이 있다. 어떤 얘기에도 찰떡같이 달라붙는 말 "그럴 수 있어."

'어떻게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날 수 있어?', ' 어떻게 네가 나에게 이럴 수 있어?', 어떻게 이런 일이... 저자는 이런 말 뒤에 "그럴 수 있어"를 붙이면 묘하게 편안한 마음이 든다고 말한다. 정말 그런 것 같다. 잠깐 상상으로만 해보긴 했지만 예민했던 마음이 진정되는 기분이다. 살다 보면 '그럴 수 있다'라는 거 알면서도 막상 내게 '그런 일'이 일어나면 받아들이기가 참 어렵다. 일어날 수 없는 일은 없다. 조심해도 노력해도 언제든 일은 일어난다. 내 소관이 아니다. 그럴 때마다 분노와 불안에 떨기보다는 "그래, 그럴 수 있어"라고 말해봐야겠다. 자꾸 되뇌다 보면 정말 그럴 수 있게 될지도 모르니까.

이제 나는 안다. 한 번에 모든 걱정과 불안이 해결되는 만능키 같은 정답은 없다는 걸.

어떤 선택을 하든 우리는 항상 잘못된 곳에 와 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저 끊임없이 궤도를 수정하며 나아가는 것이 인생인지도 모르겠다. /p.213

우리는 보통 자기합리화를 안 좋은 의미로 해석하지만 무분별하지만 않다면 자기합리화는 자신에게 주는 안정제 같은 게 아닐까? 매일매일 주어지는 상황에 후회는 당연히 따라오기 마련인데 그때마다 '객관적 기준'으로만 나를 본다면 나 스스로 세상의 기준에 나를 밀어놓고 괴롭히는 꼴이 되고 만다. 객관적인 관점은 꼭 필요하지만 그 안에만 갇히면 남에게 끌려다닐 가능성이 크다. 그러니까 너무 객관적으로만 살지 않고 조금은 자기합리화도 하면서 살아가는 것도 방법이지 싶다.

<저는 측면이 좀 더 낫습니다만>은 이 시대를 살고 있는 평범한 소시민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이야기들로 남들에게 말하기 부끄러울 정도로 너무나 평범하고 흔한 일상들이 어쩜 찐행복이지 않을까라고 다시금 생각해보게 하는 위트와 감동이 있는 매력적인 책이다.

정면보다는 측면에 더 자신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고 격하게 공감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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