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삶
마르타 바탈랴 지음, 김정아 옮김 / 은행나무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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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삶>이라는 생소한 브라질 작가의 책을 선택한 이유는 이 책이 데뷔작임에도 여러 매체에서 예술성과 문학성을 인정받았고, 소설을 기반으로 제작된 영화가 2019년 칸영화제에서 '주목할 만한 시선상'을 수상하였고, 2020년 오스카상에 출품되었기 때문이다.

'지금 바로 여성이 읽고 싶어 할 만한 책'이라는 타이틀을 가진 이 책이 궁금했다.

“이 책은 무언가가 됐을 수도 있는 여성, 에우리지시 구스망에 대한 이야기다.”

책은 가부장제의 억압과 편견에 맞서 고군분투하는 에우리지시의 보이지 않는 면을 이야기하고 있다.

20세기의 가부장제 사회가 어떻게 여성을 억누르는지 보여주고, 동시에 이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삶을 이끌어가는 강인한 모습도 담아냈다.

소설은 에우리지시와 기다 자매를 중심으로 이웃집 여자들, 주변인들의 엄마 등 그 시대의 여성들의 다양한 삶을 생생하게 펼쳐 보이고, 무거운 주제를 저자의 번뜩이는 유머로 쉽게 동화되게 만든다. 개인적으로는 인물들의 설명보다는 사건이 더 많았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에우리지시는 모범적인 여자아이라는 껍데기 안에 자신의 욕망을 가둬놓았다.

목소리를 높이는 법도, 치맛단을 줄이는 법도 없는 소녀. 부모님의 꿈 외에는 아무 꿈도 꾸지 않았던 소녀.

네 혹은 아니요, 두 가지 대답밖에 할 줄 몰랐지만, 스스로 왜 긍정하는지 혹은 부정하는지를 질문하지 않았던 소녀.

p.106

에우리지시는 똑 부러지는 여자다. 하지만 언니의 가출로 가족들의 상심을 본 이후 모나지 않게 살아가기를 결심한다. 남편 안테노르와 아들, 딸과 함께 중산층에 안정된 삶을 꾸려가지만 본인 자신은 공허하기만 하다.

'인생이란 이것뿐일까?'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졌다. 또한 '다른 인생이 있을까?'라는 생각도.

권태로운 일상에서 에우리지시는 새로운 프로젝트를 찾고 실행했다. 처음엔 요리책 그리고 봉제...

하지만 남편 안테노르는 가정에 전념하는 여자를 원했다. 그가 생각하는 좋은 아내는 남편과 자식들 외에는 쳐다보지 않는 여자다. 남편의 격렬한 반대에 에우리지시는 '끽'소리도 못하고 주저앉았지만 그녀의 새로운 프로젝트는 멈추지 않았다.

"우리는 모든 걸 다 잘해내고 있다고 착각하곤 하지. 하지만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걸 알아채는 순간,

눈이 가려져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다음부터는 아무것도 맞히지 못하게 돼."

p.123

에우리지시의 언니 기다의 이야기도 흥미롭다. 아름다운 외모로 남성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았던 기다는 무책임한 연인 때문에 인생이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진다. 혼자서 경제활동과 육아를 감당해내며 자신을 배척하는 사회에도 굳건히 맞선다. 그녀들이 살았던 20세기는 지금보다 훨씬 더 여성에게 가혹했다.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여성은 언제나 부차적일 수밖에 없는. 우리의 과거를 떠올리게 하는 그녀들의 이야기는 현재에도 여전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에우리지시는 신경쓰지 않았다. 신경쓰지 않음이 에우리지시가 맞이한 새로운 단계의 일부였다.

p.208

에우리지시가 새로이 찾은 프로젝트는 글쓰기다. 가족과 사회의 무관심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타자기를 두드린다. “책을 쓰고 있어. 보이지 않음에 대한 이야기야.” 에우리지시의 삶은 개인의 삶에 그치지 않고 동시대를 살았던 수많은 여성들의 삶을 대변한다. 책은 존재했지만 존재하지 못했던 여성들의 이야기다. 그녀들의 삶이 있었기에 지금의 우리가 있다.

책을 읽고 나의 보이지 않는 삶을 떠올려봤다. 그동안 보이는 삶에만 너무 치중한 건 아닌지 내가 진정 원하는 삶은 무엇인지도 생각해보며 밖으로만 향했던 시선을 내면으로 돌리고, 나의 가치를 찾고 온전히 내 삶을 살아내고 싶어졌다. 그리고 넘어질 때마다 부딪힐때마다 더 힘차게, 더 미소를 띠며 일어나보자는 다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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