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히 그림에 대해 조금 더 알고 싶은 요량으로 선택한 책이다.
하지만 이 책은 그 정도에서 그치지 않는다. 우리가 숨기고 싶은 부끄러운 이야기들을 거침없이 꺼내놓는다.
책은 지금 우리 사회가 여전히 공방하는 사회적 논쟁의 핵심을 꿰뚫는다.
사회문제와 연결 짓는다고는 하지만 이렇게 날카롭고 깊은 지식과 논조가 숨어 있을 거라고는 예상 못 했다. 기대 이상이다.
책은 8가지 사회 문제(차별, 혐오, 불평등, 위선, 중독, 탐욕, 반지성, 환경오염)에 대해 그림과 연결해 설명한다. 비평적 논조가 담겨 있어 딱딱할 거라 예상했지만 아니다. 재미있고 술술 읽힌다.
처음 등장하는 '메두사'에 대한 이야기부터 흥미롭다.
머리칼이 뱀으로 변한 신화 속 괴물 메두사. 하지만 원래 모습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바다의 신 포세이돈이 반해 결국 그의 연인이 되고, 어느 날 아테나의 신전에서 사랑을 나누는 모습을 본 아테나가 그녀의 머리카락을 뱀으로 만들어버리고 외딴섬에 가두었다. 여기서 끝나지 않고 페르세우스도 등장한다. 메두사의 목을 베어 오라는 임무를 맞고, 메두사는 두 신들과의 관계 속에서 처참한 죽음을 맞는다.
저자는 이 신화에서 우리가 알지 못했던 이야기를 들려준다. 다른 신화에 따르면 그녀는 포세이돈에 성폭행을 당한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것과 상관없이 두 경우 다 포세이돈에게는 어떤 벌도 내려지지 않았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피해자인 메두사에게 남성의 성적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이른바 '꽃뱀 프레임'을 씌운 것이다. 아니면 '피해자 다움'이 없으니 '암묵적 동의'라고도 한다. 이는 분명 '동의'가 아니다. 저자는 이런 상황들 모두 가해자가 자신의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함이라 말한다.
지금 우리 사회와 다르지 않다. 미투 운동에서 보면 가해자들은 자신의 부도덕함을 고백하지 않고 오히려 '술 때문에', '자신을 좋아하는 것 같아서'등의 변명만 늘어놓는다. 괴물은 메두사가 아닌 가해자여야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여전히 피해 여성들은 메두사가 되고, 꽃뱀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