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핑의 세계
임세영 지음 / 샘터사 / 2021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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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분히 홈쇼핑적일 줄 알았다. 장사꾼의 언변으로 소비욕을 부추기고 질투심을 불러일으키게 될까봐 기대 없이 펼쳐든 책. 하지만 첫 번째 파트 학창시절 편지꾸러미와 엄마의 진주목걸이 이야기를 꺼내든 저자의 수법에 완전히 넘어갔다. 이거 사세요 저거사세요 그러지 않는다. 나는 다만 카페에서 제목이 보이게 들고 읽으려니 좀 부끄러웠다. 쇼핑에 환장하는 속물로 비칠까봐 제목을 가리고 읽었는데, 생각해보니 좀 그렇다. 책 한권 읽는 것도 맘대로 드러내지 못하는 소심함에 현타가 왔다. 남들 이목에 신경 쓰느라 개성 없이 대세를 따르는 쇼핑은 독서라고 다르지 않았다. 베스트셀러에 관심을 주고 인기작가나 출판사의 책을 모조리 사다 진열하고 소화하기 어려운 인문학 도서를 탐내는 것이 명품을 탐하는 욕심과 다를 게 뭐 있나 싶다.


‘전쟁이 패션이 미친 영향은 지대했다. 견장과 넓은 어깨, 더블버튼이 달린 군복의 디테일은 샤넬이나 이브 생로랑의 딱 떨어지는 더블 브레스트 롱 재킷이나 피코트를 탄생시킨 원천이기도하다. 이렇게 전쟁의 폐허를 딛고 피어난 슬프고도 아름다운 물건 중 하나가 바로 우리가 사랑하는 트렌치코트다. 에드워드 7세 국왕이 개버딘 레인코트를 찾으며“내 버버리를 가져오라”고 말했다고 하는데 그 덕인지 버버리는 레인코트를 대표 명사로 자리매김했다. 수류탄을 걸도록 넣어준 D링 장식, 장총의 개머리판이 닿아도 쉽게 마모되지 않게 달아준 가슴의 패치원단, 보온성을 위해 달아준 손목 벨트 이런 디테일은 전쟁이 끝난 지금 필요 없는 것들이지만 끈질기게 존재한다.’ p193

트렌치 코트의 역사와 더불어 악어가죽의 탄생과 모피와 다이아몬드에 대한 방대한 지식은 쇼호스트의 역량이 과연 어디까지인지 생각하게 했다. 모자 모델이 두상이 작아야 모든 모자를 소화하듯 55사이즈를 유지해야만 하는 절대적인 이유에 반박하지 못했다. 이십년 넘도록 청바지를 입지 않고 살아온 내가 드디어 청바지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 실은 임세영 그녀가 길쭉한 다리를 사선으로 뻗으며 요즘 청바지는 딱딱하지 않으니 걱정 말라던 한마디 때문이었음을 거부하지 못하겠다.


‘청바지 핏이 전처럼 예쁘지 않다는 이유로 포기하기엔 청바지가 차지하는 내 인생의 지분율이 너무 높다. 확대 해석이라 할 수 있겠지만, 청바지를 포기하는 것은 엄마가 진주목걸이를 나에게 건네주던 순간처럼 나의 시대가 지나갔음을 인정하는 것과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 용돈을 모아 입고 싶은 청바지를 사서 입으면서 시작된 나의 시대가 아직은 계속되고 있음을, 누구보다 오래오래 청바지를 입으면서 우겨보고 싶다.’p188


바지가 한 벌이면 불행하고 열 벌이면 행복하냐는 말보다 바지가 열 벌이면 스트레스는 열배로 줄어든다는 말을 따를 작정이다. 쇼핑은 그런 것이니.


* 출판사 샘터의 지원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대단히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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