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유물론 카이로스총서 64
그레이엄 하먼 지음, 김효진 옮김 / 갈무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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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유물론> 서평

비유물론은 한국에 가장 최근에 번역된 하먼의 저작이다. 특히 그의 서문은 2020년에 작성된 것인데,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covid19)이 대유행 중인 시기에 쓰여졌고, 상당한 현재성을 갖는다. 하먼 외에도 많은 현대 철학자, 사상가들이 판데믹(pandemic)을 맞아 여러 분석을 내어놓았지만, 대부분의 글들이 신통치 않아 보인다. 매번 분석으로 내놓던 ‘신자유주의 체제의 모순’을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의 대확산이 적나라하게 보여준다던가, 국가가 ‘예외상태’를 선언하며 ‘생명관리정치’의 통치술을 발동할 것을 경계하는 이야기 등이 나왔다. 그런데 왜 우리는 이 분석들의 ‘부분적 타당함’에도 불구하고 큰 공감을 표할 수 없었을까?

 하먼에 따르면 이러한 분석들은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covid19)’이라는 복잡한 객체를 어딘가로 환원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의 대유행은 단순히 ‘신자유주의 체제의 산물’로 환원될 수도 없고, 생물학적, 의학적 메커니즘으로도 환원될 수 없다. 그의 <비유물론>이 현재성을 갖는 이유는 이론적 경향으로서 ‘환원’이 만연하기 때문이다. 하먼의 객체지향철학(object-oriented ontology)의 목표는 어떤 객체를 그것의 구성요소들로, 즉 아래로 환원(undermining)시키지 않고, 객체를 그것의 힘, 영향, 관계 등으로, 즉 위로 환원(overmining)시키지 않으며, 이 두 가지를 섞어서 혼합한 양방향으로의 이중 환원(douminig)을 거부하는 새로운 존재론을 제공하는 것이다. 특히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인공지능, 사이보그, 4차 산업혁명 등과 같이 자연과 사회를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는 전통적인 틀로는 분석할 수 없는 객체들이 주목받게 되면서 새로운 존재론의 필요성이 계속해서 부각되고 있다.

 이미 철학과 사회학, 인류학 등 ‘인문-사회과학 분과들’에서 ‘존재론적 전회(ontological turn)’가 주요한 이론적 흐름이 되었고, 소위 ‘자연과학’으로 분류되는 학계에도 ‘인류세’ 논의 등을 중심으로 새로운 바람이 불어오고 있다. 이 바람의 핵심은 기존의 존재론과 형이상학이 그 한계를 드러내고 있으며, 작금의 현실을 분석하는데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통찰이다. 하먼은 철학계에서 그런 바람의 중심에 있는 철학자이다. 그는 사변적 실재론(speculative realism)이라는 철학적 흐름을 주도하는 철학자로 이름을 날렸다. 사변적 실재론의 주요한 비판 대상은 ‘상관주의’다. 상관주의는 인간 마음 바깥에 자리 잡은 실재적 물자체는 다룰 수 없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것에 관하여 생각하고 있다면 우리는 이미 그것을 ‘생각’하고 있으므로 ‘인간의 사유’로부터 독립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 논증은 칸트 이래로, 매우 강력한 것으로 여겨져서 소위 철학적 논증이 벗어날 수 없는 한계이자 전제로 다뤄지며, 많은 철학의 제1 원리로 자리매김 했다. 우리가 객체, 혹은 칸트적으로 말해 ‘물자체’에 대해 완벽히 파악할 수 없고, 오직 우리가 경험하는 것으로서 ‘현상’에 대해서만 알 수 있다는 주장은 ‘지식의 불완전성’과 관련된 인식론적 논증으로 향하는 것은 타당하다. 그러나 이 주장에서 나아가 인간의 경험, 사유와 관계맺지 않은 ‘존재’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존재론적 논증으로 향하는 것은 많은 문제를 발생시킨다. 우선적으로 이는 모든 객체를 인간 사유의 상관물, 즉 사유 속의 객체로 존재하도록 하는 강력한 ‘인간중심주의적’ 편향을 발생시킨다. 게다가 이는 ‘존재’를 그에 대한 ‘지식’으로 치환하는 오류를 범하는 논증이다. 태양에 대한 지식이나 경험과 태양 그 자체는 결코 같지 않을 것이다. 객체는 그에 대한 인식 이상의 무언가다. 때문에 상관주의는 인간과 무관하게 존재하는 객체들을 부당하게 취급하고, 평가절하하며, 인간의 의식 내로 끌어들인다.

 여기서 사변적 실재론이 등장한다. 사변을 통한 실재로의 도약, 이것이 사변적 실재론이라는 흐름을 따르는 이들이 공유하는 핵심이다. 이들은 사유를 통해서 그동안 박탈된 ‘존재’의 지위를 복권시키고자 한다. 이런 시도들은 다양한 방식과 독특한 사유들을 통해 이뤄지는데, 때문에 사변적 실재론자들은 공통적인 이름과 목표를 공유함에도 불구하고 실은 매우 다양한 입장을 갖는 상이한 흐름이라 할 수 있다.

 때문에 하먼은 ‘사변’에 방점을 찍는 다른 사변적 실재론자들을 비판하면서, ‘객체’ 그 자체에 방점을 찍는 ‘객체 지향 철학(object-oriented ontology)’으로 나아간다. 그의 객체 지향 철학은 모든 존재자를 단순히 동일한 층위에 자리 잡게 하는 ‘평평한 존재론’을 거부하고, 모든 존재에게 그 고유의 ‘창발’과 ‘실재성’을 인정하는 존재론을 부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따라서 그가 추구하는 궁극적으로 아름다운 이론은 서로 다른 유형의 존재자를 복잡하게 구분하는 이론이다. 그러므로 하먼은 철학과 물리학, 뿐만 아니라 화학, 생물학, 심리학, 사회학 등 수많은 학문들의 존재이유를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다. 그것들은 서로 다른 유형의 객체들을 상이한 방법으로 연구하는 학문들이다. 이는 우리가 사는 세상에, 진실로 수많은, 그리고 다른 유형의 객체들이 ‘실재’하기 때문이다. 문학, 건축물, 바이러스, 미술품, 자본주의, 인간, 뇌, 미생물 등 이 수많은 객체들은 하나의 틀로 분석될 수 없고, 복잡한 층위가 얽혀서 존재하는 객체들이며, 따라서 우리는 미래에도 그것들을 완전히 파악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것들에 대해 여러 측면에서 계속해서 더 알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하먼의 매력적인 객체 지향 철학은 독특한 사회이론으로 이어진다.

 국내에 번역된 하먼의 이전 저작들이, 객체 지향 철학의 존재론과 형이상학에 대한 내용이었다면, <비유물론>은 객체 지향 ‘사회이론’을 다룬다. 하먼은 그의 사회이론을 소개하기 위해, 사회적 객체인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VOC)를 설명하고자 한다. 즉 메인요리는 그의 ‘사회이론’이지,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가 아니다. 따라서 동인도회사에 대한 분석에 관심이 없다 해도 실망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는 그의 사회이론을 잘 보여주기 위해 선택된 하나의 사례이다. 물론 그의 사회이론이 얼마나 매력적인지는, 그의 분석이 얼마나 타당하고 새로운 관점을 생산하는지를 통해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하먼이 선택한 사회적 객체이다. 그런데 사실 사회과학 내에서 ‘사회적 객체’의 지위는 매우 논쟁적이다. 대표적인 사회적 객체, 이를테면 자본주의, 재벌, 국가, 성차별 등은 언제나 사회과학이 다루는 주요 개념들이었지만 동시에 계속된 논쟁을 불러일으키며 그 타당성 자체가 항상 시험대에 올랐다. 이처럼 한 학문 흐름의 주요한 개념들이 논쟁적이고 모순적인 지위를 띄었다는 것은, 그 분과 자체가 계속된 위기에 처해있었음을 말해주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그 위기에는 분명 어느 정도 존재론과 형이상학의 문제가 결부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도 하만의 이번 저작이 소중하다고 강조하고 싶다. 어떤 학문이 다루고자 하는 객체들과 관계들이 어떤 것인지를 규정하는 작업이 더 엄밀해지고 잘 체계화 된다면, 그것을 다루는 방법론과 내용에도 혁신이 일어나게 된다. 따라서 하먼의 객체지향철학은 사회이론의 혁신을 추동한다.

 하먼의 객체지향 사회이론이 제공하는 혁신의 동력은 ‘창발(emergence)‘과 ‘공생(symbiosis)’ 개념을 훌륭하게 그의 철학 체계 안으로 ‘번역’하여 녹여냄으로써 생산된다. 창발은 과학의 여러 분과들에서 광범위하게 수용되고 있는 개념인데, 간단히 설명하면 ‘어떤 관계가 고유하고 새로운 성질을 출현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창발은 원자나, 분자 단위에서는 나타나지 않던 성질이 수많은 원자나, 분자로 이루어진 집합체에서 새롭게 발생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에게 친숙한 열과 온도, 기압, 밀도 등은 물론이고, 수소와 산소가 결합된 ‘물’의 독특한 숙성도 대표적인 창발의 사례이다. 특히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의 독특한 ‘생명 현상’과 ‘의식’ 그리고 ‘사회’ 또한 매우 높은 수준의 창발로 설명될 수 있다. 하먼은 이 창발 개념을 그의 존재론의 핵심 개념으로 취급한다.

 뿐만 아니라, 하먼은 생물학에서 유래한 린 마굴리스의 ‘공생’ 개념을 사회이론에 수입한다. 이는 공생이 단순히 생물학적 삶에 대한 것이 아니라, 객체들의 전기(傳記)적인 삶에 대한 것이며, 이를 통해 객체들이 맺는 여러 가지 방식의 ‘관계들’을 다룰 수 있게 한다. 하먼이 보기에 관계들은 모두 동등하고 평등한 수준의 관계가 아니다. 어떤 관계는 더 중요하고, 어떤 관계는 덜 중요할 수 있다. 예컨대, 뉴턴의 법칙은 태양이 내 몸을 잡아당길 때 그에 대응하여 나 자신도 태양을 끌어당긴다고 가르쳐준다. 그러나 공생 개념은 지구 동물로서 내 삶은 태양이 제공하는 에너지가 없다면 생각할 수 없지만, 내가 우주에서 갑자기 사라지더라도 태양은 여전히 계속 존재할 것이라는 것을 납득시킨다. 이처럼 공생 개념은 평면적인 존재론을 넘어서, 비대칭한 관계들, 비호혜적인 관계들, 중요한 관계는 물론 대등한 관계나, 호혜적인 관계, 덜 중요한 관계들을 모두 다룰 수 있는 사회이론을 선물한다.

 즉, 하먼은 객체냐 관계냐의 이분법에 사로잡히지 않고 객체들과 관계들에 대한 통찰을 유지하면서, 약한 유대와 강한 유대, 창발, 탄생, 성숙, 퇴락, 사멸이라는 다양한 범주들과 변형들을 정당하게 다룰 수 있는 사회이론을 탄생시킨다.

 하먼은 기존 사회이론의 전통적 이분법인 구조와 행위에 사로잡히지 않으며, 행위 또는 구조로의 환원을 거부한다. 따라서 강력하고 지배적인 사회적 객체인 구조에 모든 설명을 떠맡기지 않으며, 의식적이거나 무의식적인 행위들 또는 관계들의 연속 속적이고 유동적인 흐름에 휘말리지도 않는다. 즉 전통적인 형태의 결정론적 유물론과 현대적인 형태의 사회구성주의적 유물론 양자를 비판하며 ‘비유물론’으로 나아간다. 환원적인 분석들에서 한계와 아쉬움을 느꼈던 이들이라면 하먼의 <비유물론>과의 만남이 즐겁고 신선한 자극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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