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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진스 - NewJeans 'How Sweet' Standard ver. (버전 6종 중 랜덤발송) - 아웃박스+인터뷰북+포토북+미니포스터+스티커팩+포토카드+엽서+책갈피 뉴진스 - NewJeans 'How Sweet' 1
뉴진스 (NewJeans) 노래 / 어도어 / YG PLUS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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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번호)001-A022964268 입니다.
알라딘 본점에선 하우스윗 하니 버전 앨범이 다 나갔더라고요..
알라딘 갈려고 며칠을 기다렸는데 지금까지 앨번은 알라딘에서만 샀는데 앞으로도 알라딘에서만 살게요.그러니까 제발 하니하니하니하니하니하니하니하니하니하니!(1번 썼다 지워진 것 같아 다시 써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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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진스 (NewJeans) 노래 / 어도어 / YG PLUS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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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번호)001-A022964268입니다.

어제 알라딘에 하우스윗 하니ver앨범 사러가니까 없더라고요ㅠㅠ따른데도 팔지만 알라딘에서 꼭 하니ver앨범 사고 싶었거든요.2군데나 알라딘 돌았는데 없더라고요.지금까지 음반 알라딘에서 샀는데 앞으로도 알라딘에서만 살게요.그러니까 제발 하니하니하니하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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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윤리
양명수 / 서광사 / 199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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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동양에서는 인간이 자연에 순응하는 삶을 살면서 신과 마찬가지로 섬기고 중시했다. 하지만 기술문명의 발전과 함께 서서히 그들의 관계는 달라져갔다. 인간은 환경을 조절하고 지배할 수 있다고 믿었고 자연을 함부로 다루었다. 그 결과, 자연은 인간에게 괴롭힘을 당한 만큼 인간에게 갚아주고 있다. 환경오염이라는 한 형태로 말이다. 인간들은 스스로의 생명을 위협한 것이다.

환경이라는 것은 알고 보니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의미가 광범위했다. 사회환경, 생활권에서의 환경, 자연환경 등등... 환경오염이라고 하면 그저 생태학 쪽으로만 관련이 있는 줄 알았는데 그런 것은 아니었다. 이 책에서는 환경오염의 원인이나 대책 등의 내용에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라 인간사회와의 관계라든지 그에 대한 윤리의식 같은 것을 주로 다루었기에 이해하는 데 다소 어려운 점이 있었다. 하지만 여러 가지 관점에서 환경오염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되었던 것 같다.

우선,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알기보다는 인간과 인간사이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었다. 처음에는 '환경오염에서 웬 인간사이의 관계? 환경에 관한 내용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렇게만 생각을 하게된 것은 너무 좁은 개념으로만 생각해서였던 것 같다. 물론 자연과 인간의 관계가 중요하고 이 이야기의 주가 되는 것도 사실이지만 인간사이의 관계 역시 새로운 환경을 만든다는 점으로 보아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같은 인간사이의 갈등으로 인한 심각한 환경오염이 현재, 사회의 현실이다. 어떻게 보면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회복은 인간사이의 관계회복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말이 맞는 것도 같다.

인간과의 관계회복 뿐만 아니라 인간이 자연에 대해 어떤 인식을 갖는지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근대 사회에서는 자연을 지배하려는 인간들의 의식이 주를 이루었지만 환경의 영구한 보존을 위해서 이는 바뀌어야 한다. 이런 것을 생태학적 입장이라고 했던가? 아마도 그렇게 표현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 관계가 아니고서는 서로의 균형이 깨지기 쉽기에 이것이 가장 이상적인 관계이고 그런 관계가 되어야만 한다. 자연이 대상이 아니라 상대라는 말이 아마도 그런 의미일 것이다.

우리는 자연과 인간이 하나임을 인식해야한다. 그리고 지배와 피지배가 아닌, 동등한 위치에서 제대로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환경이 인식만 변한다고 해서 바뀌는 것은 아니지만 우선은 그것이 가장 필요하지 않나 싶다. 그저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자연, 앞으로 대대로 후손들에게 물려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더 소중하게 여겨지지 않을까? 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다. 잠시 빌린 것이고 다른 이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자연을 함부로 하는 일이 쉽지는 않을 것 같다.

자연을 대상이 아니라 주체로 보라는 것. 물질적인 영리만을 추구하는 이들에게는 이런 일이 힘들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나 역시 예외는 아니다. 그렇지만 환경파괴로 눈앞의 작은 이익보다 더 많은 피해를 볼 수도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 같다. 자연도 우리와 같은 주체이기에 늘 서로의 입장에서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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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목 박완서 소설전집 10
박완서 지음 / 세계사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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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책을 보았을 때 제목이 의미하는 바를 잘 몰랐었다. 그 당시에는 '나목'의 의미조차도 몰랐다. '나목'은 원래 '잎이 떨어여 가지만 있는 나무'라는 뜻이다. 여기에서도 그러한 의미로 쓰여졌다. 잠시 성장을 멈추고 어려운 한 시기를 극복하는 나무 '나목'... 나목은 그 모습이 고목과 흡사해서 겉은 다 죽어가는 보잘 것 없는 나무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다음 봄이 오면 꽃도 피우고 잎도 무성할 희망적인 존재이다. 이 글에서는 등장인물들과 사회의 모습을 이 '나목'에 비유하고 있다.

작가는 이 이야기의 배경을 6.25전쟁이라는 비극적인 시대로 설정해 두었다. 인물들을 보면, 이경과 옥희도는 모두 고독과 괴로움으로 어렵게 살아간다. 그들은 당시의 사회가 만들어낸 황폐해진 정신을 갖은 사람들을 대표한다고 볼 수 있다. 의식도 없고 많은 상처로 심적인 고동을 받는다. 이들의 이러한 모습은 그 때의 사회모습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게 했다. 이경은 늘 자신의 가정으로부터 달아나려고 했다. 집이 싫어서라기보다는 아마도 현실로부터의 도피였던 것 같다.

집에 돌아가고 싶지않아서 즉, 현실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옥희도의 부인에게 간청해서 그의 집에 묵은 적도 있었다. 이렇게 계속해서 자신이 처해있는 삶을 피하려 했다는 걸로 이 글을 마친다면 이 소설의 뒤끝은 그다지 깔끔하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주인공들은 그 어려움을 극복해 낸다. 그들은 모두 제 갈 길을 간다. 옥희도는 자신의 바람대로 화가가 되고 이력은 정신적으로 안정을 되찾고는 평범한 여인이 되어 가정을 꾸린다. 이렇게 힘든 시기에 그들은 그 어려움을 극복해서 인간성을 되찾고 자아를 실현하게 된다. 그들의 상처는 치유되었다.

이경이 후에 남편과 같이 옥희도의 유작전에 갔을 때,예전에 '고목'인줄 알았던 그림이 다시 보니까 '나목'이더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는 환경이 바뀌고 그만큼 안정을 되찾은 이경이 발견하게된 옥희도의 메시지가 아닐까 싶다. 나목... 그것은 결코 죽어있는 고목이 아니다. 다음 봄에 반드시 꽃이 피고 잎이 무성할 희망적인 존재인 것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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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공 한국 3대 문학상 수상소설집 3
조세희 지음 / 가람기획 / 199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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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작품에는 난장이라는 독특한 인물을 주인공으로 설정했다. 그리고 이야기를 자신의 입장에서 진행시키는 이들은 난쟁이의 자식들이었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세 남매들은 정말 가난했다. 그들에게는 선택의 여지조차 없었다. 그저 주어진 것만을 그대로 받아야 했다. 가난해서 배울여유조차 없었지만 그들은 난쟁이인 아버지를 원망하지 않았다.

그 중에서도 큰아들 영수는 학문에 관심이 많았다. 배움의 중요성을 알고 틈틈이 책을 읽었고 인쇄송서 일하면서 닥치는 대로 글을 읽었다. 요즘에는 충분히 모든 환경과 조건이 뒷받침되는 데도 불구하고 그것들의 소중함을 모르는 이들이 많다. 나 역시 여러 면에서 반성해 보았다. 난쟁이와 그의 아내의 선조들은 노비였다. 그들은 후손 대대로 사회적 편견과 경제적 어려움으로 허우적댔다. 가진 자는 있는 것으로 더 많은 배움과 부를 축적해갔고 없는 자는 아무리 노력해도 늘 빈곤했다.

이 글이 쓰여진 시기에 우리나라에서는 한참 산업화가 가속되고 있었다. 급격한 산업화로 인해 인간의 존엄성이 무시되었고 잘못을 돌아 볼 만한 여유도 없었다. 자본가들은 더 많은 이익을 남기기 위해 노동자들을 혹사시켰고 결국 노동자들은 그들의 위협적인 말때문에 좌절할 수 밖에 없었다. 난쟁이는 소외계층을 대표한다. 이를 소재로 이 글에서는 당시의 노동환경과 빈민계층의 모습을 폭로하고 있다. 난쟁이가 그의 겉모습때문에 멸시 당했듯이 그들도 마찬가지로 멸시 당하며 힘들게 살았다.

하지만 난쟁이와 그의 가족들에게는 꿈이 있었다. 난쟁이는 우주를 여행한다느니, 어쩌니 하는 이상한 말들을 했지만 그것들은 그의 꿈이고 소망이었다. 결국 스스로가 자살을 함으로써 그 자신만의 세계에 도달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마지막 부분에서 아버지의 자살 소식을 들은 영희가 영수에게 한 말로 보아 더 이상 소외되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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