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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팅 클럽
강영숙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나의 빨강이 독서일지에 따르면 2011년 9월 쯤에 읽은 책이다.
(그러나 빨강이는 현재 반도 채워지지 못한 채 구석기 유물이 되었다는 슬픈 이야기...)
나름 의미가 깊은 책인데, 내게 한국현대문학이 재미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심어줬기 때문이다. 사실 내가 국문과이긴 하지만 한국문학을 즐겨 읽은 시간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아주 어릴 때는 오히려 청소년 문고판 외국문학이라던지 환상문학 쪽을 많이 읽었고, 수험생일 때는 현대문학이라고 해봤자 언어영역에 나오는 소설들(일제강점기~7,80년대)을 '재미가 없더라도' 읽어야만 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지금의 현실을 그리는 젊은 작가들의 이야기에 빠져들 기회가 없었다. 박민규, 김애란, 김연수 등 계속 왕성하게 활동하는, 내로라하는 수많은 작가들이 이름을 나는 그 때까지만 해도 전혀 몰랐다.
대학에 갓 들어와서도 마찬가지였다. 초반이라 그랬는지 수업시간에 다루는 텍스트도 대게 딱딱한 편이었고, 놀기에 급급했던 나는 현대문학을 접할 수 있었던 수업에서도 그리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애초에 각 잡고 읽을 생각은 안하고 수업시간에 받은 텍스트 일부만 읽고 덮었으니 그럴만도-_-;;
맨날 결심만 일삼았지 책이라곤 담을 쌓고 있었던 무렵이 지나고, 2학년 중반 쯤 가자 과생활도 재미가 없고 내 할 일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제서야 '책을 좀 읽어볼까...'하는 마음이 들었던 것 같다. 도서관엘 갔고 서재를 하릴없이 돌아다니다 우연히 딱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라이팅 클럽'
작가의 이름도 책 제목도 낯설었는데, 그냥 뭐에 홀린듯 책을 뽑아들고 대출을 했다. 이전까지만 해도 작가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했던, 그리고 작가와 작품명을 일치시키지 못했던 내가 바뀌는 순간이었기도 했다. (안타깝게도 음악에 있어선 여전히 그 버릇이 안 고쳐졌다.) 그리고 조금씩 조금씩 한 일주일을 곱씹으며 책을 읽었다.
이 소설은 소설가가, 글쟁이가 되고 싶어하는 한 모녀의 이야기이다. 엄마인 김작가는 허름한 계동 글짓기 교실을 열어 허섭스레기같은 주부들의 글을 다듬어주는 한평생 아마추어 작가이다. 딸인 영인은 그런 엄마의 모습을 한심스러워하며, 그러나 그 역시 글을 쓰기 위해서는 어떤 일이라도 마다하지 않는 -설령 사랑을 하거나 유명한 소설가를 쫒아다니고, 외국으로 이민 아닌 이민을 떠나는 일까지도- 작가 지망생이다. 소설은 스펙타클 하지 않다. 그저 담담하게 그녀들의 사는 모습을 몇 년이고 보여줄 뿐이다.
이 두 사람의 얘기가 와닿았던 이유가 뭘까. 어쩌면 부러웠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나 또한, 가끔씩은 소설 같은 것 써보고 싶다는 충동에 휩싸인다. 하지만 그 뿐, 그 불씨는 순간 타올랐다가 금방 잿 속으로 사그라든다. 그것은 귀찮음을 동반한 실패와 두려움, 포기, 실망 따위가 새까맣게 그을린 잿더미다. 그러나 소설 속 모녀들은 어떻게 해서든, 그것이 설령 하잘 것 없는 시도일지라도, 열망의 불씨를 꺼뜨리지 않으려 계속해서 부채질을 한다. 자신이 열망하는 것을 위해 사는 걸 주저하지 않는 여자들을 보며 나자신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너는 무엇을 위해 네 한 몸 다 던질 수 있겠니? 글쎄, 아직은 잘 모르겠어.
한국문학은 문제 자체가 뚱하고 시니컬한 맛이 있는 것 같다. 약간은 꼬아 비틀어서 웃기는? 그게 트렌드인지 아니면 원래 성격 자체가 그런지는 모르겠다. 그런데 그게 딱딱하다거나 거슬리게 느껴지진 않고 오히려 다정하다. 뭐랄까 약간 엄마와 딸의 느낌이다. 괜히 서로 틱틱대고 삐지고 토라지고 하다가도 금세 엄마~ 딸래미~ 하면서 깔깔거리며 웃을 것 같달까. 그래서 좋다. 어쩔 때는 피식 거리게, 또 어쩔 때는 파하하- 크게 웃을 수 있게 만드는 힘이 거기에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