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동시집 을유세계문학전집 132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장희창 옮김 / 을유문화사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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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테의 '서동시집', 제법 도톰한 책의 무게가 느껴지는 종이봉투를 열어보는 순간의 설렘이 좋았다. 책을 마주하자 제일 먼저 시선이 가는 건 괴테의 초상화였다. 275년 전에 태어난 사람이 남긴 이야기가 세대를 걸쳐 오늘날 우리에게 전해지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정성과 수고를 거쳐 왔는지, 책의 냄새를 맡으며 상상해 보았다. 얼마 전 다시 시작한 시필사. 다섯 계절을 보내고서야 또 다시금 든 마음인데, 마음에 드는 시 한 편을 골라 노트에 옮겨 적고는 문장을 여러 차례 곱씹어 본다. 나름의 힐링법인데 사람이 남긴 글에서 온기를 느끼기 때문이다. '서동시집'에서는 '눈앞에 나타난 과거'와 '한계 없음' 두 편의 시를 옮겨 적었다. 이 시에서는 인생의 모든 단계에서 즐길 수 있어야 한다는 말과 시인의 시는 가슴에서 사랑스럽게 흘러나오는 노래, 스스로를 쏟아붓는 선량한 마음이라는 말을 주워 담았다.
어느 대목에서는 괴테가 좋아하는 향기를 상상해 보았다. 향의 지속시간을 늘리는 고정제로 쓰였다는 향유 고래의 배설물 용연향과 장미 기름보다도 향기롭다는 말에서. 맡아본 적 없는 용연향에서는 어떤 향기가 날까? 괴테는 그것에서 무슨 향을 맡았을까? 어떤 이는 은은한 흙냄새 같다고, 또 어떤 이는 냄새가 나지 않는다고 말하는데 그렇다면 바람에 실려오는 흙 내음과 장미 향기로 생각을 모아보면 좋을까.. 피식 웃음이. 자, 상상의 걸음은 여기까지!

하지만 촛불들을 보라,
그것들은 사위어 가면서 빛을 발하지 않는가.

기억보다는 현재를
어서 즐겁게 택하라.

삶의 잡동사니 속에서 그대는 어떻게
이런 부싯돌을 구했는가?

누가 세상으로부터 그 무엇을 바랄 수 있겠는가.
세상 사람들도 그것을 얻고자
아쉬워하고 꿈꾸고, 뒤도 돌아보고 곁눈질도 하며
허송세월 보내고 있지 않은가?
그들의 노고, 그들의 선한 의지는
재빨리 지나가는 인생을 절름발이 걸음으로 쫓아갈 뿐.
그대가 여러 해 전에 필요했던 것을
세상은 오늘에야 주지 않는가.

바다는 끊임없이 밀려오지만,
육지는 그것을 결코 담아내지 못한다.

내 마음은 시시각각 왜 이리 불안한가?
인생은 짧은데 하루하루는 길다.
내 마음 언제나 저 먼 곳으로 떠나고 싶어 하네.
하늘을 향한 그리움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마음은 자꾸만 멀리 저 멀리로 가려 한다.
자기 자신으로부터 달아나려 한다.

삶은 소용돌이치며 이것저것 휩쓸어 가지만,
마음은 언제나 한곳에 매달려 있으려 한다.
무엇을 바랐든, 무엇을 잃었든,
마음이란 결국 스스로 택한 바보일 뿐.

길은 시작되었으니, 그 여행을 마치도록 하라.
근심도 걱정도 운명을 바꾸지는 못하지.
그대를 내동댕이쳐 영원히 균형을 잃게 할 뿐.

시간은 나의 재산, 나의 경작지는 시간.

누구든 거침없이 행세해도 좋지만
그래도 자기가 아는 한도 내에서만 그래야겠지.

스스로 존엄을 지키려면
참으로 억세어야 한다.

억지 부리는 자에게는
단 한 순간도 말려들지 말라.
무지한 자와 다투면
현자라도 무지에 떨어지고 마니까.

그대는 내게 주변을 두루 보여 달라고 하는데,
우선은 그대가 지붕 위로 일단 올라와야 하네.

"오늘은 오늘이고, 내일은 내일.
앞으로 닥쳐올 일도, 이미 지나간 일도
한자리에 그냥 머물러 있지는 않아요."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지만 않는다면
어떤 삶도 헤쳐 나갈 수 있대요.
다만 지금 상태로 그대로 머물면,
모든 걸 잃게 된대요."
(큰따옴표의 시를 쓴 사람은 마리아네 폰 빌레머)

그 말씀 잘 새겨들은 예수의 제자들은
각자가 써 내려갔어, 저마다 마음 간직한 대로
하나씩 하나씩, 하지만 그것들은 서로 달랐지.

강물이 방해 없이 부드럽게 흐르게 하려면
부지런히 도랑을 파 주어라.

그리하여 취한 자는 흥얼거리며 비틀비틀 걸어가고,
적당히 마신 자는 노래 부르며 흥겨워하리라.

하지만 우린 생각했죠, 영원한 삶 속에서는
모든 걸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예요.

때로는 우울해지고 때로는 변덕 부리기도 해요.
그래요, 때로는 이 핑계 저 핑계 대기도 하죠.
그러면 모두들 자기 집에 있는 것처럼 편안하게 느끼고,
또 으레 그런 거지 하고 생각하기 때문에
우리도 기운 나고 명랑해진답니다.

이 모든 것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지는
그대들 마음 깊은 곳에서 물어봐야 하리.

바람이 불어와 그것을 날려 버려도
그 기운만은 지구 중심에 이르기까지
꿋꿋이 남아 있으라.

시는 7쪽부터 시작해서 236쪽에 끝나고, 그다음은 '서동시집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한 주석과 해설'이다. 지나온 한 권의 시집, 그중에 위의 옮겨 적은 시들을 곱씹어 보는 건 취하고 싶기 때문이다. 내 것으로 만들어지지 않더라도, 유효기한이 짧더라도 지금 이 순간의 나를 충분히 울리는 소리이므로. 마음에 내려앉은 말이 좋아서 힘과 다짐이 되는 소리를 섭취한다.
'모든 것엔 때가 있기 마련!'이라는 격언을 빌려 사람이 침묵해야 할 때도 있고 발언해야 할 때도 있는데 괴테는 "젊은 시절엔 행동하고 영향을 미쳐야 마땅하고, 나이 들어서는 관찰하고 전달하는 것이 어울리기 때문이다."라고 말하며 발언을 선택했다. 그럼에도 신경이 쓰였던 건지 "자기가 가져온 물건들을 보기 좋게 펼쳐 놓고는 이런저런 방식으로 마음을 끌기 위해 애를 쓴다. 그렇게 선전하고, 이런저런 설명을 덧붙이고, 심지어 찬양의 언사를 늘어놓더라도 사람들은 그를 나쁘게 보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웃음이 방긋! :) 그렇게 괴테의 해설서는 237쪽부터 470쪽까지, 어쩌면 이 해설서는 대화처럼 술술 써 내려갔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시간을 마련해 준 을유문화사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았다. 입구에 걸어둔 사진에 마음이 방긋, 따사로운 햇살은 꽃나무에 내려앉았고 그 장면을 보는 나에게도 내려앉았다. 1945년 12월 1일에 창립했다는 을유문화사, 79년 세월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겠지? 을유문화사를 소개하는 글과 지나온 발자취를 가만히 보았다. 우리는 모두 같은 사람이지만 어떤 이들은 자신 안의 열정을 활짝 펼쳐 보이고, 어떤 이들은 그 열정에 모여든다. 그 열정에 모여드는 한 사람으로 감사를 전한다. 덕분에 좋은 시간이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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