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 문학과지성 시인선 572
진은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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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시 한 해가 가고 새로운 한해가 왔다. 돌이켜보면 올해 내 삶의 크고 작은 변화들이 있었고, 행복하고 소중한 순간들이 더 많았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일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이런 내 기준에서 괜찮다고 느껴진 책은 무엇일까? 많은 책들이 떠오르긴 하지만 내 가슴 속 아름답게 자리 잡은 책이 하나있다. 진은영 시인의 시집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이다.


특징이 뚜렷한 사계절이라도 쉼이란 없다. 계절의 변화는 물 흐르듯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넘어가는 법이다. 속이 감추어진 편지가 아닌 봄의 씨앗처럼 모든 것을 열어둔 채 너에게 간다. 여름비는 벌어진 장미처럼 쏟아지고 왜 내가 네 밑에 있을까. 실수인지 고의인지 네가 쏟은 커피에 젖은 냅킨처럼 나는 처절하게 바닥에 깔려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어느 가을날 홀로 된 내 영혼은 잠옷 차림으로 뛰어다닐 만큼 자유로워진 거겠지? 맨홀 뚜껑 위에 눈이 쌓일 때까지, 맨발로 눈을 밟아야 하는 겨울이 올 때까지 말이다. 사랑의 사계는 그리 녹녹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진실로 너에게 다가갔지만 열정적인 사랑비를 맞고 쓰러진다. 그리고는 다시 툭툭 털고 일어서서 자유로워지지만 결국 남은 감정의 끝은 시리기만 하다.


시는 어렵다. 풀어써도 어려운 것을 온통 함축하고 압축해버리니 말이다. 그렇다고 전문가들이 내어 놓은 해석이 다 그럴 듯해 보이는 것도 아니다. 예술이란 무엇인가? 각자 알아서 즐기고 감상하면 되는 것이다. 정답이 있다고 해도 그 정답을 향해 모조리 따라 갈 것 같으면 그건 문학이 아니라 과학이다.


문학평론가 신형철의 말에 따르면 시인 진은영은 사랑의 시인이라고 했다. 시의 ‘ㅅ’도 모르는 내가 봐도 그러하다. 시인은 어쩌면 연애의 감정을 빙자해 더 넓은 의미의 사랑까지 포용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사랑을 하는 사람이건, 사랑을 잃은 사람이건. 우리는 안다. 사랑은 쉽게 얻기도 하고 잃기도 하고, 탄생하기도 하고 소멸하기도 한다는 것을. 시집 사이사이에 세월호의 사연을 담은 시들도 문득문득 보인다.  눈에 넣어 보긴 했지만 차마 읊조리지 못한다. 그런 거대한 슬픔에 맞설 만한 용기가 아직 내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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