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는 내가 살고 있는 세계와 동떨어진 세계이다. 현실과 맞닿으면 괴롭고 슬픈 현생을 자각하는게 싫어서 SF를 좋아하는 걸까.
저는 단지 ‘우주를 지휘하고 있는 무언가가 존재하며, 그 무언가는 내 안에서 옳은 일을 하도록 재촉하고 그릇된 일에는 책임감과 불편함을 느끼게 만드는 하나의 법칙으로 나타난다‘ 는 데까지만 말했을 뿐입니다. 우리는 그 무언가가 다른 무엇보다 정신을 닮았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 P58
사리를 분별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어떤 욕망은 허용하고 어떤 욕망은 거부해야 하는지에 관한 일련의 원칙들을 갖고있게 마련입니다. 어떤 이들은 기독교적 원칙에 따라, 어떤 이들은 위생학적 원칙에 따라, 또 어떤 이들은 사회학적 원칙에 따라이렇게 합니다. 즉 진정한 갈등은 기독교냐 ‘본성‘이냐에 있는것이 아니라, ‘본성‘을 제어하는 일에서 기독교적 원칙을 따르느냐 다른 원칙을 따르느냐에 있습니다. 인생을 망치기로 작정한사람이 아니라면 어떤 식으로든 ‘본성‘(자연스러운 욕구라는 뜻에서‘본성‘)을 제어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 P163
그냥 그를 사랑한다 치고 행동하십시오. 그러면 곧 위대한 비밀하나를 발견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을 사랑한다 치고 행동하면,얼마 지나지 않아 진짜로 그를 사랑하게 된다는 비밀 말입니다.어떤 사람이 싫다고 해서 상처를 주면, 점점 더 그가 싫어집니다. …………….그가 단지 하나님이 지으신 자아이기 때문에(우리처럼) 나의 행복을 바라듯 그의 행복을 바라는 마음으로 잘해 준다면, 그때마다 우리는 조금씩 더 그를 사랑하게 될 것이며, 아니면 적어도 덜 싫어하게 될 것입니다. - P207
자연 상태의 그대로의 ‘나‘는 내가 믿고 싶어하는 만큼 주체적인 개인이 못 됩니다. ’나한테서’ 우러나왔다고 내세우는 일들은 대부분 아주 쉬운 설명이 가능한 것들입니다. 우리가 처음으로 나만의 진정한 인격을 갖기 시작하는 때는바로 그리스도를 향해 돌아서는 때, 돌아서서 그의 인격에 나 자신을 바칠 때입니다. - P339
이런 의미에서 우리의 진정한 자아는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기다리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 없이 ‘나 자신‘이 되려고 아무리 노력해 봐야 소용이 없습니다. 그를 거부하고 혼자힘으로 살려고 하면 할수록, 유전과 성장배경과 환경과 자연적인욕망의 지배만 더 받게 될 뿐입니다. 내가 그토록 의기양양하게내세우는 ‘나 자신‘은, 내가 시작하지도 않았고 막을 수도 없는일련의 사건들이 집합하는 장소 이상이 되지 못합니다. - P338
The truth is rather that when we are convicted of sin by the Holy Spirit, an immediate result is that we give up all such comparisons. Paul was so vividly aware of his own-sins that he could not conceive that anybody could be worse. It is the language of every sinner whose conscience has been awakened and disturbed by the Holy Spirit. We may begin like the Pharisee inJesus‘ parable, ‘God, I thank you that I am not like other men‘, butwe end like the tax collector who beat his breast and said (literally), - P53
제유법Synedoche이란 "일손이 부족하다"고 할때처럼 손의 한 부분으로 사람 전체를 표현하는 수사법을 일컫는 말입니다. 우리가 짐승을 셀 때 한 마리, 두 마리라고 하는데, 그때 ‘마리‘는 짐승의 머리를 가리키는 말이지요. 머릿수로 가축의 수를 헤아리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 P25
마귀가 돌을 주면서 이것으로 빵을 만들어보라고 할때 그것을 거절하면서 예수님이 하신 말씀은 이미 성경에 쓰인 것을근거로 한 것이지요. 시학에서는 그런 수사법을 인유법allusion이라고합니다. - P27
그래서 예수님의 수사학을 모르고 성경을 곧이곧대로 읽으려는사람들은 동문서답을 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놀라운 비유를 쓰신 시인이셨지요. 하늘의 언어를 땅의 언어로 풀이한 탁월한 동시통역사, 어떤 때는 인간의 얘기를 하늘에 전하고 어떤 때는 하늘의 이야기를 인간에게 전해주는 진정한 미디어가 예수님이시지요. - P28
비유란 무엇인가. 아는 것을 가지고 모르는 것을 표현하는 방법입니다. 기존의 체험이나 식견으로 미지의 것을 예시하는 것.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가 모르는 천상의 것을 언제나 지상의 것으로 비유하여 말씀하셨습니다. - P29
말, 몸, 맘이 하나로왜 하필 먹는 것일까요? 머리로 이해하고 귀로 이해하고 눈으로 이해하는 것은 진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입으로 먹고 어금니로 씹어 마침내 한 몸이 되어야 진리입니다. 말 따로, 몸 따로, 맘 따로인것은 진리가 아니지요. 그러니까 하나님 말씀인 성경을 눈으로 보는사람, 귀로 듣는 사람은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다 가짜입니다. 최후의 만찬에서 "이 빵이 내 몸이고, 이 포도주가 내 피다. 이것을 먹어라"라고 한 것은 진리를 건성으로 듣지 말고 네 몸의 일부로 만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예수님의 말씀을 씹어서 하나가 되는 것, 그것이 바로 최후의 만찬의 메시지라 할 수 있습니다. - P36
The Greek word twice translated ‘accursed‘ is anathema. It was used in the Greek Old Testament for the divine ban, the curse of God resting upon anything or anyone devoted by Him to destruction. The story of Achan provides an example of this. God said that the spoil of the Canaanites was under His ban-it was devoted to destruction. But Achan stole and kept for himself what should have been destroyed.So the apostle Paul desires that these false teachers should come under the divine ban, curse or anathema. - P24